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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내 머릿속의 블랙홀

우주가나를통해깨어날때

by 무이무이

저의 창세기 셋째날의 이야기를 이어가기전에 블랙홀의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세상의 이치는 살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아무리 깊은 고난이 닥쳐도 결국 헤쳐나가다 보면 그 속내와 원리를 깨닫게 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만은 다르다. 아무리 오래 함께 지내도 저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그 생각을 곱씹는 순간, 인간의 본성, 인간의 뇌는 왠지 블랙홀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홀에는 ‘사건의 지평선’이라 불리는 경계가 있다. 그곳으로 아무리 물질과 빛, 시간과 정보가 빨려 들어가도, 우리는 그 안을 끝내 들여다볼 수 없다. 마치 우리가 지평선을 향해 아무리 달려가도 지평선이 결코 가까워지지 않듯이, 블랙홀에 흡수된 모든 것들은 손에 닿을 수 없는 저편에 숨어버린다.

열 길 물속보다 깊고, 밤하늘보다 더 깜깜한 우리의 뇌 속. 나는 그 심연에 작은 블랙홀 하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뇌는 단순한 판단 기계가 아니다. 우주의 블랙홀이 끝없이 물질과 빛을 빨아들이듯, 우리의 뇌도 끊임없이 정보를 흡수한다. 책에서 읽은 한 문장, 스쳐간 풍경, 누군가와 나눈 대화마저도 모두 뇌라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흘러들어 간다. 그 순간, 그것들은 저장이라기보다 일종의 중첩 상태로 머문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도 않은 채.

흥미로운 건, 과학적으로 블랙홀의 심연에서조차 정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뇌 속의 정보 또한 불확정성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솟아오른다. 블랙홀이 임계점에 다다를 때 양극에서 강력한 "제트 분출"을 터뜨리듯, 인간의 뇌 역시 중첩된 기억과 경험을 새로운 조합으로 뿜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창조라 부른다.

이렇게 본다면 뇌는 두 가지 능력을 지닌다.


첫째, 보이지 않는 관념과 개념, 생각들을 실체화하는 능력. 똑같은 정보를 받아도 사람마다, 심지어 생명체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까닭이다. 이 얘기는 내가 연재 중인 작품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의 첫 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둘째, 흡수된 정보를 중첩시켰다가, 예측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로 재구성해내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순간의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이게 바로 블랙홀을 닮은 뇌의 두 번째 기능이다.

나는 이런 과정을 바라볼 때마다 인간의 사고와 우주의 질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우주의 시작과 끝이 블랙홀에서 비롯되고, 다시 블랙홀로 귀결되듯이 인간의 생각 또한 흡수되고, 중첩되고, 재구성되며,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주의 시작 역시 블랙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내 관점에서 최초의 블랙홀은 일종의 씨앗이었다. 그것은 끝없이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형체 없는 정보들을 수집하며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응축된 것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별과 행성이 태어났다. 별은 타오르고 성장하다가, 다시 중력에 눌려 붕괴하고, 결국 블랙홀로 돌아간다. 시작도 블랙홀, 끝도 블랙홀.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 또한 블랙홀에서 열린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천체의 순환을 넘어선 우주의 원리라고 믿는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며 끝없이 보고 듣고 배우며 수많은 정보를 흡수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지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슬럼프, 공황, 패닉, 멘털 붕괴, 현실자각의 시간을 맞이한다. 마치 모든 것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것처럼, 손에 닿을 수 없는 지평선처럼.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창조의 전조다. 블랙홀이 모든 것을 삼킨 후 제트 분출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듯, 우리의 뇌도 고통과 혼란의 시기를 지나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구성한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인간의 뇌가 블랙홀을 닮았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주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슬럼프와 침묵, 붕괴와 고통조차도 사실은 창조의 과정이다. 블랙홀 속에서 별이 태어나듯, 우리 안에서도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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