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아미가 외칩니다, 치폴레 말고 치콜레!
몇 년 전 전화영어를 통해 알게 된 미국인 영어 선생님이 있었다. 바다 건너 얼굴도 모르는 어색한 사인데 그것도 영어로 무슨 말을 나눌 수 있을까 싶어 머뭇거리던 찰나 첫 통화에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I love BTS!
Do you know BTS?
BTS의 열성 팬인 아미라고 밝힌 그녀는 한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멋지냐며 한국에 대한 로망 비슷한 것까지 있는 듯 보였다. 한류가 인기라고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 아이돌이 이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가? 순간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났고 그녀와 친해지고 싶어 얼떨결에 나 역시 방탄소년단의 팬이라고 해버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얼마 후
나는 진짜 방탄소년단의 팬이 되었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 직후였다. 슬픔과 충격으로 멈춰 선 나만 빼고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흘러갔고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해야만 했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습관처럼 음악 앱을 켰다. 무슨 음악을 들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었다. 밝은 음악도, 슬픈 음악도 들을 수가 없었다. 밝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았고 슬픈 음악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울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지옥철 창 틈으로 조막만 한 봄햇살이 비춰오길래 인기차트 곡 중 댄스곡도 발라드도 아닌 듯 보이는 BTS의 '봄날'을 플레이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이 음악이 지닌 슬픔은 인기 발라드곡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흐느끼는 슬픔이 아니었다. 정제된 슬픔이었고 슬픔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악을 다 듣고 나니 지옥철 속 진짜 지옥에 있던 내가 다시 세상 속에 편입된 느낌이 들었다.
평생 내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모를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에 이렇게까지 위로받을 줄이야. 이후 한동안 내 출퇴근길 플레이리스트에는 봄날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뒤늦게 아미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재미난 뉴스를 접했다. BTS 정국이 멕시칸 요리를 판매하는 미국의 유명 체인 음식인 치폴레를 치콜레로 발음하는 바람에 치폴레의 공식 트위터 계정 이름이 치콜레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BTS가 먹었다니 냉큼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영상에서 정국이 '아보카도 넘 마시써~~' 노래까지 불러가며 오물오물 치폴레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치폴레가 맛있어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다니 나도 안 먹어 볼 수 없지! 치폴레로 말할 것 같으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국식 멕시칸 체인점으로 아보카도와 콩, 각종 채소들이 듬뿍 들어간 나름 건강식이 아니던가. 여긴 미국도 아닌데 배달시켜 먹을 수도 없으니 내 입맛대로 직접 만들어 보자. 물론 정국이 좋아한 아보카도는 과카몰리로 만들어 잊지 말고 꼭 넣어먹기로 했다.
아보카도 1/2, 양파 1/4, 방울토마토 5개, 양상추 30g, 양배추 60g, 닭가슴살 100g, 잡곡밥 100g, 멕시칸 치즈, 옥수수(선택)
허브맛솔트 1티스푼, 다진 마늘 1/2큰술, 스리라차 1/2큰술, 올리브유 1/2큰술, 살사소스 3큰술, 플레인요거트 3큰술, 레몬즙 2티스푼, 맛술 1큰술, 소금 1티스푼, 후추 1티스푼, 파슬리(선택)
건강하면서도 간단한 버전의 치폴레를 만들기 위해 사워크림은 구하기 쉬운 플레인요거트로 바꾸고 치킨을 스리라차 소스를 뿌린 닭가슴살 구이로 대체하여 칼로리는 낮추면서 매콤한 멕시칸 치킨 느낌을 살려보았다. 단, 살사 소스와 멕시칸 치즈, 정국이 좋아한 아보카도는 마트에서 공수했다.
이렇게 이국적인 요리를 직접 만들었다니 스스로 대견해하며 한 입 먹으려는 그 순간!
일찍 퇴근한 동생이 집에 와서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언니, 배달시켰어??"
"아니, 이거 내가 만든 건데? 치폴레 만든 거야!"
"오~ 배달인 줄! 나도 먹고 싶다!"
동생이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먹고 싶은 티를 팍팍 냈다. 동생은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미국 현지에서 치폴레를 먹어본 사람이었다. 동생에게 맛 평가도 받을 겸 남은 요리 재료로 후딱 하나 더 만들어 동생과 함께 먹었다.
와! 이거 미국에서 먹던 치폴레 맛 나네!
동생이 맛있다며 신나게 먹는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났다. 치폴레의 맛은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인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샐러드 비빔밥 느낌이었고 맛의 중심에는 아보카도로 만든 멕시칸 식 소스, 과카몰리가 있었다. 아보카도가 이렇게 맛있다니! 과연 정국이 아보카도 노래를 부를 만했다.
몸에 좋기로 유명한 아보카도는 비타민이 풍부해서 피로회복에 좋을 뿐 아니라 체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나트륨 배출을 도와주는 성분이 있어 다이어트에도 좋다. 주의할 점은 아보카도를 맛있게 먹으려면 잘 후숙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덜 익은 아보카도의 경우 보통 실온에서 2~3일 보관하다 껍질이 검은 녹색으로 변하고 약간 말랑하다 싶을 때가 먹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건강에 좋은 아보카도 맛있게 드시고 싶은 분들,
한국에서 멕시코의 맛을 느끼고 싶은 분들,
치폴레 꼭 드셔 보시길 추천한다!
*자세한 요리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
유튜브 <주니바의 식탁> 미국에서 가장 핫한 멕시코 음식, 치폴레 집에서 쉽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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