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나를 통해 깨어날 때.
(8월 24일 연재될 창세기 둘째 날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빛이 있으라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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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움직임, 그리고 지성에 대한 작은 사유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던 날, 이상하게 더 피곤하지 않나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어깨가 무겁고, 생각은 잘 안 굴러가고,
몸은 멀쩡한데 기분은 오래 앓은 사람처럼 늘어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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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게 바로 ‘늙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놀랍게도, 늙는다는 건 단지 세포가 망가진다거나 머리가 희어진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있어요.
그보다 더 본질적인 건—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가 멈춰 있을 때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죠.
우리는 모두 시간 안에 살고 있지만,
정작 시간 자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죠.
그 기준이 된 건, 바로 빛입니다.
빛은 멈춘 적이 없습니다.
태초의 폭발, 빅뱅 이후 단 한순간도.
그 속도는 절대적이고,
1초에 299,792.458미터.
누구도, 무엇도 그보다 빠르지 않아요.
그리고 정말 흥미로운 건—
빛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거나, 멈추게 됩니다.
빛은 스스로 시간의 기준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겐 ‘시간’이란 개념이 없죠.
빛은 태어난 그 순간 그대로,
수십억 년을 달려와도 전혀 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늙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니까요.
우리에겐 질량이 있습니다.
그리고 질량을 가진 존재는 절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없어요.
가까이 갈수록 에너지는 무한대로 필요해지니까요.
그건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춰 있고,
멈춰 있기 때문에 시간을 느끼고,
시간을 느끼기에 늙는 거예요.
빛처럼은 못 달린다 해도,
조금 더 빨리 움직이는 건 가능하겠죠.
실제로, 빠르게 이동하는 우주비행사는
지구에 있는 사람보다 시간을 느리게 경험합니다.
극히 미세하지만, 덜 늙는 거예요.
그 원리를 우리 삶에 적용해본다면
답은 단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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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움직이는 사람은 덜 늙는다.
몸이든, 마음이든.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책상에 앉아계신 분들, 움직이고 싶지 않나요?
하루 10시간을 앉아 있고,
일주일에 5일을 같은 경로로만 움직이고,
그 루틴을 10년 넘게 반복한다면—
몸보다 먼저 닳는 건 감각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감각,
움직이지 않는 생각,
움직이지 않는 인간관계,
그리고 결국 움직이지 않는 삶.
그게 진짜 늙음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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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늙지 않아요.
왜냐하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으니까요.
빛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에요.
빛은 파동이고, 진동이고, 리듬입니다.
양자 수준에서 보면, 마치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점멸처럼 움직여요.
광자 하나에도 주기가 있고, 흔들림이 있어요.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에서,
빛은 늘 움직이며 존재를 증명하죠.
혹시 빛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순간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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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곧 움직임입니다.
그리고 멈춘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는 멈출 수밖에 없지만,
의식과 지성은 멈추지 않을 수 있어요.
생각은 속도 제한이 없습니다.
상상은 빛보다 빠르게 이동하고,
의식은 정보로 우주를 재구성하죠.
그건 빛처럼 빠르고, 가볍고,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
지성이 늙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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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건 몸이 아니라, 움직이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니까, 빛처럼 살 수는 없어요.
하지만 빛에게서 하나 배울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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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멈추지 마라.”
몸이 아프면 마음이라도,
바깥이 어두우면 생각이라도,
세상이 멈춰도 내 안의 리듬은 계속 흔들려야 합니다.
움직이는 사람은 덜 늙습니다.
그리고 빛처럼,
움직이는 존재는 오래도록 살아있습니다.
빛은 단순히 직진하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 부딪히면,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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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절하고, 굴절하고, 반사하고, 투과합니다.
그래서 빛은 장애물 앞에서 멈추지 않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 진행합니다.
좁은 문, 틈새, 막힌 곳을 만난 빛은 멈추지 않아요.
휘어져서, 돌아서서, 굽이굽이 나아갑니다.
인생도 그렇죠.
우리는 늘 직선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우회하고, 누군가는 돌아서고, 누군가는 빙글빙글 돌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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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절하는 삶은, 꺾였지만 부서지지 않은 삶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아름다운 생존 방식입니다.
빛은 밀도에 따라 속도가 바뀝니다.
공기에서 물로, 물에서 유리로 들어가면 방향이 꺾이죠.
이게 바로 굴절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가 선택한 방향이
환경에 따라 어긋나거나 바뀌기도 하죠.
그걸 실패라고 부르지 말아요.
그건 굴절일 뿐이에요.
조금 다르게 가는 것일 뿐,
빛은 여전히 나아가고 있는 거니까요.
거울 앞에 서면,
빛은 나를 비추고 돌아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던진 말, 감정, 태도는
언젠가 돌아옵니다.
세상이 차갑게 느껴진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반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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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우리가 내보낸 빛을 다시 받으며 살아갑니다.
빛은 유리를 통과합니다.
투명한 것을 지나가면서, 더 아름답게 퍼지기도 하죠.
사람도 그래요.
슬픔, 아픔, 상처 같은 걸 그대로 안고 있어도
그걸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통과하면—
그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빛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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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질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늙지 않는다는 건,
절대 젊음을 고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욕망이지 삶이 아니니까요.
진짜 늙지 않는다는 건,
회절처럼 유연하고, 굴절처럼 유동적이며,
반사처럼 성찰하고, 투과처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빛은 그렇게 움직이고,
우리는 그런 빛을 따라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