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에는 심장이 세 개 있다. 처음부터 내가 갖고 태어난 것 하나와 최근에 새로 생긴 두 개. 하나는 내 것이 맞지만 두 개는 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안에서 뛰고 있다. 각각 다른 심박수로.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임 병원을 찾았다. 여러 과정을 거쳐 임신이 되었다. 두 개의 배아를 포궁 안으로 넣었는데 둘 다 철썩 달라붙어 쌍둥이가 생겼다.
임신을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고역이었는데 임신이 되고서도 힘들었다. 배아가 착상이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입덧이 시작되었다. 라면이나 국은 물론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끓여마시던 보리차도 마실 수 없었다. 생수마저 특유의 냄새 때문에 아주아주아주 목이 마르지 않으면 물도 마시지 않았다. 쌀에게 특유의 비린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참크래커와 입덧약으로 달래는 나날을 보냈다. 6kg쯤 살이 빠졌다.
골반도 너무 아팠다. 의사 선생님은 골반이 작은 사람들은 포궁이 커지면서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아기가 자라면서 포궁이 좀 더 위로 올라가면 괜찮아질거라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밖에 해주지 않았다. 절뚝절뚝 걷던 어느 날, 너무 아파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골반의 통증이 임신 12주쯤 되었을 때 사라졌다. 16주가 되니 지독한 입덧과 깨질듯한 두통도 함께 사라졌다.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냥 기뻤다. 몇 번의 하혈과 통증을 넘기고 나니 현기증이 찾아왔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치과 치료를 받다가, 친구 집에서 차를 마시다가, 서서 샤워하다가 어지러워 쓰러질 뻔했다.
나의 고통 호소에 의사 선생님은 임신해서 그렇다, 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병원 대신 인터넷을 전전했다. 나 말고도 많은 임산부들이 임신 중 나타난 몸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된 의학적 설명을 듣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종종 찾아왔다. 이대로 다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어떤 임산부는 임신하고도 일도 잘만 하던데 내가 의지가 약한 것은 아닐까. 몸이 고단해 책 한 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날들 속에서 불안함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임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배운 것도 있다. 그동안 임신한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일이 왜 이렇게 아득해야만 할까. 아이를 낳을 때에만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임산부처럼 보이지 않는 임신 초기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의 몸이 불편해지고나니 비로소 다른 몸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글과 말을 통해 어렴풋이 듣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출산율 부족에 대한 뉴스는 연말과 연초를 장식하는 레퍼토리이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떠들어대면서 임신과 출산과정에 대한 이해와 배움은 없다. 모든 사람이 임신을 해야 될 필요도, 그럴 수도 없지만 이 과정이 사회에서 그토록 중요한 일이라면 모두 함께 공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 여성에게만 주어진 성역할과 오해와 갈등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 좀 더 확장한다면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고비가 더 남았다. (무섭다ㅜ)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철분과 비타민과 유산균을 삼키며 다짐한다.
잘해보자, 세 개의 심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