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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볼까 합니다 Aug 19. 2023

(영화)오펜하이머와 프로메테우스가 던지는 질문들

핵분열 핵융합 다음에 블랙홀을 만나게될까?

 요즘 볼만한 영화가 많아져서 예전 만큼 영화관을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 오펜하이머 후기는 적지 않을 생각이었다. 평론가들의 극찬 세례와 넘쳐나는 유튜브 속 정보에 나까지 피로감을 얹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과학을 잘 알지 못 할 뿐더러, 인터넷을 찾아 이런저런 내용들을 짜깁기해가면서까지 정보를 모아서 흉내 내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기를 적는 이유는 영화가 주는 의미와 질문들이 영화속 핵분열 과정처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번져갔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멋지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이유는 위대한 인물의 시련과 투쟁의 기록이라서가 아니라, 인물 내면의 모습과 엔딩 크레딧 이후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서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문장은 헤밍웨이의 6단어로 만들어진 소설만큼 많은 서사를 만들어낸다.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s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돌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


 네이버 영화 소개에서 이 영화를 검색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 개발 프로젝트”. 나는 이 네이버 영화 소개 설명 보다,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영화를 더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돌에 묶여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는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까? 인간에게 불을 훔쳐준 것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인간을 만든 것 자체를 후회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받는 벌에 의미에 대해 생각했을까?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메테우스로 그려진 오펜하이머는 그의 헤라클레스를 만날 수 있을까?


 영화는 프로메테우스인 오펜하우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오펜하이머의 마음은 표정에서 관객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게 나타난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와 관련된 두건의 별개의 청문회 장면을 통해 과거를 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폭탄을 만들어 미국을 승전국으로 만든 오펜하이머가 이후 냉전시대의 소련 스파이로 의심받아 취소된 비밀 취득인가의 재승인을 위한 청문회와, 그와 갈등을 빚었던 미국 원자력위원회(AEC)의 창립위원인 루이스 스트로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상무부 장관 임관을 위한 청문회. 두 개의 청문회를 통해 과거의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맨해튼 프로젝트)를 회고한다.


 영화는 시작에 1. 핵분열 2. 핵융합이라는 챕터를 나누는 듯한 단어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이루어진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전반부(1. 핵분열, 원자폭탄의 원리)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리더로서의 오펜하이머의 모습이고, 후반부(2. 핵융합, 수소폭탄의 원리)는 이후 그의 행적과 수소폭탄을 반대하는 모습이다. 핵융합과 핵분열에 대해서는 다른 열린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거 같다.


우라늄같이 무거워 모으기 어려운 것들을 모아 (다루기 어려운 과학자들)로 원자폭탄이라는 에너지를 만드는 것과 군비경쟁 시기로 들어서면서 전 세계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강력한 무기 개발 (가벼운 수소폭탄)을 반대하는 오펜하이머의 후반기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핵분열을 위해 애쓰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영화상에는 흑백으로 표현)과 이와 반대편에서 수소폭탄의 개발 찬성과 강력한 힘을 통한 전쟁억제 기능을 바라는 루이스 스트로스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오펜하이머의 내적 세계와 감정선은 끊임없이 동요하는데, 내면의 모습은 마치 우주를 담은듯 복잡하다. 우주와 내면의 모습이 시각화되어 영화는 이어진다. 3시간인 영화는 지루함을 느끼기 어렵게 극대화된 사운드로 가득 채웠다. 때로는 천재를 이해하는 데 사용되고, 때로는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도와준다. 그러다가 정작 엄청난 사건이나 인물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는 고요를 통해 모든것을 집어삼킨다.


 오펜하이머는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면 전 세계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실제 원자폭탄이 개발되었을 무렵, 히틀러는 스스로 자살을 한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튼 프로젝트는 계속되는 것이 맞을까?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질 때 오펜하이머는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며, 원자폭탄의 개발을 계속해 나간다. 그는 정말 핵 무기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을까.


 원자폭탄 투하 이후 트루먼 대통령은 로스 앨러모스를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위한 전초지로 만들고자 오펜하이머를 백악관으로 초대한다. 오펜하이머는 트루먼 대통령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후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오펜하이머가 갈등하던 내적 문제의 대답을 찾는다. 트루먼 대통령의 대사가 정치인의 정형을 보여주는 듯 이어진다. 정치인은 사건과 기억되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지만, 인간 오펜하이머는 이후의 연쇄 폭발을 본다.


 

 영화에서는 옳고 그름과 도덕을 말하지 않는다. 원자폭탄의 당위성에 대해 강요하지도 않으며, 가학적인 모습으로 비추지도 않는다. 더 많은 희생을 막았는지, 아니면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의 망상을 통해 원자폭탄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난 뒤 성공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연설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긴장한 듯, 사용자와 과학자를 구분 짓던 오펜하이머는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고 정신을 반쯤 내려놓는다. 환호소리가 마치 절규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연설을 간신히 끝낸 오펜하이머는 사람들의 환호를 지나 어두운 복도를 지나간다. 창으로 비치는 사람들의 환호하는 그림자는 원자폭탄으로 불타 가는 소리 없는 절규처럼 보인다. 절규소리가 세상을 고요하게 만들 만큼 크게 들린다.

 

 영화에서 만들어지는 원자폭탄 모형에 중심부의 모양이 지구처럼 보인다. 지구를향해 모아지는 우라늄 탄환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함일까.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되고자 했을까, 아니면 불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이었을까? 그가 세상에 준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일까? 평화일까? 전쟁의 연쇄작용에 신호탄 이었을까? 마지막 장면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대화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질문으로 바꾸고 이를 끊임없이 확장 시킨다.  

 

영화가 준 생각할만한 거리들 

1.   직업윤리의 범위

-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이지만 이 원자폭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애초에 원자폭탄의 목적은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 다가올 파시즘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파시즘이 끝을 내린 뒤에도 2년여간 이어져온 프로젝트를 계속해 나간다. 일본은 원자폭탄이 없었다면 패전하지 않았을까? 과연 더 많은 사상자를 냈을까? 과학자의 직업윤리는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과학이 어떻게 쓰일지 과학의 어두운 면모를 외면하는 게 직업윤리일까? 아니면 이로운 점이 큰 과학을 이어가는 게 직업윤리일까?


2.   오펜하이머의 도덕성에 관한 논쟁

-   논란은 내가 만드는 것 같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것이 옳지 않지만, 최초 핵무기 개발의 목표는 나치보다 빠른 핵 개발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오펜하이머는 애국자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누구나 “그렇다”를 외친다. 그렇다면, 적이 엄청난 무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보다 더 빠르게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도덕적일까? 자신이 만든 무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후의 더 큰 무기 개발을 반대하는 오펜하이머의 역설적인 모습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노벨도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지 않냐는 말과 함께. 과연 그는 수많은 사상자를 낼 핵 개발 당시에는 왜 더 도덕적이지 않았을까? 그는 순교자일까?  


3.   전쟁억제를 위한 군비경쟁

-   후반부에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한 전쟁억제는 정말 가능할까? 원자폭탄 이후 전 세계는 UN과 같은 평화적인 협의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전쟁 억제를 위한 무한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군비경쟁 심화되는 오늘날 강력한 힘의 논리로의 전쟁억제 기능은 유효한가?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대안적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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