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적의를 불태우며 하루를 보낸다. 가끔은 비슷한 매일에 노을처럼 고요하게 붉어질 때도 있었고 때로는 살아남는데 전력을 쏟아부어 탈력감에 지쳐 쓰러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노련하고 고독한 적의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었다. 경쟁과 비교의 삶이 익숙해진 자의 내면은 화성을 닮았다. 치열하게 거칠었고 매일이 버석거렸다. 당신의 하루와 겨루어야 했고 나의 것과 사람들을 지켜내느라 관절과 마음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타인이 관측하기에는 뜨겁게 살고 있으나 실상은 차갑게 존재했다. 버티는 존재.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올림푸스의 산)과 가장 깊은 협곡(마리네리스)을 가진 화성의 극단성이 바로 이 적의와 닮았다. 그것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배척하는 감정과 달랐고 내부로 침잠하고자 하는 우울과도 차이가 있었다. 각자의 삶에 있어 그것은 명암과 채도의 격차가 아니라 질감의 격차였다. 약한 중력으로 쥘 수 있는 모든 것을 쥐고 이탈시키지 않으려고 버둥거린다. 고작 잘 살아남는 것에 온 삶을 거는 어리석음. 잘 산다는 것의 기준과 경계를 바르게 허물지 못해 온갖 번뇌로 번들거리는 적의로 가득 찬 삶. 용암처럼 붉은 화성의 온도가 차디 찬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