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끼와 밤잔물

by 올빗ORBIT

있지. 간밤에 자리끼로 마신 물에서는 락스 맛이 났어. 조금씩 뭔가가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상상을 해. 멀리 돌아가던 새벽이 별똥별처럼 떨어지던 날이었어. 꿈에서 허리가 너무 아픈데 깰 수가 없었어. 뒤척이던 자리마다 웅덩이가 깊었지. 하루의 무게만큼 패인 자리 위에 눕고 또 누웠더니 조약돌 같던 웅덩이는 자꾸만 커져가. 커다란 태아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밤을 갉아먹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해. 솔잎은 너무 쓸 텐데. 솔잎은 너무 뾰족할 텐데.

몸집보다 큰 불안을 덮는다. 불면과 악몽의 좌표에 누워 있구나. 불안 대신 해묵은 솜이불을 걷어 찬 발이 새벽보다 차갑다는 걸 알아. 상상하는 내일이 너무 무겁네. 그래서 내가 전에 구스 이불 덮고 싶다고 했잖아. 거위의 가슴털은 올해 겨울 얼마큼 휑해졌을까. 새벽 네 시에도 깨어있거나 오후 두 시에도 잠들어 있어. 꿈이 뭐냐고 물을 시간에 두터운 꿈을 꾸고 있어. 악몽에서 깨고 나면 차게 식은 자리끼를 벌컥벌컥 들이켜기 일쑤지. 해골물처럼 달다. 바다가 응집된 냄새. 있지. 간밤에 자리끼로 마신 물에서는 락스 맛이 났어. 잠자리 끼니. 자리끼의 어원이라고 해. 우습지.

해가 드나드는 자리가 나에게로 오면 그제야 몸을 일으켜 보는데 그때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건 겨우 밤잔물. 불면과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표면이 맑다. 한 컵을 다 마시지 못해서 남아도는 그 액체가 악몽의 습기를 모두 빨아 모아놓은 것처럼 축축해. 음습한 밤은 투명한 색이야. 아무거나 비추고 아무거나 더럽히라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는 빙글빙글 돌아서 또 밤이 올 거래. 그 유구한 예언이 하얀 머그컵 안으로 추락하고야 말아. 꿈 없이 잠들고 싶은 밤을 한 컵 가득 따라 놓을래. 빌다보면 정화수가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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