엉금엉금

by Yanghee An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에도 루틴이라는 것이 생겼다. 요즘 나의 일상은 완전한 평온에 가깝다. 윗집 아가의 뛰는 소리에 매일 의도하지 않은 시각에 잠에서 깨거나 주말마다 어린이가 내는 소란을 견뎌야 하는 탓에 ‘완벽’에서는 살짝 빗겨 났지만, 요즘의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비하면 아주 큰일은 아니지 싶다. 윗집 아이들이 뜀박질로 나를 깨우고 난 후에는 대체로 앉거나 누운 상태에서 핸드폰을 만지거나 음악을 들으며 이제는 그만해도 좋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된 어떤 의문을 지속한다. 서있는 동안에는 바디로션을 꼼꼼히 바르거나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거나 과일을 자른다. 난방비가 무서워 폭닥한 로브를 하나 샀다. 복슬복슬한 로브를 입고 있으면 무릎까지 따뜻해 꼭 담요를 두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냉장고에는 딸기와 블루베리와 파인애플과 사과까지 가득하다. 정말로 삶이 이토록 호사스러워도 되는 걸까.

밤이면 리모컨으로 섬네일을 50개쯤 넘기고 나서야 내키는 대로 영화를 한편 고른다. 종종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아직도 이 영화를 안 보고 뭐 했지?’ 밀린 숙제 하듯 마땅히 몇 년 전에 봤어야 할 것 같은 영화를 틀어 뒤늦게라도 재밌게 감상한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도 마찬가지. ‘이젠 정말 미루지 말고 이 책을 읽어야겠네.’ 아주 재미나게 읽는다. 어딘가 익숙한 것도 같지만… 그리고 별점을 매기는 앱을 연다. 언젠가의 내가 이미 야무지게 평점을 매겨두었다. 벌써 치매가 온 건 아닐 텐데 같은 일을 매번 반복한다. 문득 요즘의 너는 책이나 영화를 매달 한편이라도 보면서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그것들이라도 없으면 그 시절을 견디기 어려운 우리들이었으니까.

신생아를 미치게 좋아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무려 둘째를 낳았다. 우리의 시간이 일치하는 이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고 아기를 많이 봐두어야 한다. 친조카도 없는 내가 굳이 백일해와 독감 예방주사까지 맞고 친구 집에 기어들어가 하루 종일 신생아를 껴안고 내려놓지 않는다. 분명 지난주에는 연체동물처럼 내 품에서 흘러내리던 아기가 이번 주에는 곧잘 고개를 들고 안겨있다. 킁킁대며 아기의 냄새를 맡는다. ‘내 자식도 아니지만 둘째는 왜 이렇게 짠 내가 나고 딱할까.’, ‘나의 아기가 있다면, 아, 행복하긴 하겠구나.’ 대체로 다복하고 때로는 전쟁터 같은 현실적인 육아의 현장을 보며, 관념적으로 상상만 하던 너의 삶을 간접적으로 목격한다. 어딘가에서 너 역시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비루한 상상의 뼈대에 살이 붙으니 마음이 헛헛하다. 너는 아직 고인이 아니다.

벌써 반년째 월간지를 받아보듯 매달 중순에 같은 친구를 만난다. 무엇을 할지는 정해두지 않고 만날 즈음에 재미난 것을 찾아보자 말하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우리는 결국 매번 전시회장에서 만나게 된다. 근사하고 아늑한 장소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포근하게 차를 마시고, 길을 걷다 올리브영이 보이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는 아이들처럼 홀린 듯 빨려 들어가 한참을 구경한다. 이제는 뻔뻔하게 얼굴 전체에 비비크림을 발라보기도 한다. 노는 게 일인 나는 늘 에너지가 충만하나, 과로가 생활인 친구는 헤어질 때쯤 되면 커피잔을 들어 올릴 힘도 없어 보인다. 캘린더를 열어 한 달 후의 토요일에 서로의 이름을 적어 넣고, 각자 택시와 지하철로 귀가한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되었음에도, 삶의 궤적이 이토록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서로의 취향을 나눌 수 있는 다정한 동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반면에 너와 나는 그토록 죽고 못 살고도 죽은 채 지낸 세월이 살아서 지낸 세월의 곱절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문득 허무해진다. 그래, 너도 나도 끊임없이 다시 새로운 동무를 만나 죽고 못 살며 살아왔겠지. 그래서, 넌 언제 죽을까.

아직 고인이 아닌 사람을, 고인이 맞다고 우기며, 마땅히 고인이어야 한다며 애도하는 일이 새로운 루틴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한다. 죽은 셈 치면 애도가 가능할지도 몰라. 책방을 겸하는 카페에 앉아 키보드를 톡톡 누른다. 신생아보다는 커 보이는 5살 난 거북이가 노오란 뜨개 옷을 입고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책장 너머 들리는 말로는 이 거북은 100살까지도 산다는데, 주인이 먼저 죽으면 이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지. 100년을 산다면 일생 동안 몇 명의 주인을 만나게 되는 거지. 100년이나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의 이 애도는 언제쯤에나 끝나는 것일까 궁금하다. 너와 나의 시간은 토끼처럼 빠른 찰나였지만, 그 모든 찰나가 끝난 뒤의 내 시간은 거북이의 시간이라고. 나는 아마 주인이 바뀌지 않는 거북이를 앞으로 십수 년을 키워야 할 것만 같다고.


엉금엉금. 그토록 느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