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학창 시절에는 인생의 롤모델로 미디어나 역사책에 등장하는 위인들을 꼽곤 하였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인생을 조금씩 경험하게 되면서 현재 내 인생의 롤모델 자리에는 외할머니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나 따뜻한 에너지가 넘치는 나의 외할머니는 아흔에 가까운 고령으로 올해 89살이 되셨다. 우리 외할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젊은 시절부터 아흔이 다된 지금까지 새벽 5시에 기상하는 아침형 인간의 정석으로 취미는 노인당 친구들과 함께하는 요가와 산책,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의 동안과 맑은 웃음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전라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할머니의 젊은 시절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 전쟁과 함께 흘러갔다. 이후에는 새마을 운동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한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었다. 할머니는 그 어떤 세대들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대한민국 극한 생존 역사의 몇 안 남은 산 증인일 테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어느 봄날, 문득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져 조심스레 할머니께 여쭤봤다.
“할머니, 6.25 전쟁 때 뭐하고 계셨어요?”
내 질문에 할머니께서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시골에서 농사지었지~ 그때 나는 밭매고 있었어. 폭탄 터지는 소리랑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종종 들렸지.”
“엥? 할머니, 전쟁인데 농사를 짓고 계셨다고요?”
“암~ 군인들도 깊은 시골까지 쳐들어 오지는 않거든.”
보통 전쟁이라고 하면 누구나 피난과 가난, 그에 따라오는 처절한 고통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런데 농사라니, 예상과는 다른 평화로운 답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외할머니의 경우 다행히 운이 정말 좋았던 축에 속한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 그럼 광복 때는요?”
“그때는..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
이어진 내 질문에 할머니는 잠시간 그때를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다 역시나 조금 전과 같은 어조로 말씀하셨다. 역사 교과서에 선명하게 실리는 굵직한 아픔의 역사를 할머니께서는 무심하리만치 담담하게 받아들인 듯 보였다.
과연 정말 그 시간들이 그렇게 단순하게 풀어낼 수 있는 시간들이었을까. 운이 좋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찢어지는 가난으로 나라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때 당시 젊은 세대였던 할머니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내야만 하는 생존에 대한 막중한 임무가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흔이 다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은 할머니가 나는 그 어떤 위인들보다도 대단해 보였다.
모든 인생에는 굴곡이 있단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으니,
인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순리대로 살아가거라.
외할머니께서는 어머니께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인생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는 말은 이제까지 많은 책과 매체를 통해서 수차례 들어온 익숙한 인생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어쩐지 조금 달랐다.
삶에 있어 충돌은 언제나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발생한다. 굴곡진 시대를 살아낸 할머니의 담담함은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10대, 20대에는 그저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따뜻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알게 모르게 사회에 조금씩 보호받으며 공부와 취업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고, 취업한 후에는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은 조급한 마음에 아등바등 살았다.
그러다 30대에 접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세상의 파도가 예기치 못한 시점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의 삶 또한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우리의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삶의 폭탄은 시도 때도 없이 빵빵 터졌고 그때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멘탈이 탈탈 털리고 나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차피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파도라면 차라리 서핑하듯 즐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있다면 삶의 여행이 보다 풍성하고 여유로울 것이다.
불안이 마음을 잠식할 때면 외할머니의 주름진 미소를 떠올린다. 여전히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씀대로 다가오는 인생의 파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할머니처럼 인생의 만렙을 찍고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유로움을 장착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닮은 얼굴을 하고 맑은 미소를 띠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오늘도 작은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