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변신>

벌레가 된 인간 혹은 인간이었던 벌레

by 오백이

1. 어느 날 아침, 그가 눈을 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레고르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신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은 오늘 회사에 지각을 하게 될까 봐, 상사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하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벌레가 됐다는 황당함 때문이 아니다. 그레고르가 너무 평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평온함이 이 소설의 핵심을 꿰뚫는다.

"그는 자신이 등을 바닥에 댄 채 굳어 있음을 느꼈고, 고개를 약간 들어 올리자 둥근 갈색의 배를 볼 수 있었다. 배는 여러 개의 딱딱한 마디로 나뉘어 있었고, 이불은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 같았다.

눈에 비해 비참할 만큼 가느다란 다리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어떤 벌레로 변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독일어 원문의 'ungeheueres Ungeziefer(엄청난 해충)'는 그저 '분류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에 가깝다. 카프카가 책의 표지에 벌레를 그리는 것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레고르는 어떤 특정한 벌레가 아니다. 그는 그저,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2. 사랑이라 불렸던 것의 민낯

소설의 진짜 공포는 그레고르의 변신이 아니라, 변신 이후 가족들의 반응에서 온다. 처음에 아버지는 지팡이와 신문으로 그레고르를 방으로 몰아넣는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기절한다. 오직 여동생 그레테만이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준다.

그레테는 초반에 그레고르를 진심으로 돌본다. 그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실험하고, 방을 청소해 주고, 그가 벽이나 천장을 기어 다닐 수 있도록 가구를 치워주려 한다. 여기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래도 사랑은 남아있구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은 서서히 마모된다.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그레고르가 그동안 가족 전체를 부양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버지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고, 어머니와 그레테도 노동에 나선다. 그리고 그레고르는 가족의 짐이 되어간다.

그레테는 결국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저 것을 없애야 해요."

'그'가 아닌 '저 것'. 이 대명사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가족이 그레고르를 포기하는 과정은 충격적 이리만치 현실적이다.

그들은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지쳐가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카프카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조용히, 잔인하게 보여준다.



3. 벌레의 몸으로, 인간의 마음으로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그레고르가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때다. 하숙인들을 위해 그레테가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그레고르는 방에서 기어 나온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주겠다'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그에게 이토록 감동적으로 들린다면, 그는 벌레일 수 없었다. 그레고르는 누이의 방 입구까지 기어 나가고 싶었다."

벌레의 몸을 가졌지만, 음악에 감동받는 그 마음은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아니, 어쩌면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이후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감수성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레고르는 변신하기 전, 그저 회사의 톱니바퀴였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외판원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 삶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벌레가 된 후, 역설적으로, 그는 처음으로 자유 시간을 갖게 된다.



4. 가장 사려 깊은 죽음

그레고르는 죽는다. 굶주림과 상처,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생긴 상처가 악화되어, 어느 새벽 조용히 숨을 거둔다. 죽음의 순간조차 그는 가족을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생각은 가슴이 텅 빈 것처럼 조용하게 머릿속에서 자리 잡았다. 새벽 세 시 직전,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레고르의 죽음은 가족에게 안도감을 준다. 그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교외로 소풍을 떠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테는 싱그럽게 젊어진 모습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부모는 그녀의 밝은 미래를 생각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들과, 조용히 사라진 그레고르의 대비는 어디서도 찾기 힘든 처연한 쓸쓸함을 남긴다.

죽기 전 그레고르가 가족을 생각하며 평화롭게 죽어가는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서늘한 아이러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놓지 못했다. 그것이 그를 죽게 만든 삶의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 '변신'이 말하는 것들

그레고르는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변신은 그 소외의 '가시화'다.

그가 실제로 벌레가 된 것이 아니라,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족에게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


카프카의 삶을 알면 소설이 더 깊이 읽힌다. 그는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의 그늘에서 평생 억눌려 살았다.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몰래 글을 썼다. 아버지에게 쓴 장문의 편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아버지 앞에서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였는지를 고백한다.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의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비슷한 알파벳 구조를 갖는다.

우연이 아니다.

《변신》은 카프카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우리가 모두 어느 날 아침 '쓸모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알려준다. 직장을 잃으면, 병에 걸리면, 나이가 들어 생산성이 떨어지면 그때 남겨진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카프카는 1915년에 이미 그 질문을 던졌다.




《변신》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이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춘 역할로 살고 있는가.'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려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사려 깊게, 사라졌다. 그리고 세상은 계속된다. 태양은 뜨고, 그레테는 스트레칭을 하고, 봄날의 교외는 싱그럽다.

카프카는 희망도 절망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