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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Sep 03. 2019

논란의 이면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어느 고등학교를 진학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시골의 중학교에서는 전교 상위권 안에만 들면 시내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약간의 방황기를 거치면서 공부를 싫어하긴 했지만 나 역시 시내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성적이 되었다. 어떤 친구는 남녀공학인 학교에 함께 가자고 했고 어떤 친구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여고에 함께 가자고 했다. 어떤 친구는 가장 번화가에 있던 여학교는 교복이 촌스러우니 절대 가지 말자고도 했다.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들뜨는 일이었다.


원서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올 즈음,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결정을 좀 서두르라고 말했다. 며칠을 고민했지만 어떤 학교를 가야 좋을지 여전히 고민스러웠고 부모님도 뾰족한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 즈음 엄마가 우리 둘만 외식을 하자고 했다. 동네에 딱 하나 밖에 없는 경양식 집으로 갔다. 여긴 아주아주 특별한 날에만 우리 가족이 외식을 오던 곳이었다. 이런 곳에 동생들도 없이 나 혼자 오다니! 돈가스를 다 먹어갈 즈음 엄마가 시내에 있는 학교 말고 그냥 우리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알겠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알았다. 시골에서 시내로 유학을 가게 된다면 방도 구해야 하고 생활비도 든다. 시골학교보다 학비도 비싸다. 그런 비용이 우리 집안 형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우리집에서 도보로 10분정도, 주위에는 마늘밭밖에 없어서 마늘밭에 떠있는 섬이라 불리운 그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돈가스 집이 망하기 전까지 몇 번이나 더 갈 수 있었다. 돈가스 집이 망하고 그 자리에 노래방이 생겼는데 나와 친구들은 그 노래방의 단골이 되었다. 그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어 다행이지만 마음 한켠에 남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도시와 시골의 생활격차와 도시학교와 시골학교의 학력격차로 인한 차별은 여전하다.  


얼마 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제자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오년간 대안학교 교사였던 나는 대학입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다. 이 친구 역시 중고등학교를 전부 대안학교로 진학하면서 대학입시의 문턱을 새삼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 둘이 카페에 앉아 지난 2년간의 학교생활을 함께 정리했다. 우리는 수십권의 책을 읽고 수십편의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봤고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밀양에서 할매들과 어깨 겯고 국가에게 질문했고 베트남에서 전쟁의 피해자를 만나 평화에 대해 고민했으며 핀란드 사회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살아갈 사회에 대한 상상을 했다. 이런 공부가 이 친구가 대학가는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최근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뉴스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설전이 오가는 말들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이나 내가 가르치던 학생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은 온통,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 중 어떤 누군가는 원하는 바를 얻게 되겠지만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어떤 것도 온당한 것은 없다. 더 많이 가져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학교를 갔기 때문에 그 다음 순서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처럼 즐겁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나의 학생들처럼 멋진 공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연민이 들다가도 정신이 번쩍 드는 이유는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세상에 대한,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부디 그들이 법과 국민의 도덕적 정서 이전에 스스로에게 정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길 바래본다.


소심한 나는 며칠을 생각하다 고작 마음을 다 잡는다. 
비관에 빠지지 말자. 저항마저 빼앗긴 얼간이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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