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노마드
"우리는 왜 떠나는가?"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현답을 찾아가는 탐험기입니다.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과 맛집을 나열하는 여느 여행기와는 궤를 달리하며, 여행이라는 행위 속에 숨겨진 인간 본성과 삶의 의미를 섬세하게 파고듭니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작가와 함께 사유의 여행을 떠나게 되며,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우리 자신의 삶과 여행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김영하에게 여행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이자, 동시에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입니다. 그는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떠난다고 고백합니다. 집 안의 오래된 얼룩처럼 마음에 새겨진 상처들은 일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를 옭아매지만, 낯선 곳으로의 이동은 그 굴레로부터 우리를 잠시나마 해방시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나의 흔적마저 지워주는 호텔이라는 공간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완벽한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작가가 말하는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단순히 떠나는 행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과 계획의 어그러짐 속에서 발견되는 '뜻밖의 선물'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여행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얘기치 못한 문제와 고생은 우리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는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 통찰 같습니다.
여행의 이유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여행과 인간의 내면을 연결하는 작가 특유의 인문학적 사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가브리엘 마르셀의 말을 빌려 우리를 여행하는 인간으로 규정하며, 인류의 역사가 곧 이동과 탐험의 역사였음을 상기시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현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여행의 속성은 행복론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문학과 철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여행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특히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라는 대목이 너무 기억에 남습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을 벗어나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까지 드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정신적인 고양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문학 작품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과 다르지 않습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단순히 '어디를 갔는가'가 아닌 '왜 떠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책 같습니다. 작가의 진솔한 경험과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잠재된 '여행의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든,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든, 혹은 그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든, 이 책은 우리 안의 '노마드'를 깨우고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갈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아직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면,
혹은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면,
김영하가 안내하는 이 지적인 여행에 동참해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