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를 읽고
오래 전 나는 회사에서 동료와 의견이 갈려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그는 정말 똥고집이었다. 의견을 조율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지쳐갔다. 결국 그와 나는 큰 목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8년 쯤 흘러 그와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같았다. 그와 함께 일을 해 본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는 똥고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변해 있었다. 나는 그 때보다 작은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와 더이상 다투지 않는다. 그 작은 용기는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이다.
'그럴 수 없다'는 말은 폭력이다. 우리는 종종 절대적으로 믿는 것과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한다. 틀렸다고 말하는 순간 타자들은 잘 못 한 것이 된다. 잘 못 한 사람이 변하지도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가. 보면 볼수록 혈압이 오르고 분노가 커진다. 결국 화가 터진다. 폭력이 행동으로 나오게 되고 감정은 폭발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믿음이다. 우리가 그토록 상대에게 원하는 그 믿음이 폭력의 시작이라는 것이 놀랍다. 절대적인 신에 대한 믿음으로 크리스토와 이슬람은 중동에서 유럽에서 크게 싸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에 나는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절재적인 것은 없다. 그러면 내가 찾던 지식들은, 삶들은 다 무엇일까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헤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절대 진리를 찾았다.
'누구나 죽는다.'
난 여기서부터 세상 모든 것을 하나씩 다시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태어남이 아닌 죽음에서부터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방향을 만들어 주었다. 나보다 훨씬 절실하게 이 책은, 저자는 그것을 고민하고 글로 적었다. 병에 걸려 남은 시간동안 소중하게 적어놓은 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내 눈에는 몇 가지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머리 속에 들어왔다.
'나, 타자, 선택, 그리고 사랑'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런 생각을 버리고 나면, 나는 순수히 나로 남게 된다. 남이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옷이 아닌 내가 멋있게 생각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 내 행동을 남들이 어떻게 볼까 고민하지 않으면 40대 중반 아저씨도 꼬마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다. 모든 선택의 순간, 모든 행동의 순간 나는 나를 존중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타자를 바라보게 되면 '그럴 수도 있지'란 말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만큼 남들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 중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처럼 존중해 주는 가장 최상의 행동이다. 그래서 말을 해야 한다. 알려야 한다. 내가 너를 나만큼이나 존중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사랑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다운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누구나 죽을 것이기에 저자의 감정을 가슴속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