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by 올빗ORBIT

빌리의 노래를 듣는다. 기분이 저조할 때 입으로 한꺼번에 욱여넣는 항우울제 같은 목소리. 우울의 바닥을 치고 뭍으로 나아가기 위해 꿀꺽 삼키고 본다. 그녀는 악몽과 선몽의 경계를 자조적으로 무너뜨릴 줄 안다. 무저갱에 숨어든 꽃을 노래로 피우면 그녀의 노래가 되지 않을까.
기괴한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켜놓고 그 안에 유영하는 그녀를 바라보노라면 힙하다, 멋지다를 넘어선 섬세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세상 제일 심각하고 아픈 중2의 나도 있고 자조와 자괴로 일그러진 초상도 있다. 스스로를 무너뜨려 본 사람이 스스로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앓아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앓을 자격이 없다고도 감히 말해본다. 공감의 영역이 클수록 울림이 크다. 음악이 주는 위안과 주술성은 너무나 강력해서 슬플 때는 더 슬퍼야 하고 신날 때는 더 신나야 하는 것이다. 사이렌 같은 그녀가 심해의 바다로 밀어쳐넣어도 반항 없이 깊게 깊게 가라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태한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리하여 못난 자신을 한없이 학대하고 싶을 때 천사의 목소리와 냉소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다.

Bellyache
샛노란 병아리 같은 옷을 입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경쾌한 춤을 추는 그녀. 사실 그녀가 몰고 온 차 뒷좌석에는 살해한 친구들과 그의 방에서 훔친 돈가방이 있다. 아. 난 감옥에 가기엔 너무 어린데. 됐고. 나 지금 배 아파. 의식의 흐름은 딱 고등학생의 그것인데 내용은 잔혹동화 그 자체.


Bury a friend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성인 버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은 어릴 때 본 ‘장화홍련'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침대 밑에 사는 몽마의 이야기를 특유의 악마적인 화법과 몽환적인 목소리로 풀어낸다. 지루할 틈이 없는 노래.

Everything i wanted
근래에 즐겨 듣는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다. 가장 최근 앨범이라 그런지 점점 성숙하고 편해지는 그녀의 감성이 느껴진다. 여전히 세상과 불화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와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 슬픔이 ‘감당'할 만한 것으로 대체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안도. 그저 내 감상일 뿐일지라도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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