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그 때에는...
불현듯 외사촌 동생의 카톡이 왔다.
내가 있는 회사가 화성에 있는 거냐며 묻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알바로 이 곳에 왔다고...
알바로 공사장 알바를 하는 25세의 청년.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남자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노가다의 추억.
마치 군대 얘기처럼 회자되는 그 감성을 움직인다.
시원한 음료수를 사주고,
저녁을 사주겠다고 말하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른한 오후 시간에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25세의 젊음과 파괴력으로 오늘 저녁을 먹자고 말한다.
왠지 25살의 나와 대면하는 느낌이다.
나도 25살에는 내일의 약속을 잡지 않았던 거 같다.
오늘을 살던 하루살이 처럼,
오늘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러겠다고 말하고는,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한다.
이제 난 25살이 아니니깐,
내년이면 마흔살이니깐 아내한테 말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줘야 한다.
알바 기간동안 공동 숙소에서 머문다는 사촌동생,
그 동생과 친한 친구,
그 둘을 태우러 숙소라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얼 먹겠냐는 질문에 고기를 외친다.
삼겹살과 쏘주.
그 환상의 조합을 즐기던 25살 청년들.
그러나 고단한 무게가 느껴지는 친구들...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판 앞에 마주앉아
그들의 고민을 들어본다.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14년 전으로 돌아간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
성인이 된 책임감,
등록금 정도는 스스로 벌수 있다는 자신감,
부모의 무거운 어깨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돈 만원의 소중함을 알게 된 노동의 가치,
땀 흘려 배우는 정직함,
축축히 젖은 옷에서 나는 땀내를 숨기고 싶은 앳됨.
학교 졸업과 진로를 고민하는 미생마.
교양이 부족한 공돌이들...
어른과 청소년의 모습이 모두 묻어나는 풋풋함.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성과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는 순수함과
도화지처럼 맑은 가능성을 가진 청년들...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본다.
어쩌면 이리도 같을까?
이런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도 하는 거냐며 묻는 동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그랬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고 말하면서
내가 느낀 나의 25살의 아쉬움을 얘기한다.
나는 25살에,
아주 좁은 시야만 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해야한다는 편견.
부모의 짐을 지금 바로 덜어주어야 한다는 편견,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편견,
빈자와 부자는 어울리기 불편하다는 편견,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편견,
나는 이 몇가지 안되는 것들에 빠져 있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더 많은 것들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더 새로운 것들을 공부 할 기회를 잃었고,
행복하게 세상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잃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청년의 시간을 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펐던 건,
이로 인해 수없이 많은 불만을 품고 살아가야 했다는 것이다.
난 그런 25살이었다.
그런 내가 나를 마주보고 앉아 있다.
두 명의 분신이 되어 있다.
작은 공간에 갖혀,
더 넓은 곳으로 가는 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가는 문을 향해 걷는다.
남들과 같이 인파속에 묻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걷는다.
그렇게 난 25살을 보냈다...
그렇게 나의 분신들을 돌려 보내기가 무척 아쉽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그들이 큰 변화를 일으킬까?
하지만 두 가지만은 꼭 말해주고 싶다.
행복의 비결과
편견과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는 작은 실행 방법.
진정한 행복은 내가 무언가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고 있는 바로 그 과정이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큰 목표와 작은 목표들을 세워서
지속적으로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가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한다.
내가 25살 나에게 들려주는 두 가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을 택시태워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난 어떤가 물어본다.
지금의 난 잘 살고 있는걸까?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