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시민단체의 간사일이었다. 내가 원래 일하던 분야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라 솔깃했다. 더군다나 쌍둥이 엄마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 충분히 배려해준다는 답도 들었다. 육아에 지쳐있던 때였다. 일을 하면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아 고민 없이 단번에 하겠다고 했다. 당장 내일까지 이력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력서를 쓰다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죄송한데, 저 못하겠어요.
이미 일을 그만둔 지 4년이 되었다. 어떻게 기획안을 쓰고 보고서를 쓰는지 가물가물했다. 무엇보다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자기소개?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쌍둥이 엄마라고 소개해야 하나? 갑자기 주눅 들었다. 4년간의 공백을 잘 메울 자신이 없었다. 어디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감 좀 잡은 다음 일해야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스스로 못하겠다고 말했다.
거절한 그날은 하루 종일 우울했다. 지난 4년 동안 큼직큼직한 사건들을 나열해봤다. 시험관 시술, 임신, 출산, 육아. 이력서에 쓴다면 이 역시 경력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누가 인정해줄까 싶은 마음에 씁쓸했다. 육아하느라 일에 대한 감각도 잃어버린지 오래였고 사람들을 만난 지도 오래라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해낼 자신도 없었다. 이러다가 영영 아이들만 키우느라 내 인생을 써버리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과거에 그렸던 30대 중반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유식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바지와 감지 못해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과 주방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지금의 나는 내 상상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돌봄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 급여를 받게 된다면 나는 좀 더 자신 있게 시험관 시술, 임신, 출산과 육아를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 만약 급여를 받는다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조금 설레는 상상을 해본다. 아이를 돌보느라 바지에 묻은 이유식을 털어낼 시간이 없어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를.
저 직업 있어요.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있고요,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