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송아지와 굳어버린 믿음

찰흙 같은 신념

by 무이무이



우리는 종종 ‘굳건한 믿음’을 칭찬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변하지 않는 확신.
그런데 믿음이 정말 ‘굳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믿음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됩니다. 그리고 형상은 곧 우상이 됩니다.

신앙이나 신념은 원래 "물과 같은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물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흐르고, 스며들고, 무엇과도 섞일 수 있습니다.
그 유연함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을 받아들이고, 필요하면 버리고, 또 새롭게 빚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처럼만 살 수 없습니다.
현실은 ‘형태’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을 찰흙처럼 반죽합니다.
찰흙은 형태를 만들 수 있고, 또다시 반죽하여 새로운 형태로 빚을 수 있습니다.
"이 찰흙 상태"가 창조적인 믿음과 살아있는 신념의 상태입니다.

문제는, 찰흙을 오래 두면 마른다는 겁니다.
마른 찰흙은 더 이상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굳어버린 "돌"이 됩니다.
돌은 조각을 깎아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파괴적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굳은 돌을 ‘완성된 것’이라 여기며
다시는 손대지 않으려 합니다. 아니 부서질까 두려워합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형상은 처음에는 단순한 상징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번 굳어진 형상은 곧 절대적인 것으로 변했고, 그들의 믿음은 그 안에 갇혔습니다.
살아 움직여야 할 믿음이, 차가운 금속이 되어버린 순간입니다.

우리가 붙잡는 ‘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유연하고 살아있던 신념이,
‘이것이 전부다’라는 생각과 함께 굳어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를 향한 길이 아니라

우상숭배의 기초가 됩니다.

우상숭배는 단지 돌이나 금속 형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화할 수 없는 상태’로 믿음을 가두는 것입니다.
찰흙을 반죽하듯, 믿음을 계속 주물러야 합니다.
물을 더해주고, 햇빛에 말라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믿음은 살아있고, 언제든 새롭게 빚어질 수 있습니다.

황금 송아지를 부수는 일은,
굳어버린 믿음을 깨뜨리고
다시 물과 찰흙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고통스러운 깨짐이야말로,
믿음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은 믿음입니까, 아니면 이미 굳어버린 황금 송아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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