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8월 24일 연재될 창세기 둘째 날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빛이 있으라 이야기를 더 하고합니다)
우리는 매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것들을
아무 의심 없이 "진짜"라고 믿습니다.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곧 현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과학은 아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세상은,
실제로는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이죠.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 전체를 이루는 것 중
우리가 눈으로 보고,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보통 물질’은
고작 4~5%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나머지 95%는요?
암흑물질 (27%)
암흑에너지 (68%)
우리가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어둠의 구성 요소들’입니다.
과학자들도 존재는 추정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게 전부야"라고 믿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실은 우주의 아주 얇은 껍질 같은 조각일지도 모릅니다.
우주가 처음 태어났을 때,
물질과 반물질은 거의 똑같은 양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그 둘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없애고, 빛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지금 우주에는 ‘물질’이 남아 있고,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건 뭘 의미할까요?
과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10억 개의 물질-반물질 쌍 중 단 하나의 물질만 살아남았다."
즉, 지금 이 세상은
원래 주어진 전체 물질 중 아주, 아주 조금만
남아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거예요.
재미로 한번 계산해 봅시다.
현재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보통 물질’은 전체 우주의 5%
그 5% 자체도, 우주의 시작에서 남은 10억 분의 1
그걸 곱해보면?
0.000000005%
(소수점 아래로 0이 무려 7개입니다...)
말 그대로,
먼지 속의 그림자보다 작은 비율을 우리는 현실이라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 감정, 꿈, 철학, 믿음...
이런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사람을 움직이고,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법, 예술, 전쟁, 사랑, 종교—
이 모든 것들은 비가시적 정보의 흐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에요.
이걸 우주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요?
우주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99.999999...%의 영역에서
빛과 정보가 흐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정보들이 우주를 기록하고,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창세기에 나오는 첫 문장,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
.
.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이 구절을, 그냥 전구가 켜지는 장면처럼 보지 말고
조금 다르게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빛과 어둠이 나뉘었다는 건,
무언가가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뒤섞여 있었는데,
빛과 어둠이 갈라지면서
‘기록할 수 있는 질서’가 시작된 것이죠.
디지털 언어로 말하면,
이건 0과 1의 분할입니다.
어둠은 0, 빛은 1
그 둘이 나뉘면서
정보를 기록할 기본 틀이 생긴 겁니다
그 순간부터 우주는
빛의 리듬과 주기를 따라
사건들을 구분하고, 기억하고,
흘러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빛이 있으라”는 말은,
우주의 정보 시스템이 가동된 첫 순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위에,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출력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은
빛이 새겨 넣은 정보의 ‘출력본’ 일지도 모릅니다.
정보가 먼저 있었고
빛이 그 정보를 표시했고
우리의 뇌는 그것을 해석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죠.
우리는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체의 흔적, 실체의 신호를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0.000000005%의 조각이라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정보에 마음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정답이다!"라고 단정하는 대신,
다양한 가능성에 귀 기울이고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들에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는 것.
그게 우리가 더 깊고, 더 풍성한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우리가 붙잡고 있는 이 "현실"은
전체 우주 가능성 대비 0.000000005%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실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짜는 아닙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움직이는 진짜 힘일 수 있어요.
.
.
.
“빛이 있으라.”
이 문장은 단지 과거의 선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 중인 우주의 운영체제일지 모릅니다.
빛은 정보를 새기고,
우리는 그 출력을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현실은 지금도 태어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