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커다란 고통처럼, 가장 커다란 행복도 타자로부터 온다
좋은 짝을 만나면 된다.
연애 기술을 배우면 연애를 잘 할 수 있다.
더 사랑하는 것은 을이 되는 것이고, 손해 보는 것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두렵다.
연애경험이 많으면 연애를 잘 한다.
그 년/놈은 나쁜 년/놈이었다.
연애 때문에 나를 바꾸는 게 싫다.
연애는 연애일 뿐이다.
좋은 연애는 좋은 짝을 고르면/만나면 할 수 있다
우리는 연애를 ‘대상’의 문제, 곧 대상을 ‘선택’하는 문제라고 착각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하는 건 ‘주체’의 문제다. 못난 주체는 아무리 훌륭한 대상을 만나도 관계를 파국으로 끌고 간다.
연애기술을 배우면 연애를 잘 할 수 있다
연애의 심리/기술 담론은 우리 사회에 고착화되어 있는 남녀에 관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며, 상대적으로 ‘관계의 문제’에 관심이 더 많은 여성에게 남성의 이러저러한 (못난) 부분들을 이해할 것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연애의 심리/기술 담론은, 물론 연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효과가 있는 건 연애에 돌입하는 데까지다. 더 중요한 것, 우리가 좀 더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방법, 그렇게 맺어진 깊고 단단한 유대관계가 한 인간에게 가져오는 변화와 성장다.
더 사랑하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다/두렵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물론 두렵다. 그건 내가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지켜온 나의 가드를 내려놓는 일이다. 공격을 허용하는 일이고,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한 치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방어할 준비를 하고 맺는 관계는 결코 깊어질 수 없다.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언제가 찾아올 상처를 허용하고 끌어안기로 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결정적으로 바꾸는 건 나의 모든 것을 놓아보는 경험이다.
연애경험이 많으면 연애를 잘 한다
경험은 양이 아니라 질로 계산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충분하고, 늘 경계에 머물다 가드를 올리고 돌아나온 이라면 백 번의 경험도 사랑과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년/놈은 나쁜 년/놈이었다
그 년/놈들은 물론 나쁜 짓을 했겠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공정해지자. 그 시절 나는 그들을 사랑할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미숙하고 약했던 부분마저 객관화하여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별을 통해 더 큰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뜨겁고 절절하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우리 생에 결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연애 때문에 나를 바꾸는 게 싫다
인간은 자기완결적인 존재가 아니다. 대단히 주체적인 것 같은 우리는 실상 언제나 외부의 자극에 의해 흔들리고 부딪치며 새롭게 생성되고 변화되어 간다. 이제까지 만난 상대들이 당신에게 요구한 변화가 당신이 원했던 방향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방향이 일치하는, 기꺼이 변하고 싶어 지도록 하는 누군가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관계에서 상대의 요구를 수용할 틈이 조금도 없는 거라면, 그건 주체성도 무엇도 아닌 단순한 ‘고립’에 지나지 않음 역시 기억하자. 외부의 자극들이 나를 흘러다닐 수 있게 나를 열어두자.
연애는 연애일 뿐이다
연애는 ‘유대’의 경험이다. 누군가를 깊이 신뢰하는 안정을 가져보는 경험이고, 그로 인해 더 나은 나를 꿈꿔보는 경험이며, 나로 인해 변화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경험이고, 상처를 허락하는 경험이어서, 그런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의 고통과 의미마저 배워보는 경험이다. 이런 유대가 연인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연애는 이런 일들이 가능한 가장 접하기 쉬운 통로다. 깊은 연애를 해보는 건 한 인간의 일생에 더 없이 이롭다.
가장 커다란 고통처럼, 가장 커다란 행복 역시 타자로부터 온다.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온다는 아니 에르노의 말을 뒤집어서, 나는 사랑에 관한 가장 명쾌한 지침으로 지니고 있다. 나에게 고통과 함께 행복을 선사하는 타자를 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내게는 연애다.
이런 관점에서, 연애에 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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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알마, 2014)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