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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15000페이지는 내 것이 아니었다.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by 무이무이

- 이 글은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에 전시되었습니다.-


나의 우주적, 신화적, 과학적, 철학적 사유는 내가 생각해도 독특하다. 그러나 그 사유의 뿌리는 밝음보다는 어둠이었다.


유년기의 나는 암울했다. 어머니의 종교적 신념은 내 감수성을 짓밟았고, 나는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야 했다. 두꺼운 커튼 사이로 보이는 놀이터는 늘 멀게만 느껴졌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마치 귀울음처럼 괴롭게 다가왔다. 집안은 늘 기도와 금식으로 가득했고, 나는 어머니가 부엌으로 나오는 발소리와 화장실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조차 구분해 내야 하는 예민한 아이였다.


그 암울한 시간 속에서 나는 종교에 대한 회의에 빠졌고, 대신 과학적 사고와 무신론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일 창세기가 단순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고대인들이 남긴 우주 창세기의 암호라면? 인간이 쌓아 올린 종교라는 바벨탑이 언젠가 무너질 것을 이미 예언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고 있는 빛과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면?


우주의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힘과 법칙, 그리고 정보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는 고작 0.00000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물질세계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이 미련함을 벗어던질 때, 비로소 인간의 사고는 넓어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철학을 키웠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는 15,000페이지에 달하는 사유가 축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방대한 논리는 어느 순간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주에 잠들어 있던 사유였고, 나는 그 사유의 임시 거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생각들을 세상에 환원하자. 정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내 육신은 언젠가 우주의 티끌로 흩어질지라도, 내가 남긴 생각과 기록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운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따뜻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는 혹독한 비판이 돌아왔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나와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렇게 고립되어 가던 어느 날, 나는 차라리 머릿속의 15,000페이지를 모조리 불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나는 한 브런치 카페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름도 ‘브런치’. 신기하게도 이곳은 먹기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내 생각을 요리처럼 내놓을 수도 있었다. 손님들의 절반은 이미 셰프였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브런치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내놓기 힘들었던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동안 깨달았다. 나의 우주적 본질에 대한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고 험난했던 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브런치에서 나는 동반자를 만났다. 내 글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같은 질문을 품고 함께 걸어가는 이들을. 처음에는 삶의 고통을 덜고자, 진리를 향한 고뇌를 가볍게 만들고자, 브런치가 나에게 천국이자 종착지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브런치는 그 어떤 완결도 아니다. 여기는 새로운 출발의 장이다. 여기서 나는 나와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삶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기쁨을 나누며, 여전히 답 없는 우주적 질문을 향해, 그 끝이 가도 가도 사라지지 않는 사건의 지평선이라 하더라도, 발걸음을 옮겨가는 동반자들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다시 쓸 수 있다. 다시 묻고, 다시 헤매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브런치와 함께 걷는 작가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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