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
운 좋게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가장 가고 싶던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해 원하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일이란 '해외광고사업'으로, 뭔가 글로벌한 업무를 하며 해외 출장도 가고 광고쪽 커리어도 쌓고 싶었던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무렵, 조직개편으로 특정 광고사업을 담당하던 우리 팀이 해체되었다. 비록 수익은 적은 광고상품이었지만 여전히 몇몇 국가에서 판매 중인 상품이었으므로 누군가는 이 사업을 계속 관리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일개 A사업팀'원'에서 A사업'담당자'가 되었다. 가장 외로웠던 시기였지만 일적으로는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다. 1년 전의 나는 시키는 업무를 주로 하는 팀의 막내였지만, 그로부터 1년 후에는 A사업에 대해서라면 모두가 찾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무렵 우리 부서의 명칭은 광고 프로덕트의 사업을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팀'으로 바뀌었고, 나도 'A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다. (프로덕션팀과도 밀접하게 일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주로 사업을 관리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프로덕트 매니저보다는 '비즈니스 매니저'라는 명칭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때마침 'PM', 'PO'와 같은 직무가 업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이 직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진짜 프로덕트 매니저의 일과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업무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입사 후 몇 년 간 별다른 커리어 목표가 없던 나에게도 언젠가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신입연수 때 함께 떠들고 웃던 동기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다른 회사로, 대학원으로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나만 이곳에 멈춰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커리어는 이대로 괜찮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프로덕션팀과 각국 사업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었다. 각국 사업팀에서 요청하는 내용들을 정리하여 기획팀에 전달하고, 기획팀에서 새로 추가한 기능은 다시 각국 사업팀에 안내하고, 운영 중에 이슈가 생기면 개발팀과 논의를 하곤 했으니 말이다.
기획과 사업, 운영 업무 모두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건 이 일의 장점이었으나,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건 단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려면, 나는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지금 이 부서에서 계속 경력을 쌓는다면 비즈니스 매니저나 사업쪽에 특화된 프로덕트 매니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려면, 프로덕션 쪽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비스기획 일을 배워야겠다.
그렇게, 3년 동안 사업팀에서 쌓은 경력을 뒤로하고 서비스기획자로서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겉보기엔 4년 차지만 실제로는 1년 차. 여기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는데 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느냐며 만류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어쩌면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