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은 물에 떠
수영장 한 쪽 벽에 기대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수영장을 바라본다.
고수들이 수영하는 레인에는 쉼 없이 사람들이 왔다갔다 한다.
그리고 거기보다 나와 가까운 레인은 접영, 평영 등을 섞어가며 한다.
내가 서 있는 레인엔 사람들이 마치 굴처럼 벽에도 붙어 있고,
레인을 표시하는 줄에도 붙어 있다.
언제쯤이면, 이 굴딱지들 사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눈치를 보며 출발 자리로 이동한다.
숨을 고른다. 50m를 가려면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조금만 더 숨을 고르고 손을 앞으로 뻗으면 장풍도 나갈 기세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머리를 물 속으로 넣고,
궆힌 무릎을 힘차게 편다.
온 몸에 느껴지는 물의 속도감은 정말 시원하다.
그 느낌, 하지만 너무 짧다.
출발 할 때만 느끼는 느낌이다.
그 이후에는 느낌이 중요하지 않다.
난 모든 것을 집중해서 앞으로만 나아간다.
드디어 25m 반대편 끝을 알리는 바닥 표시가 보인다.
이미 숨은 꽤 차 오른다.
하지만 아직은 더 갈 수 있다.
벽에 도착한 후 몸을 돌린 후 다시 벽을 찬다.
여기서는 오래 머물 수 없다.
숨이 이미 가빠서 심장을 압박한다.
숨소리가 거칠어 진다.
두 손, 두 다리도 모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더 힘든 건 숨이 가쁜 것이다.
그렇게 고통이 밀려드는 시점에
다 왔다는 바닥 표시가 보인다.
벽을 손으로 잡고,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하... 하...
그리고 굴딱지로 변해 벽에 붙는다.
나의 수영 실력은 초보가 아니라 굴딱지다.
"잘 하는데"
이제 막 들어왔는 지, 태서 선배가 물 밖에서 나를 보며 말한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아요."
"그치, 수영은 심장을 터트릴려고 하는 운동이니까."
농담 아닌 농담을 받아줄 힘이 아직 없다.
터지려는 호흡을 다듬는 것도 벅차다.
태서 선배는 나와 가장 먼 라인으로 간다.
가볍게 점프하더니 물 속에 속 들어간 후,
물안경을 쓴 후 나를 본다. 그리고는 물 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계속 왔다갔다 하며 뺑뺑이를 돌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물고기 같다.
얘기를 하고 싶어도 굴딱지와 물고기는 대화를 할 수 없기에...
태서 선배가 굴딱지가 되려면 한 참 걸릴 듯 싶다.
수영을 잘 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에서 올라온다.
나도 물안경을 쓴다.
벽을 차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발차기에 더 힘을 준다.
기초부터 튼튼하게 발차기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발을 차니 더 잘 나가는 것 같다.
역시 발차기가 잘 되야 하는가 보다.
그러나 반대편에 도착하니 더이상 수영을 하기 힘들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굴딱지에서 물고기로 변할까?
한참을 굴딱지하고 있는데 태서 선배가 드디어 물 밖으로 나왔다.
참 얼굴보기 힘들다. 선배가 수영하는 레인으로 슬금슬금 건너간다.
"선배는 수영 엄청 잘 하네요."
내 말에 선배는 웃는다. 가진 자의 여유.
저 웃음을 갖고 싶다.
"얼마나 배웠어?"
"두 달 강습 받았어요."
선배는 고개를 끄덕인다.
왜 끄덕이는 지 모르겠다.
두 달 배운 거 치고 잘한다는 건지 아닌건지.
"저 좀 한 번 봐 주실레요? 실력이 안 늘어요."
"그래. 한 번 해 봐"
나는 물 안경을 쓰고 호흡을 가다듬고 벽을 차고 자유형을 시작했다.
발차기의 더 힘을 주고 팔에도 힘을 주고
25m 반대편에 도착하니 옆에 선배가 서 있다.
"언제 쫒아 오셨어요?"
"너 수영할 때 난 걸었지."
아놔 완전 멘붕이다.
내가 수영하는게 물 속에서 걷는 것과 비슷하다니...
"어때요?"
"다른 초보들과 비슷하네. 근데 발차기는 힘차네.
물이 엄청 튀던데..."
선배는 사람좋은 웃음을 웃는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얘기를 해 줘야 고칠텐데...
"우선 자세를 봐 주기 전에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아, 수영 배우는 목표가 뭐야?"
목표? 그냥 수영 할 줄 알았으면 했지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뭔가를 대답하고 싶다.
"응 쉬지 않고 한 1키로는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
굉장히 의하하다는 표정이다.
"그 정도는 나도 금방 알려 줄 수 있을 거 같아. 1키로 가게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거든. 빨리 가는 건 어려워도."
"금방 가능해요?"
"응."
이거 솔깃하다.
뺑뺑이 도는 물고기로 금방 변할 수 있다니...
"우선 수영하는 시간을 맞춰서 자주 보도록 하자. 그리고 오늘은 아주 중요한 걸 알려줄거야. 진지하게 따라해야돼."
"잘 봐."
선배는 물안경을 쓰더니,
물 속에 들어간다.
오 기대된다.
필살 내공이 함축된 기술이라도 나올 것 같다.
선배는 두 팔을 어깨 넓이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는 머리를 물 속에 넣고,
두 다리는 어깨 넓이로 벌리고
가만히 물에 떠 있었다.
그렇게 10초 정도 지나고 나서 물 밖에 나와 숨을 쉬고는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는 반대편 벽에 도착했다.
"어때? 잘 봤어?"
"네, 잘 보기는 했는데, 이 동작은 왜 연습하나요?"
"이 동작을 연습하는 이유는 두 가지야. 하나는 사람은 물에 뜬다, 그리고 힘을 빼야 잘 뜬다."
"힘을 빼고 물에 뜬다?"
"응, 특정 수영법 이론에서는 이를 슈퍼맨 글라이딩이라고 부르기도 해. 슈퍼맨은 동작이 마치 수퍼맨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붙여졌고, 글라이딩은 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동작을 의미하지."
"오~ 선배님, 고수의 향기가~~ 존경스러워질려고 해요..."
선배는 웃으면서 물 밖으로 나간다.
"나는 이제 집에 갈거야, 오늘 알려준 거를 꾸준히 연습해. 다음에 만나면 다음 거를 알려줄께."
등을 돌리다 말고 선배는 다시 말을 잇는다.
"참, 가능한 턱은 목에 붙여야 해. 그래야 하체가 가라앉지 않아. 그리고 수영 목표를 꼭 정해와. 아까 말 한 목표가 그대로인지 아니면 다른 목표가 있는지?"
"네..."
대답을 하고는 나는 다시 굴딱지 소굴로 돌아갔다. 수영장 굴딱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 중에 하나인데...
더 멋진 목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머리 속에 선배가 보여준 동작이 그려진다.
슈퍼맨 글라이딩이라...
물안경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어색하다.
한 쪽으로 몸이 기울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계속 힘이 들어간다.
다리가 빨리 가라 앉기도 한다.
물 속에서 가만히 힘 빼고 균형 잡는 것도 이리 힘들 줄 몰랐다.
그리고 멍하니 상급반 레인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본다.
상급반 레인에서 한 여자가 뺑뺑이를 돌고 있다. 다시 보니 힘이 전혀 들어 보이지 않는다. 힘을 빼고 하는 수영...
선배가 말한 것과 무언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조금 지겹던 수영에 재미가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