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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Dec 13. 2019

언어의 영역


 
 우리는 하나의 현상이야. 감정의 분절. 관계의 집합. 사건의 전말. 그 모든 것들이 뼈와 피와 살과 옷이 되고 그리고 마침내 외투를 걸치게 되지. 보호하고 동시에 드러내는 언어의 영역.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체계화시키지. 그동안 전시하는 언어는 오롯이 내부의 영역인 동시에 외부와 맞닿아 있어. 형용사. 동사. 명사. 이게 다야. 우리의 외투는 이 세 가지 씨실과 날실이 얽혀 비로소 실재하게 되는 거야.
 
 유행은 언어의 영역에도 있어서 계절마다 유행하는 외투의 질감, 색, 길이가 다르듯 시시각각 달라져. 세대마다 다른 유행어, 신조어, 밈의 탄생이 그런 거란 말이야. 언어는 사실 파괴되지 않아. 변화할 뿐이지. 한글 파괴라고 과도한 말줄임이나 급식체들을 지탄하는 데 그건 그냥 언어의 태생이 그런 거야. 고대의 언어가 우리와 같았을까. 하물며 냄새도 맛도 질감도 없는 무형의 것인데 얼마나 많이 변했겠어. 그건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안 그래?
  
 외투를 벗어던지면 그 안에는 뭐가 있을까. 언어를 벗어던진 인간은 뭘까. 전승되지 않는 감정 덩어리? 혹은 날조된 기계부품. 소통하지 못하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단 하나의 개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외투를 인간이기 위해 부득불 껴입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언어의 영역은 일정 부분 구속의 성질을 가지는 것 아닐까. 그래 의문이지. 현상은 언제나 의문을 낳아. 현상이 끝나기까지 의문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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