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빗ORBIT Jul 04. 2023

종종 괜찮고 때때로 무너져요

1. 

이 모든 경험으로부터 멀어지거나 혹은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어제는 P를 아는 사람에게 P가 왜 내게 나쁜 사람이였는지를 털어놓았다. 나쁜 경험이 농담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2.

내가 P에게 차를 사주었어. 맨 처음에는 새 차를 사달라고 했는데 부담스러워서 헤어지자고 했어. 그 때 헤어져야 했었는데. 싸우고 다투고 화해하는 것처럼 뭐 다시 만났지. 내가 많이 좋아했나봐, P를.  대신 중고차를 사줬지. 시댁될 집에서 집을 사준다고 하니까 나도 부담이 되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어중간하게 착하고 어중간하게 어리석은 건 이렇게 골치 아픈거야. 아무튼 그때 조회한 중고차 시장에서 아직도 전화가 와. 차 샀냐고. 샀는데 후회한다고 했지. 제발 전화하지 말라고도 하고. P한테서 걸려 온 알 수 없는 번호들만큼 스트레스지. 걔의 모든 것이 지금은 다 쓰레기가 되었으니까. 너무 호구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호구긴 호구라는 거구나. 아무튼 그 차에 이 여자도 태우고 저 여자도 태운 거 같아. 한 명이 아니야? 아닌 거 같아. 바람 피운 애는 그냥 전자담배 피우거든. 차 정리 하면서 청소를 하는데 담배꽁초가 나왔어. 운전석에서. 근데 립스틱이 묻어 있었어. 걔 껀 아니였지. 너 호구 맞는 거 같다. 그치? 그래. 



2.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맞다. 도로에 굴러다니면 착각한다. 아기 고양이같은 귀여운 걸로. 


3.

나는 스토킹 피해자다. 경찰, 요원, 경장, 형사, 심리상담사 등 여러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 이 모든 보호가 타인의 죽음과 두려움, 고통으로 이룩한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얼른 괜찮아져야지. 나는 내가 불쌍하고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4.

엄마와 아빠가 내 방을 치웠다. 쓰레기랑 같이 있었더니 나는 쓰레기가 된 것 같고. 스스로도 좀 치워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해자다. 내게도 부모에게도. 아빠는 내 방에 굴러다니는 쓰레기 중에서 P에게 쓴 고소장과 내용증명을 읽어버린 것 같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게 부끄럽습니다. 아버지. 나는 통곡한다.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죽고싶은데 괜찮은 척하느라 힘들어요. 그런 나를 보는 엄마와 아빠도 힘들겠지. 잠도 잘 못자고 화도 못내고. 화풀이도 못하고. 근데 여력이 없습니다, 나도. 돌보지 말아주세요. 돌보지 않을테니. 


5. 

지금 내가 가장 힘든 건 진짜 사랑을 했었다는 사실. 



매거진의 이전글 파혼 12일 차 2023년 7월 1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