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서너 살 이전까지 거의 매일 가위에 눌렸다. 사실 가위눌린다는 표현을 전혀 모르고 있어서 밤마다 일어나는 일을 하루 일과쯤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눈을 뜨면 내가 어디에 잠들었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눈을 떴다. 캠핑장의 텐트 안에서도, 이사 간 새집에서도 심지어 잠깐 낮잠에 빠졌을 때도 항상 같은 장소로 소환당했다. 푸르스름한 새벽이 창으로 들치고 오래된 장롱이 굽어보는 외할머니 집 안방 풍경. 흔한 가위눌림이 그러하듯 몸은 결박당해 움직일 수 없이 무겁고 그 상태 그대로 다시 잠이 드는 밤의 연속이었다. 신기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그저 안온하고 피곤하다는 상태와 할머니 집의 정겨운 냄새만이 생생할 뿐. 지금은 그 수많은 밤들이 반복된 이유도 나의 해마에 기록된 최초의 기억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유년기 내내 외할머니 집에서 보냈고 할머니는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엄마와 이모가 직접 하단을 가꾸고 할아버지가 벽돌을 쌓아 만든 집. 삼촌들이 나고 자란 곳.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밥을 짓던 언덕 아래 그 집에서.
그러므로 할머니 집은 기억의 고향 같은 곳이다. 모든 최초의 감각들이 시작된 곳.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이 이렇게나 다채로울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엿장수에게 유리병, 고철 따위를 깨엿으로 바꿀 수 있고 장이서면 몇 백 원에 스프링 목마를 동요 한 곡만큼 탈 수 있었다. 연탄에 구운 군고구마는 꼭 아침에 먹어야 했다. 그래야 맛탕처럼 달디단 꿀고구마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언덕에 물을 부어 얼려서 얼음썰매를 탔다. (그러다 동상을 입으면 요강에 더운 오줌으로 언 손을 풀어야 했다.) 한글을 더듬더듬 깨쳤던 날들. 화단에 핀 꽃들의 무수한 이름과 믹스커피를 타 드시며 한 숟가락 내 입에 넣어주시던 할머니의 다정한 미소. 할머니 말솜씨로 전래되는 진짜 전래동화. 할아버지가 타 준 황금비율 두유. 한 번도 무채색인 적 없었던 나의 유년.
기억은 오류다.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과거’라는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고 하지만 이 것들이 나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요즈음은 새벽에 가위눌리는 경우도 없고(새벽에 잠들지 않아서 일 수도) 그러니 그리운 할머니 집으로 소환당할 일도 사라졌다. 실제 하지 않는 장소와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최초의 기억들이 모인 기억의 전당은 자라면서 조금씩 휘발된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