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볼까 합니다 Aug 17. 2023

아끼던 옷을 당근 했습니다

가난

2023년2월23일

 오른쪽 가슴에 빨간색 하트가 붙어있는 아끼던 맨투맨을 당근 마켓에 팔았다. 살다 살다 당근 마켓에 옷을 팔게 될 줄이야. 맨투맨은 작년 10월 면세점에서 샀다.코로나로 인해 인터넷 면세점에도 살만한 상품들이 많이 없었다. 다른 의미로, 살 수 있는게 별로 없던 한 카테고리만 빼고...


 메종키츠네, 아미, 프라다, 톰 브라운, 메종 마르지엘라… 부티크라는 카테고리. 처음으로 산 명품 지갑을 모시고 다니는 나에게는 평소엔 눈독도 들이지 않았었던 곳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을 어디서 그렇게 버는 걸까? 한 벌에 20-40만 원 하는 옷은 흔하게 입고 다닌다.  패딩이나 외투가 아니라 그냥 맨투맨이나 후드 같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려면 얼마를 벌어야 하는 걸까? 이들과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 즈음이어서 그랬을까. 코로나 이후 2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의 면세점 찬스가 아까워서였을까 나는 하트 로고의 맨투맨을 하나 골랐다. 그마저도 가장 무난한 검정. 오래 입어야 하니까.


 그렇게, 할인에 할인을 거듭한 나의 맨투맨은 10월 나에게 왔다. 맨투맨은 내 방 옷걸이에 항상 걸려있었다. 어깨가 늘어나지 않게 팔이 접혀진 채로 소중하게 걸려있던 맨투맨은 이 방 밖을 한 번밖에 나가보지 못했다. 그마저도 드레스코드가 블랙 앤 레드인 연말 모임 덕분에 나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맨투맨을 입지 않았고, 그렇게 관상용 맨투맨은 그곳에서 3 달의 시간을 보냈다.


 몇 년 전에는 메종 키츠 넷의 노랑 여우가, 그리고 2년 후엔 아미의 빨간 하트가 유행했다. 유행은 생각보다 빨랐고, 나의 아미는 유행을 따라가기에 아니 어쩌면 그들을 따라서 덜컥 사버렸지만 오랫동안 입기엔 그 오래가 생각보다 짧을것 같았다. 어쩌면, 한 개뿐인 비싼 옷이 유행에 뒤쳐져 입을 수 없을지도 모른나는 생각이 들자, 소중하게 보관만 하던 옷을 당근에 올렸다.


16만 원.

당근!

“네고 안 되나요?”

”네 안됩니다.“

-다음날-

“가격 내렸습니다.”

-다음날-

“가격 내렸습니다.”


  팔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얼른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14만 원에 옷을 팔기로 했다. 그것도 내가 20분 거리를 운전해서 말이다. 당근 마켓은 구매자가 오는 게 국룰인데…당근세계의 룰도 어겨가며 말이다.


 그렇게 퇴근 후 막히는 시간, 차를 몰고 약속장소로 찾아가 나의 하트를 넘겨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기분은 속 시원하지 않았다. 슬펐다. 14만 원에 누가 나에게 이 옷을 판다고 하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 한 마음. 이 정도 옷도 못 사입을 만큼 나는 궁핍하지 않은데. 내 일당으로 치면 하루? 더 일하면 이 옷을 살 수 있을 텐데 왜 나는 그토록 아껴서 입지도 못하다가 새 옷 같은 상태로 팔아버려야 했을까.


 하루에 술값으로 10만 원은 쓰면서 14만 원을 받기 위해, 3달 그 겨울 동안 한 번만 아껴 입게 된 옷을 팔아버렸다니. 왜 그 옷을 입지 않았을까. 나는 왜 팔고 싶었을까. 이럴꺼면 왜 그 옷을 샀을까. 사고서 왜 입지도 않을 건데 좋아했을까. 왜 다른 사람들 가슴에 붙은 하트가 부럽고 예쁘다고 생각했을까. 주제넘게.


 아까웠다. 입지 못 한 내 옷이.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버리고 싶었던 내 가난한 마음이. 도로에 가득 찬 차들 사이에 느리게 앞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나는 내가 한 없이 아까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모일:회, 모일:사]가 뭐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