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틀렸어. 너는 왜 내 마음도 몰라줘. 말해줘야 알지. 도대체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알려주지 않는 데 어떻게 알아. 아 몰라. 벌써 한 시간 째 옆 테이블 커플은 알쏭달쏭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싸우고 있다. 티키타카는 좋아해도 저런 식의 대화는 나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OX퀴즈나 스무고개도 아니고 남자는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남자가 눈치가 없거나 여자의 자존심이 쌔거나.
 
  나도 꽤나 눈치 없는 축에 속해서 중고등학생 때는 이런 식의 인간관계에 꽤 자주 직면하고는 했다. 말도 없이 꿍해져 있거나 삐져있는 친구에게 아무리 물어보아도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나는 그저 무조건 사과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듯하다. 대체 왜 말해 주지 않는 거지. 뭘 잘못한 걸까. 지나고 나서 생각하건대 대부분은 내가 잘못했다기보다 누군가와 더 친해 보였다거나 일상의 어떤 부분을 다 공유하지 않았을 때 발생했던 상황이었다.
 
 애정의 크기. 애정의 배분. 애정의 표현. 이건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수학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서도 다른 아주 미묘한 과목인 것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면 이런 시험에도 유들해져서 척척 해치워야 하지만 이제는 어느 부분 포기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관계는 없고 되도록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지어야지 하고 나태해진다. 땡을 외쳐대는 타인 앞에 무력하나마 화해를 요청하는 수준이다. 구구절절 당신이 옳다. 그러니 말을 좀 해주면 안 될까. 무턱대고 잠수를 탔다 나타났다 이러면 나도 참 곤란한데.
 
  비단 뭐 친구,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가족 사이에서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험 같은 게 있는 데 이번 생이 초초초 처음인 나는 살갑고 매끄럽게 이 시험을 치를 수가 없다. 부모님께 안부인사 매일 하기. 동생에게 막말하지 않기. 뭐 이 정도로 겨우 유지하고 있는 관계.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땡. 탈락하고 마는 관계. 가끔 나는 내가 잘못 태어난 거 같다. 실격. 누군가 내 앞에서 이렇게 외쳐대고 있는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