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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Jul 01. 2023

파혼 12일 차 2023년 7월 1일

1. 

전 남자친구이자 전 약혼자 P는 스토킹범죄자가 되었다. 2023년 6월의 마지막 날 부산지방법원의 판결에 의거 잠정조치에 처해진 것이다. 나에게도 임시조치결정문이 문자로 전송되었다. 결정문에 적힌 P의 집주소는 한때 우리라고 불리우던 때의 신혼집이였다. 아무도 없는 텅빈 집. 도배도 하지 못한 집. 나는 거기에서 내 생령이 미쳐 춤추는 상상을 했다. 그 집에 들린 마지막 날에 높게 뜬 달을 본 것만 같았다. 월말 정산도 미루어두고 불안해 하는 부모님때문에 일찍 가게를 접었다. 화가 나지만 화낼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절망했다. 이 상황 모두 영원히 나로부터 치워졌으면. 바깥에 세워진 렌트카만 봐도 신경이 쓰였다. 가게 문을 모두 잠그고 마감을 했다. 여름이었다. 바닷가라 문을 열기만 하면 시원한. 폐쇄 병동에 홀로 갇힌 기분이 들었다. 가게 안의 모든 기계가 내뿜는 열기 덕에 공기가 두꺼웠다. 


2. 

거짓말처럼 신원미상의 전화가 사라졌다. 하루에 서너 건, 많으면 20통 넘게  오던 전화들. 비로소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경찰서에서 지급해 준 전기 호루라기와 호신용  스프레이를 가방에 넣었다. 쓸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 현관에는 씨씨티비가 설치되었고 손목에는 위치추적과 긴급신고가 가능한 스마트워치가 채워졌다.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의 말로였다. 비참했다. 혼자 있을 때마다 꺽꺽 울분이 차올랐다. 연체된 감정들이 한꺼번에 독촉장을 날리듯 그 모서리에 때때로 베였다. 가장 괴로운 것은 모든 증오와 분노와 애증에 무감한 신분으로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나는 덩그러니 일터에 내던져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지만 멀쩡한 척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강한 사람인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는 다짐. 기댈 때가 그것 밖에 없는 걸까.


3.

월요일에는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면증과 불안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P는 바람을 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교제 기간과 결혼 준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그가 바람을 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가장 먼저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던 문장은 '나는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였다. 죽기 싫었다. P의 외도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나는 철저히 깨졌다. 영혼의 질감은 유리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와장창 부서지는 파편음 속에서 날카롭게 바스라져 가루가 되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거짓말은 허술하고 적나라해서 고통스러웠다. P가 나의 의심을 예민과 과민으로 몰아부칠 때보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이길 내가 틀린 것이기를  바라는 내 자신에게 더 염증을 느꼈다.


4. 

나는 양가 감정에 시달린다. 

내 불행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것과 내 불행을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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