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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민 Jan 21. 2016

그 사람이란 걸 어떻게 확신해?

사랑에는 ‘확신’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

 “너는어떻게 그 사람이라는 걸 확신해?”


 사람들은 확신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오랜 연인들, 행복한 연인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요구받는다. 당신이 확신하는 근거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그 근거들로부터 나의 근거들도 찾고 싶노라고. 그러나 그가 들려줄 구체적인 확신의 근거들은 그다지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응용가능한 성질의 것들이 아닌 까닭이다. 연애와 같은 삶의 문제들에서 확신하는 이들은 정연한 근거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확신하는 자신의 ‘직관’과 ‘직감’을 믿기 때문에 확신한다. 



 나는 연애는 ‘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른다는 건 베팅을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서 연애를 시작하는 게 결코 아니기에, 연애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베팅이다. 누군가와의 연애를 결정한다는 것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모델이 아니라,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 앞으로 더 알아볼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위험부담이 있다. (여성들은 특히 크다.) 내가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멋진 이 상대가 사실은 ‘미친놈’이면 어쩔 것인가? 미친놈은 아니라 해도, 좋은 놈 역시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내게 상처만 남기고 떠날 놈이면 어떻게 하는가? 아주 좋은 놈일 가능성과 함께, 언제나 이런 위험부담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므로 연애는 지르는 것이다. 위험부담이 제로임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 이 위험부담을 안고, 내가 발견한 좋은 연애의 가능성을 믿고, 그가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시간들과 한정된 에너지와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쥘 수 있었을 모든 기회들을,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거는 것이다. 이 선택을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기로 하면서. 



 연애는 지르는 것


 이 베팅에서 믿을 건 나뿐이라, 모두가 따르면 좋을 노하우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이러저러한 특징을 보이면 나쁜 놈, 혹은 미친놈일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하라고 조언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나의 경험이 있을 때 활용할 수 있을 팁일 뿐 ‘생짜’인 내가 나의 마음을 흔드는 이를 눈 앞에 두고 처음부터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란 대단히 어렵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N해를 살며 습득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이번 연애를 타진하는 것이다. 함께 할 시간들이 기대되는가? 비롯될 고통들도 기꺼이 감당해볼 용의가 있는가? ‘좋은’ 사람 같은가? 개별적인 대답들은 모두 용해되어 최종적으로 나의 ‘감’이 답한다. 결국 이 감이 좋아야 한다.


 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실제로 감에 따라 결정을 내려 보는 경험이다. 간접 경험도 물론 도움이 되고, 어떤 이들은 간접 경험만으로도 현명해질 수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 갖은 어리석은 짓들을 다 저질러본 후에야 내게 필요한 것들을 깨칠 수 있었다. 그렇게 저지르는 사이 나는 마주치면 낯 뜨거울 이들도 적지 않게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부이던 시기는 금방 지나가버렸고, 그렇게 얻은 것만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나는 그 시절들이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부끄럽지 않다. 


 ‘흑역사’는 피할 수 없다. 20대 초반의 연애는 시간이 흐르면 필연적으로 흑역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대 초반은 타인의 시선과 욕망으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분리해내는 연습을 하는 시기고, 연애의 흑역사란 내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욕망을 좇다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역사를 딛고 축적된 자신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가 보다 중심잡힌, 보다 ‘사람다운’ 연애를 할 수 있게 한다. 그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연애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리된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맞는’ 사람,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지름과 흑역사, 그리고 용기다. 용기를 가지고 질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흑역사가 쌓이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이 직감을 길러준다. 흑역사는 진짜 내 연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같은 것이다. 흑역사 한 점 없이 한 큐에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으면서, 혹시 이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불안까지 불식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약간의 지름과 흑역사, 그리고 용기 


 그러니까 돌다리 두드려보지 말고, 좋은 남자/여자의 특징 찾아보지 말고, 이 사람이 온당한가 안 한가 남한테 물어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면 된다.


 아뿔싸, 잘못 판단해 잘못 질렀다. 그럴 때는 이불킥 하며 한 두어 주 견디다 보면 또 괜찮아진다. 사람은 사랑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어리석지만 끝난 후에는 대개 현명해지는 법이라, 삽질들은 현명해진 후에 자양분 삼으면 될 뿐이다. 연애가 할수록 느는 것이라면 관건은 이 끝난 후의 ‘자원화’ 정도일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평범한 진리 역시 깨칠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을 ‘몸으로’ 껴안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맺어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내가 믿는 가능성에 베팅해보는 것이다. 사랑은 이처럼 필연 없음 받아들인 후에 스스로에게 거는 자기확신이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해하는 자신을 납득시키고,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하는. 


 용기 있게 베팅하는 당신들의 연애에, 건투를 빈다.



주체적 연애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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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알마, 2014)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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