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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Dec 13. 2019

가을 단상

 1. 감정의 낙오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낙엽은 온도의 낙차를 대비하기 위해 계절이 보내는 신호라고 여겼다. 여름과 겨울의 간극은 너무나 극명해서 때때로 우울하고 자주 피로했다. 그 진폭을 견디고 버티는 것이야말로 생의 노고라는 오류를 계속 번복한다.
 
 2. 낙엽 밟는 소리. 가을의 육성은 바스락 거린다.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세계와 검은 답의 우주로부터 침잠하는 나무는 성실하고 고단하다. 낙엽이 품고 죽은 초록을 땅에 묻는다. 단단한 겨울은 외딴 계절이다. 죽은 것과 죽을 것들을 선별해서 태어나면 봄의 얼굴이 된다고 했다. 천 개의 문장보다 쉬울 것. 여름만큼의 단어로 분절하는 겨울. 낙엽은 단어를 닮았다.
 
 
 3. 여름은 잘못 쓴 시를 폐기하듯 낙엽을 굴렸다. 구겨진 잎맥은 곱은 노인의 손가락처럼 잔뜩 말라 형편없다. 가로수길 바닥은 이제 오그라들고 수축하는 날들의 예고편이 상영된다. 낙엽을 다 흘리고 가시가 된 나무가 얼마나 통속적인가에 관하여 주절거리는 평론가들. 그들이 닥치려면 얼마나 많은 겨울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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