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not found 알 수 없는 영역

by 올빗ORBIT

시를 짓는다. 오감이 아니면 더듬어 볼 수 조차 없는 생의 영역을 끝없이 분출하는 일. 하루에도 몇 번 시어가 태어나고 사라진다. 탄생은 있지만 그러나 목적은 알 수 없어서 우리의 여정은 언제나 고단하다. 고단하고 성실하게 꾸역꾸역 밀려오는 삶을 더듬는다. 더듬어보지만 완전한 실체는 알 수 없는 영역. 생활이 직조한 촘촘한 착각 아래 언어는 몸을 던진다.


하늘이 매일 본적 없이 푸르고 서른 한 가지 아이스크림의 단 맛이 곱고 너의 눈동자가 깊다. 낡은 장롱 안에서는 그리운 냄새가 나므로 가끔 그 안에 기어들어가 있곤 한다. 버스킹 하는 청년의 긴장한 어깨와 경직된 목소리가 서두없이 청량할 때 그 모두를 건져내어 시로 지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범인을 소소히 절망케 한다. 시를 짓는다. 하늘과 바다가 푸른 것은 그들이 파란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며 아이스크림의 단 맛은 사실 짠맛에 기인한다는 것. 너의 눈동자가 깊은 것은 내 마음이 깊기 때문이며 장롱 냄새는 나프탈렌이 주종을 이룬다는 것. 버스킹 청년은 미래에 정말 유명한 가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 이런 출처와 분별없는 언어의 나락이 시를 방해하고 시를 짓게 하고 시를 울린다.


필름 사진을 찍는 취미가 생긴 이후로 내 카메라에는 언제나 36장짜리 필름이 장전되어 있다. 필름 사진은 현상하고 인화하기 전에는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폰카로 찍거나 디카로 한 자리에서 수 십장 찍는 것과는 달리 시간이 배로 걸린다. 출장 겸 대구로 갈 일이 있어서 필름 카메라를 챙겼다. 예쁜 카페가 많고 날씨도 좋았으므로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을 거라 들떠 있는 상태였다. 여분의 필름도 꽤 챙겨갔다. 디지털카메라로 200장 찍는 것과 수동 필름 카메라로 36장을 찍는 것은 비슷한 체력 소모가 있다. 거의 반나절을 사진 찍는 일에 매달렸다. 뷰파인더의 세상은 때때로 현실과 다르고 더 아름다우며 편집되어있다. 그 시간의 행복감이란. 그렇게 체력과 시간과 집중으로 빚어낸 세상이, 세상에. 카메라 안에는 필름이 없었다. 허무와 공의 상태로 정적이 흘렀다. 심지어 혼자 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을 토로할 대상도 없었다. 믿었다. 아름다움이 기록되리라. 내가 본 것, 느낀 것이 허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이라고 착각했던 순간들.


오감의 무수한 오류들이 오류가 되는 것은 믿음과 착각, 일종의 배반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오감 중에 정말로 적확한 것은 사실 많지 않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이 모든 총체는 꾸준히 기억과 그 자리를 교차해 가며 스스로를 속인다. 시를 짓는다. 오감의 배반으로 도열한 이 세상에 이데아를 표현해 보려는 무구한 시도. 시를 짓는다. 밥도 짓고 집도 짓고 옷도 짓는다. 농사를 짓고 이름을 짓고 그리하여 마침내 생활이 시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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