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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Dec 13. 2019

여백이 없는 아침이다


 
 여백이 없는 아침이다. 까무룩 했던 밤들은 고단하고 일으켜야 하는 몸은 눅눅하다. 자꾸만 눕고 싶다. 유독 바쁘고 피곤했던 한 주가 지나고 맞는 아침, 몽롱한 의식은 쉽게 돌이켜지지 않는다. 자초한 바쁨과 피로가 달지만은 않다. 간밤에는 과음을 좀 했던 것도 같다. 다행히 속이 쓰리진 않다. 편한 술을 먹었고 적당히 취하려 했다. 혼자 하는 술이 잦다. 낮이 바쁠수록 밤과 고독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 간극만큼 아침이 두렵다. 꾸역꾸역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루 그 시작이.
 
 부산과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연이틀 주말은 행사로 소진했다. 낯선 얼굴들, 붐비는 사람들, 거대한 타자 앞에 사라지는 나를 끝없이 경험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소모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를 써서 삶을 번다. 고약하고 잔혹한 동화처럼 밤과 낮은 끝없이 교차하고 나의 좌표는 그저 눈을 뜨는 그 날의 아침으로만 존재하는 기분이 든다. 반짝. 눈이 떠지면 신기하게도 온갖 소리와 냄새, 빛, 세상의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기상! 기상! 일어나세요. 아침입니다.
 
 저혈압은 아침에 일어나는 게 몹시 힘들다. 더군다나 심야에 퇴근하고 야행성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침대와 헤어지는 것이 연인과의 이별보다 어렵다. 날씨가 추워지면 더더욱 가관이다. 동굴에 박혀 겨울잠이나 자다가 봄이 되어서야 느지막이 깨어나고 싶은 것이다. 피가 느려지는 계절. 조만간 수능이 다가오고 그때의 추위를 시작으로 점점 더 기상은 힘들어질 예정이다.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대로 잠들듯이 고마운 죽음을 꿈꾼 적도 있다. 희망차고 찬란한 아침에 ‘죽음'을 언급하는 금기를 어겨보면 꽤나 통쾌한 기분이 든다. 출근할 때 마주친 장례식차의 행렬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처럼.
  
 기상과 수면. 밤과 낮. 시작과 끝. 삶과 죽음. 끝없는 회귀를 더듬어 본다. 작은 것들의 반복이 생을 이루고 엮이기도, 풀리기도 하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맺음은 수미상관이 아닐까 싶다. 결국 모두 제 자리로 돌아온다. 여백이 없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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