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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아빠 Feb 18. 2021

드라마를 보는 아저씨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본 후



드라마 속 잘생긴 한 남자와 예쁜 한 여자가 나온다. 남자는 집주인, 여자는 세입자로 만나 가짜 결혼을 한다. 둘은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하고, 2년 뒤 이혼으로 종료될 계약을 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사랑하게 된다. 무 비현실적이며 뻔한 사랑 내용의 드라마를 대도 아닌 사십대 아저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다.  

 

' 45살 아저씨 드라마에 빠 걸까?'


내가 쇼파에 몸을 파묻고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아내가 꼴불견이라고 혀를 찬다. 더 꼴불견은 썸타는 남녀 얘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골프티비나 스포츠티비 같을 걸 봐야 하는 분위기에 세심한 감정 변화를 다루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그럴만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좋았다. 남녀가 사랑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에 나도 마음이 같이 녹았고, 갈등과 오해로 멀어져 서로를 그리워할 때는 나도 함께 안타까웠다. 그리고 88년생 여자 주인공이 말하는 가장 화려했던 경제상황에 태어나 88만원 세대가 된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 혼자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왜 난 드라마에 빠져 있었던 걸까? 왜 내 감정을 드라마와 일치시켜 희노애락을 함께 즐겼을까?

 

'드라마를 끝까지 본 이유는?'


줄거리를 놓고 보면 너무나 뻔한 이야기라서 굳이 끝까지 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드라마를 봐야했다. 너무 뻔하지만 그 결과를 보고 싶었다. 해피엔딩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이 이뤄졌으면 좋겠고, 결혼도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마를 보는 내내 드라마에서 전해지는 행복의 기운이 내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정이 말랑말랑해 지면 좋은 점이 있다. 딸이 보드게임을 하자며 나한테 말을 걸어온다

"아빠, 나랑 보드게임 하자. 어떤 보드게임이 좋아?"

나는 대답이 느린 편이다. 내가 대답할 시간에 아내도 딸도 나보다 먼저 말하곤 한다.

"아빠, 부루마블이 좋아? 우봉고가 좋아?"

"우리 딸하고 하는 게임이 가장 좋지~"

아이가 크게 웃는다. 어색하지만 기분이 좋은 듯 하다. 얼굴에 미소를 한 가득 담아서 나한테 돌려준다. 말랑말랑한 감정은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했고, 미소를 선물로 받게 했다.   


'아저씨도 사랑은 필요하다?'


나한테 삶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와 세상 뿐이다. 내 속의 자아와 자아넘어 타인이 전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아를 인식하고 사랑하기 위한 고독의 긴 여행을 한다. 그리고 나 아닌 세상과 함께 살아야 하고, 가족은 가장 긴밀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가족과 사랑하기 위한 긴 여행을 한다. 결국 나한테 삶은 고독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아내를 더 사랑하고 싶고, 아이를 더 사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랑말랑한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난 풋풋한 사랑이야기 드라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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