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져가는 사람들

유럽의 또다른 시민, 로마니

by 다다

독일 국회의사당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의회를 발아래 두고 의회의사당의 꼭대기에 올라 베를린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인데 워낙 인기가 좋아 한참 전에 예약해야 한다. 누구나 예약만 하면 쉽게 방문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독일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 보안이 엄격하다. 여권으로 신분확인은 물론 보안검색대도 통과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눈뜨고 코 베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와 일행은 국회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을 연결하는 오솔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불과 30초 거리에 국회의사당이 있었고 그 권위만큼이나 이 주변의 안전에 대해서도 확신이 있었다.


우리의 입장시간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몰려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두 명의 여인이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종이를 내보이며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고 외국인인 우리에게도 서명을 부탁했다. 내용에 불만이 없었고, 한국에서도 서명운동은 워낙 흔하기도 해서 별 의심 없이 서명을 하려던 찰나 지나가던 독일인이 우리를 극구 말렸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그들이 불법적으로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동시에 그 여성들을 우리로부터 떼어놓고 쫓아냈다. 이런 불법행동을 계속한다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무서운 표정으로 그들을 협박하기까지 했다. 우리에게는 자상한 표정으로 그들을 다시 만나면 피하라고 말해주고는 가던 길을 갔다. 서명운동을 하던 여성들도 그 남자도 자리를 떴지만 얼떨떨했다. 그때, 다른 일행이 다가와 말했다.


“저 30유로 뜯겼어요.”


일행의 30유로를 뜯어간 사람들은 로마니 여성들이었다. 유럽여행을 하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들은 두 세명씩 짝을 이뤄 다니며 관광지 주변에서 이런 서명을 받는다. 서명을 하고 나면 손으로 교묘히 가려졌던 부분을 가리키며 돈을 요구한다. 서명은 단지 이런 내용에 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내겠다는 의미인데 그 부분만 가린 채 서명을 받는 것이다. 순진한 관광객이 서명하고 나면 서명했으니 돈을 내야 한다고 곤혹스럽게 하고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나이 어린 나의 일행은 당황했지만 좋은 마음으로 적은 돈을 주려다가 지갑으로 손을 뻗는 그들에게 무작정 당하고 말았다. 순간 헉했지만 이미 그들의 손에 30유로가 쥐어져 있었고 그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로마와 신티를 추모하는 공간



이런 행위는 독일 정부가 불법으로 엄격하게 단속을 하고 있다. 당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다른 관광지에서 이런 행위에 대해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안내문도 보았다. 그들이 돈을 빼앗는 방식이 교묘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훔쳐간 것도 아닌데 준 사람은 준 게 아니라 뜯겼다는 표현을 썼다. 우리가 코 베인 곳이 로마민족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공간 앞이라 더욱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가 흔히 ‘집시’라고 알고 있는 소수민족의 이름은 로마(Roma)이다. 기원은 불명확하지만 북인도 등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며 스스로를 로마니(Romany)라고 부른다. 집시라는 표현에는 숱한 차별과 박해를 받아온 그들의 역사가 있을뿐더러 정확한 표현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이 단어를 거부한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유럽 문화에 동화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로마니는 1,1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강제수용소의 로마니. 범죄와 전염병의 원인으로 몰린 수많은 로마니가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해방 후 집시 막사의 여성 생존자들.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들의 역사는 차별과 억압의 역사이다. 지금 우리가 로마니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은 좀도둑, 유랑민 정도이지만 (물론 자유와 낭만의 상징으로 읽는 사람도 더러 있다.) 유럽에서의 인식은 더욱 참혹하다. 나치 독일은 이들을 열등하고 더러운 민족으로 분류하고 임상실험, 강제노역, 학살 등을 자행했는데 희생자 수 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대략 25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대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들은 늘 아이를 납치하거나 도둑질과 구걸로 생활한다는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 극우민족주의자들에게는 테러와 연쇄살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정부와 정책에 의한 공식적인 차별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문채취와 강제추방등이 정부에 의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고 직업과 주거시설을 구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최소한의 교육과 의료 등 복지에 대한 접근도 막혀있다. 기본적인 복지에서조차 소외당한 이들이 빈곤과 범죄로 빠지게 되는 악순환이 과연 로마민족의 탓인가. 유럽정부와 시민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약 1300명의 로마인이 강제로 퇴거당했다. 집을 잃은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이탈리아. © 국제 앰네스티


로마족 차별에 반대하는 앰네스티의 캠페인 © 국제 앰네스티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로마민족을 차별하고 의심했던 역사의 모든 시기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라고 사과했지만 로마니를 바라보는 유럽사회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럽사회가 로마니에게 저질렀던 범죄와 차별의 역사를 모조리 잊어버린 채 소수 로마니의 범죄만을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럽사회에서 로마민족은 차별의 최전선에 서있다. 이런 차별이 로마민족에게만 머무를 리 만무하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을 넘어 아시아인에게까지 이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시 나치독일과 같은 시대가 온다면 로마민족은 어떻게 될까? 과거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서명을 요구했던 로마니 여인들의 행동은 다른 범죄에 비하면 나은 경우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로마니에게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한 사례가 무수히 올라와있다. 그러나 소수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전체를 범죄자로 인식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로마니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모두 로마니인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로마니가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그들의 생계를 꾸리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차별에 저항하며 그들의 인권이 땅바닥으로 처박히지 않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럽사회의 로마니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여행자이지만 나 역시 소수민족에게 차별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봤다. 여행자인 나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길 위의 수많은 사람 중에 로마니가 없었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유럽의 1900년대 초중반을 지금의 우리는 야만의 시대로 인식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지금을 야만의 시대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나치 독일의 독일 시민들이 어떻게 나치에 협력했는지 연구했던 것처럼 미래의 사람들은 로마니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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