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차에 대해서 아시나요? 이게 무슨 도를 아십니까 같은 엉뚱한 소리냐고 하시겠지요. 저는 요즘 선차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명상이나 사색, 차에 관심이 많아 전통찻집이나 다원을 기웃거리던 저는 좋은 기회로 평생교육원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선차라는 것은 스님들이 명상이나 기도에 들어갈 때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정하게 하기 위한 목축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지독히도 거부하는 나이지만 종교적 의식이 주는 경건함과 신성에 여러 번 감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로마에서 대성당에 갔을 때 성당을 울리던 신부님의 노랫소리, 무속인의 굿판, 일요일 교회의 성실한 분위기 같은 것들.
‘신은 믿지만 종교는 믿지 않아요.’라고 사랑 고백을 하듯 수줍게 말하던 직원의 이야기가 떠올라요. 저 역시 경계를 믿지 않아요. 불가지론자 같은 구체적인 개념의 상태도 아니에요. 그저 저는 제 안으로 침잠하는 나만의 시간이 좋아요. 그래서 수업 첫날 눈 앞에 펼쳐진 선차 시연의 아름다움에 혹하고야 말았습니다. 산사에서 들을 법한 새소리, 조용하고 차분한 명상음악, 간간히 울리는 타종소리. 그리고 엄숙한 고려복의 여인들.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겁니다. 기물을 다루고 몸을 움직이고 찻물을 우리는 모든 순간순간을요.”
다법을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진중한 태도가 그동안 쌓인 마음의 태를 조금은 잊게 해 주었습니다. 현실에서의 도피가 그 순간만큼은 절실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과부하로 지쳐 돌아가던 일상의 전원을 잠시 꺼둘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동작에 채움과 비움. 만남과 헤어짐이 다 있지요. 결국 이러한 반복도 처음과 끝이 같음으로 순환됩니다.”
언어로 전달되지만 기어코 다 표현되지 않은 비선형적 언어의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알아채 주길 기다리는 명료한 깨달음이 도사려있는 것입니다. 찻잔 속에 퍼지는 녹차 향기에 농축된 시공간이 녹아있듯이. 연한 녹음이 입속에 머물 때 저는 생각합니다. 이대로 충분하다. 더는 무엇의 무엇이고 싶지 않다. 그 충만함이 또 일주일을 살아가게 하네요. 선차를 만난 9월의 첫 주 화요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