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걸까
괜찮다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이다.
“오늘은 김치찌개 땡기는데, 어때?”
“괜찮아!”
“이 업무는 00 씨가 잘하니까 맡아줬으면 하는데...”
“네 괜찮아요!”
“우리 딸, 요즘은 좀 어떠니? 별일은 없고?”
“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일상 속 작은 선택들에 대해 큰 고민 하기 싫어서,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괜찮다는 말은 일상에서 툭 튀어나온다.
괜찮다는 말은 그 말에 담긴 긍정적인 의미만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실제로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을 때가 많다. 괜찮다는 말로 인해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인들이 작은 선택과 고민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어 굉장히 편리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사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할 때 발생한다. 일상에서 무의식으로 내뱉는 희망 섞인 그 말이 쌓고 또 쌓이면 반드시 체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이때는 괜찮다는 말이 매우 위험한 말이 된다.
몇 년 전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힘든 시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누가 봐도 힘들만한 상황이었지만 툭 털고 일어나 괜찮은 듯 웃어 보였다. 그때는 그게 강한 것인 줄 알았다.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저런 일들 겪는 것이 아니냐며 잘 견뎌내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다는 말에 스스로 최면을 걸었는지 그러고 있다 보면 진짜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니 괜찮다는 말로 만들어진 단단한 가면을 쓰고 행복한 나를 연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면을 쓴 행복한 나에게 익숙해져 본래의 슬픔으로 얼룩진 내가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진짜는 사라지지 않았다. 강약의 차이만 존재할 뿐 어떤 식으로든 그 처절한 민낯을 드러냈다. 마음 아픈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체로 남아 이따금 갑자기 툭 뛰쳐나왔다. 분명 괜찮아야 했고 괜찮을 줄로만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건 위험하다.
괜찮다는 말속에 자신의 감정을 자꾸만 숨기면 치유되지 않은 감정들이 가슴속 깊이 남아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그런 고로 내 안에 감춰진 진짜 나의 표정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이 좋고 싫은지
무엇에 가슴 아파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온전히 마주하지 못하면 괜찮다는 말로 만들어진 가면 뒤에 있는 진짜 내 모습을 만나볼 길은 묘연해진다.
사실은 괜찮지 않아
나는 내가 괜찮지 않음을 인정했다. 스스로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고 괜찮은 척을 관두고 나니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복잡한 감정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이후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에게 솔직해지다 보면 그게 예쁜 모습이든 미운 모습이든 진짜 나의 표정을 마주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진짜 얼굴이 기대했던 것보다 좀 못나면 어떤가. 그 또한 내 모습인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다 보면 사랑받는 만큼 예뻐지리라.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