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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Dec 13. 2019

내 방

내 방에는 나만 산다. 그 이외에 살아있는 것은 없다. 가끔 머물다 사라지는 타인들은 조연처럼 나타났다 소멸한다. 어지를 수 있는 자유, 비울 수 있는 자유, 잠들 수 있는 자유, 숨질 수 있는 자유. 내게 허락된 온갖 자유의 하치장. 공간을 소유하는 것의 아름다움은 모두 이런 소소한 자유에서 왔다.
 
  내 방에 마음대로 침입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녹녹해진 햇빛, 오후 어스름의 시간 뿐이다. 그 때에 나는 한 껏 게을러진다. 금홍의 방에서 유희하던 이상. 그를 표절하는 것은 나의 유희다. 유효기간이 지난 화장품병과 향수, 맥락도 기호도 없이 쌓인 책 사이로 한 없이 표류해 보는 것이다. 희뿜한 햇빛 사이로 빛나는 먼지의 입자들. 침대에 엎어진 어제의 그림자. 관성은 원심력을 가지고 지구의 하루를 돈다.
 
 빙글빙글. 머리맡에 드림캐쳐에는 지난 밤 악몽이 걸렸다.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방에서 살았다. 겨울이 오면 스스로 갇혔다가도 여름에는 바람도 드나드는 곳. 말을 잃고 기억도 묻었다. 울기 좋은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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