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템 대신 용기를!
당근마켓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당근마켓에 잠식당했다가 밤만 되면 후회한다. 이름은 엄청 귀여운데 요물이다.
당근마켓에서 주로 검색하는 키워드는
아기침대. 스윙. 아기체육관. 스와들업. 바운서. 타이니러브 모빌. 역류방지쿠션. 베이비 브레짜
와 같은 아기용품이다.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아기가 태어난 후 닥쳐올 상황들이 두렵다. 맘카페를 들락날락거리며 육아템 리스트를 꼽았다. 이 리스트를 뽑아준 맘카페의 회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이거 없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쌍둥이 육아로 멘탈이 나가고 싶지는 않아서 육아템의 도움을 받기로 진작에 마음을 굳혔다. 신생아 육아템들은 사용 시기가 짧으니 중고 구매가 좋다는 조언을 시작으로 나의 당근마켓 세계가 열린 것이다.
며칠을 당근마켓세계에 살았지만 내가 구입한 것은 고작 역류방지쿠션과 수유패드, 모유저장용기가 전부이다. 아기용품의 브랜드도 다양한데 그 브랜드 안에서 모델명도 다양해서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관심 목록에 등록만 해두었다. 그러곤 여러 사이트의 상품정보 찾아, 후기찾아 왔다갔다 왔다갔다.
오늘은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자괴감으로 스트레스가 밀려왔고 돈만 있으면 새것을 구매하고 말텐데 이것저것 따지는 내가 답답했다. 정말이지 가성비로 따지자면 최악이다. 가격이 싸다고 해도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나의 시간은 어쩌라고. 육아를 시작하기도 전에 내 주머니의 현실을 마주하곤 생각했다. 망할 자본주의. 돈 없으면 육아마저 어렵겠구나, 미래가 보였다.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육아템을 사기 위한 시간과 노력은 얼마만큼 필요한걸까. 이마저도 노동시간으로 계산한다면 오늘 나의 일당은 적어도 오만원쯤은 될 것이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이 노동에 대해 한탄하다가 나의 부모를 생각했다. 적어도 내 부모는 아이 넷을 키우며 아기침대도 스윙도, 아기체육관이나 역류방지쿠션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맘마 먹고 쑥쑥 잘 자랐다. 그러니까, 육아용품이 육아를 좀 더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템빨로 육아를 해야만 하는 고단한 엄마들의 사정을 파고든 광대한 육아시장에 하마터면 잠식당할 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는데 육아용품시장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마음을 바꿨다. 아기침대 대신에 집에 있는 요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도, 남편도 바닥에서 잘 컸다. 모로 반사에 효과적이라는 스와들업은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부모와 그들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속싸개로만 키워보려고 한다. 스윙과 바운서와 아기체육관도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가능하다면 아기 구덕을 구하고 싶다. 제주의 전통 아기침대인 구덕에서 나도 내 동생들도, 내 부모도 자랐다. 자동스윙기능으로 엄마의 노동시간을 확보해주지는 않지만 아기의 배를 토닥이며 웡이자랑(제주지방 자장가)을 부르며 아기와 교감했던 여성들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건조기도 식기세척기도 없던 시절, 모든 가사노동의 짐을 짊어졌던 여성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하나도 둘도 아니고 말이지.
세대는 변했지만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비싼 육아템들이 위로가 되는, 그마저도 나처럼 가난한 여성들에겐 녹록지 않은 암울한 현실. 평등하지 않은 이 구조를 가정 내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나처럼 집에만 있는 엄마에게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템빨 없는 육아가 가능할지 몰라도 일 하는 엄마들에게 나와 같은 다짐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것이다. 출산율이 낮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필요한데 몇몇 남성들과 관료들에겐 이게 복잡한 논리 과정인 것일까? 일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답을 찾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지.
아무튼 나는 아이를 함께 키워줄 어른들도, 마을도 없다. 그리고 각종 육아템들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아템에 의존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도무지 어쩔 수 없을 때 템을 장착하더라도 적어도 미리 겁먹고 스트레스부터 받지 않기로 다짐했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더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