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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Dec 13. 2019

모죽지랑가


 
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 하는구나
눈 깜빡할 사이에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이까
 
 물이 든 그릇 위로 한 잎 두 잎 눈처럼 나리던 벚꽃잎 몇 개가 동동 떠다닌다. 그릇을 쥔 작은 손이 야무지다.
 
 “죽지랑이 전하라 하셨습니다. 기다리던 이가 봄에 찾으실 거라고. 그때에 꼭 완성될 이 그릇에 물공양을 잊지 마라 하더이다.”
 
 국경 끝에서 군역을 지는 동안 사랑하는 스승은 세상을 등지었다.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동무이자 스승이었던 사람. 저의 보잘것없는 재능을 귀애하고 이끌어주던 임의 마지막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불효에 가까웠고 원통을 낳았다.
 
 ‘시국이 그러하다. 득오야. ‘
 
 화랑의 기개는 더 이상 없다. 그들을 따르던 낭도의 무리도 뿔뿔 하였고 화랑은 예전만 못했다. 나라가 기울고 있었다.
 
 “죽지랑께서는 화장하여 남은 뼈로 이 그릇을 빚어달라 하셨습니다. 이 마을 제일가는 도공이신 저의 아비에게 부탁하신 일입니다.”
 
 어린 도공의 아들은 나이답지 않게 의젓하고 또랑 하여 득오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듯했다. 딱 저만할 때 죽지랑을 처음 뵈었다지. 작은 손에서 그릇을 건네받았다. 물이 담겨있었으나 그릇의 표면은 사람의 체온처럼 미지근했다. 도공의 아들이 반나절 꼬박 죽지랑의 유언을 지켜내며 득오를 기다리느라 그릇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탓이라. 그는 이런 어린아이들에게도 충과 의를 이끌어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벚꽃이 띄워진 물을 후후 불어다 천천히 마셨다.
 
 “물이 참 달다.”
 
 빈 그릇을 손에 쥐고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어있는 물그릇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었던 사람. 스승은 5대 풍월주 사다함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다함의 본래 의미에 관해서도 알려주었다.
 
‘사다함이란 다음 생에 한 번 더 환생을 하면 다다음 삶에서 아라한이 될 수 있다는 경지를 일컫는단다.’
‘저는 환생을 믿지 않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고 한들 이런 세상은 싫습니다.’
 
 그때에 그는 웃었던가. 울었던가. 그는 죽어 모든 번뇌에서 놓여났을까. 진정 텅 빈 자유를 맛보고 있을까.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까. 흙과 뼈로 지은 그릇은 텅 비어 쓸모를 다했으나 결국 득오의 손에 남았다. 빈 그릇이 무거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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