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에피소드
밴쿠버를 다시 찾은 건 2023년 여름의 초입이었다.
키칠라노 비치의 작은 카페에서 약속했던 그와의 만남은 1년이 지난 후에야 성사될 수 있었다. 트레이닝을 불과 하루 앞둔 2022년 여름, 운 없게도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19에 감염되었고 그 결과 워크숍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데이비드의 신중한 결론을 듣게 되었다. 몇 주가 지나 몸은 어느 정도 회복 되었고 그는 위로했지만 내년에 재참여 하겠다는 나의 다짐에는 무언의 공허함이 있었다. 타국에서 내년 이맘 즈음의 계획을 확언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에 집어삼켜진 듯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나는 예정되어 있던 토론토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계획했던 한국으로의 귀국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지난해 남겨둔 미련의 크기는 점차 거대해졌다. 그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삶을 위한 연극과 한국에서 내가 단편적으로 경험했던 포럼연극에 대한 생각은 자욱이 짙은 안개처럼 끼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아니, 다시 밴쿠버로 향할까? 결론은 이미 맞이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찬반 토론이 열 띄게 벌어지고 있었다.
'죽기 전 아, 그때 그랬어야 했어..,라는 말은 남기지 말아야지.' 처음 밴쿠버행 티켓을 끊었을 때 품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며칠 뒤 다시 연락을 취한 데이비드는 이런 내 결심을 환대해 주었고, 생각은 곧 실천이 되어 밴쿠버행 비행기에 다시 오른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찬란하기 그지없는 밴쿠버의 여름은 다시금 단단하게 딛고 선 나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삶을 위한 연극 트레이닝은 시작되었다.
트레이닝은 만만치 않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해 중간 점심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여덟 시간씩 매일같이 이어지는 트레이닝에서 언어의 장벽과 즉흥성 기반의 훈련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음에 분명했다.
매일같이 진행되었던 이 주간의 일정 속에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나는 나름의 자부심과 동시에 어렵게 다시 잡은 기회의 시간이란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ACTIVITY
- Group Building, Issue Investigation, Image Theatre, Circle,
- Discussion, Rainbow of Desire, Forum Theatre Structure, Play Creation, Play Rehearsal,
- Forum Theatre, Participants Facilitate Group Building Games and Images with Feedback,
- Images and Forum Plays with Feedback, Cops in the Head, Your Wildest Dream
데이비드가 보여준 워크숍의 흐름은 그가 책에서 정리한 내용을 머리와 몸으로 체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집하듯 다양한 경우의 워크숍에 참여해 본 나였지만 그가 진행하는 삶을 위한 연극의 트레이닝 방식은 군더더기 없는 유형의 형태였다. 화려하지 않았으므로 대단한 볼거리가 풍성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막대한 경험과 진정성으로 여닫는 활동 구성은 참여자들을 그의 말과 행동에 쉽사리 동화되는 편리한 상황에 놓이도록 만들었다.
그룹 빌딩(Group Building)에서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본질'과 이미지 연극에서 말하는 '이미지의 상징성'에 관한 것이었다.
"드라마의 본질은 갈등에 있다. 한 캐릭터가 원하는 것과 다른 캐릭터가 원하는 것이 서로 대립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나 방송 드라마, 연극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만드는 연극에서 우리는 우리가 탐구하는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캐릭터 간의 투쟁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연극이 얼마나 상징적인가와 상관없이, 캐릭터들은 모두가 서로를 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 없이 드라마는 존재할 수 없다."
"순간의 삶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 그것은 이미지다. 연극, 영화, 텔레비전 방송의 특정 순간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 그것도 이미지다. 이미지는 잡지, 광고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디든 존재한다.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과 "억압받는 자의 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에서 이미지는 참가자가 자신의 몸과 다른 참가자의 몸을 사용해 만든 고정된 타블로이다. 그리고 이 타블로는 참가자의 삶 순간에 대한 생생한 사진과 같다. 이미지는 여러 참가자가 함께 작업하여 만들어질 수도 있다. 또한 이미지는 무언(無言)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징적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미지는 연극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다. 연출은 배우의 몸과 조명 그리고 세트 등을 연출하며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와 함께 작업할 때 비록 다루는 주제가 매우 진지하고 무거울지라도, 이미지가 유기적인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미지 연극을 바탕으로 포럼연극의 구조를 학습하고 이어진 창조된 연극은 포럼연극 제작 과정의 발판이 된다.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흐름 안에서 참여자는 연극게임->이미지 연극->포럼연극 구조 및 이론->포럼연극 창작 순으로 이뤄진 과정 안에 동화되어 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포럼연극의 창작 과정에서 이미지 연극의 쓰임과 데이비드가 보여준 조커(Joker/Facilitator)의 역량 부분이었다.
이 지면을 통해 트레이닝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소개하고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개인 및 집단에게 봉착된 사회적 이슈와 그것을 포럼연극을 통해 논의하고 피력해 낼 힘을 길러내는 것이 삶을 위한 연극의 핵심 가치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을 위한 연극 트레이닝이 끝난 뒤 답을 내리기 어려웠던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나는 왜 연극을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연극인가?', 나는 어떤 연극을 할 수 있는가?' 정답이 없는 살아있는 질문이기에 질문에 대한 답도 생물처럼 변해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삶을 위한 연극,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