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는 라면을 못 먹게 했다. 인스턴트는 몸에 나쁘니까라는 매우 식상하고 보편타당한 이유로. 나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라면은 정말 몸에 나쁜가. 라면 회사 직원들의 근무년수와 질환의 상관관계에 관한 학계의 보고를 뒤져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여러 가지 음모론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라면 애호가로서 내 첫 라면은 놀랍게도 쌩라면이었다. 라면 봉지 째 부셔서 수프를 뿌려먹는 바로 그것. 어릴 때 쌩라면 한 봉지면 동네를 평정할 수 있었다. 그때 라면은 권력의 화신인 셈이었다. 맵고 짜고 부석부석한 쌩라면 한 조각에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종종 생기던 논쟁과 편 가르기는 쉽게 종식되었다. 생라면이라고 부르면 맛이 없다.
1. 안성맞춤 안성탕면
캠핑 1세대에 속하는 우리 가족은 그나마 캠핑 마지막 날 아침에서야 비로소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병만족 버금가는 야생생활로 포획한 각종 어패류와 남은 야채를 때려 박고 코펠과 버너로 취사한 캠핑라면은 우리 네 가족 중 네 명이 다 죽어도 모를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면이 살짝 불어나서 간이 잘 배인 라면을 좋아한다. 마지막 날 아침에 비가 오거나 이슬을 맞아 한기가 돈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그때의 라면 대부분이 안성탕면이었던 것처럼.
2. 神신라면
라면은 구원의 음식이다. 각자 영혼의 음식, 소울 푸드가 있겠지만 라면은 영혼의 구호물자, 허기의 구원, 향수병의 통치약인 것이다.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여행을 간다는 건 신라면과 접신하러 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할렐루야. 신라면은 고산병도 고쳐준다. 스위스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에 가는 동안 멀미보다 진한 두통에 시달렸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도 메쓱거리는 속과 두통에 힘들었는데 그러나 웬걸 기차표와 함께 받은 신라면 쿠폰으로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 꼬불꼬불 맛 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 하루에 열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는 라면. 그렇게 하얀 설원 위에 둘리 라면송을 남기고 무사히 다음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3. 참깨라면
나이가 들어서 라면을 먹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라면을 끓여 먹는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데 라면이 몸에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찌는 데는 매우 도움이 되는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라면 안주로 맥주를 곁들이게 되면서 대참사가 발생한다. 평생 안 찔 줄 알았던 ‘살'이란 것이 찌기 시작한 것이다. 근 20년 큰 격차 없는 몸무게를 유지해왔던 내가 나잇살이라는 게 붙기 시작하면서 피치 못하게 라면을 끊었다. 거의 매일 라면 혹은 컵라면을 먹던 나로서는 매우 큰 결심이었다. 그렇게 석 달 정도를 끊고 식단 조절과 하루 네 시간 근력 및 유산소를 병행한 결과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지만 라면을 먹을 때면 이제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건면과 곤약면류를 제외하고 가장 칼로리가 낮은 편인 참깨라면은 항상 나를 시험에 빠뜨린다. 밤마다 참깨라면의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다른 라면에 비해 덜 자극적이고 고소하면서도 유려한 감칠맛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유지어터에게 라면이란 제목으로 유서를 쓰는 상상을 한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농심의 자료에 따르면 한 사람당 연간 73개의 라면을 소비한다고 한다. 난 아마 컵라면까지 합치면 그 두세 배는 거뜬히 먹었을 것 같다. 야식을 끊을 때 가장 고뇌의 대상이 되는 라면.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라면이 좋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캐리어 한쪽을 채우는 내 허기의 반려. 음식이나 요리라기보다 어쩌면 끼니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바쁘고 힘들고 허기질 때 나를 채운 건 값비싼 음식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호의가 아니라 빠르고 뜨뜻하게 속을 데워 준 라면이었다. 파를 썰어 넣어도 되고 깻잎이나 마늘을 다져 넣어도 된다. 신김치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계란 톡. 없어도 그만. 라면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