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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Oct 24. 2021

이것은 왜 노동이 아닌가요?

육아노동에도 산재적용을!

“어쩔 수 없어요. 앞으로 한 2~3년은 계속 아플 거예요.”     

          

허리가 아파서 주말에 겨우 시간을 내 한의원에 왔는데 돌아오는 말은 허무했다. 한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통증을 줄여주는 약침을 맞으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했다. 약침은 한 대에 오천 원이라는 말과 함께. 한의원 침대에 누워 ‘여기 한번 약침 놔드릴까요?’ 하는 한의사의 물음에 네네, 대답하다 보니 병원비만 7만 원이 나왔다. 뜨악했다. 허리는 여전히 아픈데 어깨까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육아로 인한 재해는 왜 산재 적용이 안될까.          

     

출산 후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이 끝난 후 한 달 간 산후도우미 선생님 두 분을 모셨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산후도우미 지원기간이 끝난 후에는 남편이 두 달간 출산휴가를 냈다. 석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독박이 아닌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 산후조리를 하고 육아를 했는데도 온몸이 아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서 젖병 설거지와 이유식 만들기는 일찌감치 남편 몫이 되었고 각종 육아템으로 중무장하고 쌍둥이를 안아주는 시간을 줄였다. 그런데도 내 몸은 너무 아팠다. 무릎보호대와 팔목보호대도 무용지물이었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무릎이 시렸고 허리통증이 심해서 침대에 누우면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젖몸살 때문에 울며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생겼다. 남편의 출산휴가가 끝난 후에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있고 밥 차려 먹을 힘도 없었다. 맥주를 밥으로 대신하다 보니 위장병이 생겼다. 어깨와 허리, 무릎은 여전히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삐거덕거리는 몸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커갔고 나의 능력치도 늘어났다. 동시에 분유 먹이기는 일도 아니고 합쳐서 16kg이나 되는 두 아이를 한꺼번에 안을 수 있는 스킬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양가 부모님께 보낼 사진을 찍는 것도 내 몫이다. 나는 기가 막히게 둘이서 동시에 웃는 모습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아이가 잠들면 청소와 빨래를 후다닥 해치우고 젖병과 침으로 범벅이 된 장난감도 하루에 한 번 소독한다. 많은 일을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 안에 해낼 수 있다.     

          

돌봄은 다만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양육자의 몫이다. 분유와 기저귀가 떨어지지 않게 체크하고 주문하는 것, 이유식과 간식을 준비하는 것, 계절과 몸에 맞는 옷을 사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발달단계에 맞는 육아용품을 알아보고 마련하는 것에도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쌍둥이라 비용도 두 배로 들기 때문에 최저가를 검색하고 당근마켓에 알림을 등록한 후 싼 가격에 육아용품을 사는 것은 우리 가계 형편에 꼭 필요한 일이다. 현금처럼 적립되는 포인트까지 계산해 최저가를 찾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구매하는 보통 가격이 아닌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인터넷과 당근마켓을 들락날락 해야 하는데 효율이 제로인 이 일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할수록 시간이 없는 이유를 나는 안다. 아이들이 잠을 못 자거나 투정을 부리는 일이 지속되면 유튜브와 책을 헤매며 공부한다. 글쓰기 수업 때 읽어야 할 책보다도 육아책이 우선이다. 나에게 더 현실적이고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문제나 물리적인 시간뿐만이 아니다. 나는 요즘 씨발병에 걸렸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는 말끝마다 씨발을 붙인다. 남편이 늦게 귀가해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밥 먹었겠냐 씨발. 이라고 대답해야만 성에 차는 것이다. 남편이 그놈의 씨발 좀 그만할 수 없냐고 물으니, 씨발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씨발. 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긴 한숨을 쉬었다. 밤이 되면 쌓인 택배 상자를 갈갈이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할수록 보고 싶은 영화를 보지 못할수록 나의 폭력성이 드러났다. 불안장애도 생겼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건·사고가 구체적으로 상상이 됐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일이 닥칠 것 같은 두려움에 손발이 떨리고 자면서도 울었다. 자다 일어나 아이들은 잘 자는지, 숨은 쉬는지 들여다봤다. 남편은 정신과 치료라도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나는 답했다. 내가 병원에 갈 시간이 있냐, 씨발.     

          

절망적인 것은 한의사 선생님 말처럼 앞으로 최소 2~3년은 신체적인 고통을 담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정신적인 고통은 언제 끝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육아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아이의 미소로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니다. 아이는 사랑스럽고 덕분에 행복하지만 나는 다른 보상을 원한다.     

          

뉴스에서는 잊을만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도하고 정부는 아이를 낳으면 주어지는 각종 정책에 대해 홍보한다. 출산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도 왜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놓는 것일까. 나의 고단함은 왜 사회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가정 내에서 개인, 특히 여성이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로 남아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다. 국가에서 파스 한 장이라도 준다면 덜 불만스러울 텐데 말이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급성장한 탓에 자주 찾아오는 성장통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날에는 하루 20시간을 안고 어르며 시간을 보낸다. 상황이 좋아도 최소 12시간은 일을 하며 보내는데 나의 임금은 0원이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대신 나오는 양육수당이 임금이라면 임금일까. 한 달에 20만 원 씩 둘이니까 40만 원. 내 이름이 아닌 아이들의 이름으로 아빠 통장에 꽂히는 돈. 모두가 매우 중요하다는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는데 사회적 존중이나 경제적 보상을 원하는 것이 무리한 것일까? 이런 것들이 보장된다면 씨발을 입에 달고 살지는 않을텐데.     

          

오늘은 밤 열 시에 퇴근했다. 맥주 한잔하면서 영화나 볼까. 아, 아니다. 분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분유 먼저 주문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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