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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Sep 24. 2019

채식선언

기후변화에 맞서는 또 다른 방법

치킨을 좋아한다. 일상이 지칠 때 나는 혼자 치킨을 먹는다. 바삭한 치킨은 위안이었다. 닭발도 좋아한다. 매콤한 양념과 함께 즐기는 쫄깃한 맛을 어떻게 다 표현하랴. 삼겹살도 좋아한다. 삼겹살은 역시 제주돼지가 최고다. 노릇노릇 자글자글 구워 소금장에 푹 찍어먹으면... 그만하자. 침 고인다.     


채식을 선언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오래전부터 고민해왔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음식들을 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한국에서 채식은 불가능해”라는 말 뒤에 숨었다. 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차고 넘치는 고깃집은 그렇다 치더라도 설렁탕, 김치찌개, 백반정식, 냉면, 만두, 탕수육, 돈가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음식 대부분은 고기를 재료로 한다. 이 와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떡볶이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물론 떡볶이 국물에 햄이 들어간 김밥을 찍어먹는 것은 포기해야 했지만.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환경이슈 때문이다.

2019년, 브라질에만 7만 5천 번이 넘는 산불이 일어났고 그 산불은 거의 인간에 의해 저질러졌으면 그 이유는 소에게 먹일 대두를 재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햄버거를 먹은 기억이 있는 이상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는 것이다. 지구의 허파라고 말만 하면서 그 허파를 갉아먹고 있던 존재가 바로 나였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일상은 얼마나 많은 오염으로 얼룩져있나. 여행하기 위해 타야 하는 비행기는 기차보다 스무 배나 높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육식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전체 탄소배출량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물건들 대부분은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행위의 결과는 기후변화로 나타난다. 이 재앙은 가난한 나라에서 더 두드러진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후변화를 그냥 ‘위기’로만 말하기엔 간단치 않은 문제다.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가 와도 에어컨과 보일러를 가동할 수 있는 이상 우리에겐 별 문제가 아니다. 몽골의 사막화로 유목민이 그동안 지켜왔던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흔들려도, 섬나라 국가들이 물에 잠겨도, 폭우와 태풍으로 온 도시를 덮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도 그 슬픔을 공유하기엔 우리와 그들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도 더 멀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불편함이 퇴적되어 더 이상 채식을 미룰 수가 없었다. 지구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자원을 아껴 쓰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그즈음 봤던 그레타 툰베리의 테드 강연도 한 몫했다. 그레타 툰베리는 모두가 지금을 위기라고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위기를 겪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뜨끔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나의 채식은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스코이다. 모든 종류의 육류와 유제품, 어류와 어패류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것을 비건이라고 한다면 이보다는 덜 엄격한 세미 채식도 있다. 페스코는 육류는 먹지 않고 유제품과 어류는 허용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원래 어류와 우유를 먹지 않으니 페스코와 락토-오보의 중간 어디 즈음에 있다. 다소 모호하지만 어쨌든 채식의 범주 안에는 든다.      


채식 단계 / 출처 : 그린피스


엄청난 의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생각보다 수월했다. 일단, 나는 외식의 빈도가 현저하게 낮은 백수이다. 선언을 시작한 즈음 엄마가 시골에서 보내준 감자와 고구마, 양파들은 좋은 식재료가 되었고 여성농민생산자 공동체인 언니네 텃밭에서 구입한 된장이 큰 역할을 했다. 기본 식재료가 맛있으니 따로 고기반찬을 찾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태 미루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위기는 곧 찾아왔다. 오랜만에 남편과 외식을 하기로 하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리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 갔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파스타를 먹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메뉴판을 받아 들고나서부터 위기를 직감했다. 메뉴판 속 사진에서 목살 스테이크는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었다. ‘아, 맛있겠다.’ 속으로 생각했다. 남편은 목살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이윽고 나온 그것은 사진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 남편이 한입 권했더라면 못 이기는 척 응했을지도 모르겠다. 요동치는 멘탈을 부여잡고 초인적인 힘으로 위기를 넘겼다. 남편은 목살 스테이크를 혼자 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다. 집에서도 식단을 고민할 때마다 고기는 절대 안된다고 말하는 나의 엄격함에 아쉬워했던 남편이 처음으로 나의 채식을 환영했다. 한 번의 위기를 넘기고나니 다음의 위기는 좀 더 수월하게 넘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일상에서 채식을 유지하려고 하니 생활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남편과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의 대부분은 고기를 필요로 한다. 영양 결핍 없이 채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를 늘려야 한다. 두부와 콩, 당근을 싫어하는 나의 편식도 바뀌어야 하겠지. 좀 더 비싼 유기농 채소를 지속적으로 구입해 먹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이다. 안정적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백수에서 벗어나 일을 구해야 하고, 일을 하게 되면 바빠져서 외식의 빈도가 늘어날 텐데. 점심은 어떻게 하지. 매일 도시락을 싸고 다닐 수도 없고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매번 채식메뉴를 주장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집 밖에 나가면 찾아오는 매 순간의 위기 속에서 채식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힘 빼지 말고 지금의 실천에 좀 더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채식만으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문제는 너무 복잡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조차 알 수 없다. 빈곤은 개인의 채식을 가로막는 큰 요소이다. 어떤 이들은 비싼 유기농 재료 대신 고기를 포함한 값싼 식재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단지 육식이냐 채식이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가 선택 그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고려없이 채식과 육식을 정의의 기준으로  나누고 모두에게 그 잣대를 휘두를 수는 없다. 육식 소비자를 위해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생산자와 대두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에게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대두 농업과 축산업을 장려할 수밖에 없는 국가들의 사정을 국제사회가 모두 고민으로 떠안아야 한다. 더불어 기후변화와 농민의 삶을 담보로 부를 쌓는 대기업의 착취구조에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아마존의 산불의 배후에는 개발을 독려하는 대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선 대기업들은 아마존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기후변화를 앞당기고 있다. 대기업이 제공하는 편의에 수혜를 입은 우리 역시 기후변화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산업구조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환경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아마존의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는 당사자가 브라질 정부와 브라질 사람들일 수만은 없다. 불을 낸 사람은 우리 모두이기 때문에. 이 산불이 지구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각자의 몫을 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찾아서 할 뿐이다.


아마존 산불 / 출처 : Amigos da Terra Bra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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