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이는 매일 11시에 전화를 했다. 핸드폰에게는 미래폰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불렀다. 그런 시간을 한 달 가까이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곁에 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통화는 원래의 시간으로 걸려 와 기림이의 핸드폰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미래폰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아니 누가 곧 근처로 올 것인지까지 기가 막히게 예상하고 자신의 비밀을 너무나 잘 지켜내고 있었다. 기림이와 세진이 역시 다른 아이들에게 이 비밀을 말하려 들지 않았다. 말해봐야 증명해 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무언가 무거운 사명이 자신들에게 있어 이 비밀을 꼭 지켜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있어서였다. 세진이와 붙어 지내게 되며 기림이는 자연스레 오랜 친구였던 윤후, 재원이와 멀어졌다. 재원이는 자신들에게 비밀이 생긴 것 같은 기림이에게 서운하다고 따지기도 했지만 기림이는 그런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어 답답했다. 윤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진이를 고등 입학 때부터 좋아한 윤후의 마음을 아는 터라 기림이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언젠가 친구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정의를 위한 일이고 모두를 위한 옳은 일에만 미래폰을 쓰면 다 괜찮아질 거라 서로를 다독였다. 그런 둘의 마음을 한 번은 흔들리게 했던 때가 바로 시험기간이었다. 시험 일정이 나온 날,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세진이는 기림이에게 물었다.
“너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무슨 생각?”
“내가 그날 친 시험에서 어려운 문제 번호와 답을 너한테 알려주면 너는 그 걸 다음 날 아침에 나한테 알려주고, 그럼 우리 둘 다 내신 관리가 어마어마하게 잘 될 텐데.”
세진이의 말에 기림이가 픽 웃는다.
“네가 필요하면 말해. 협조할게.”
“내가 필요하면? 너는 필요 없다는 말이야?”
옆에서 나란히 걷던 세진이가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와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묻자 기림이의 얼굴이 빨갛게 변한다. 뭔가 멋지게 말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기림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미래폰의 주인이 내게 했던 저주라는 말을 잊을 수 없어. 그 사람은 현명하게 사용하면 미래폰은 나에게 저주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거든. 미래폰이 우리에게 온 게 분명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내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쓰거나 나쁜 일에 쓰면 안 좋은 일로 돌아올 것 같고.”
“음...”
잠시 생각하는 세진이의 얼굴을 보며 기림이는 벌써 자신이 제 욕심을 위해 미래폰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사실 세진이와 친해지며 마음속 이야기를 많이 나눌수록 기림이는 세진이가 좋아졌다. 공부만 하는 친구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해 생각도 많고, 어쩌면 무거울 것 같은 그 생각들을 즐겁게 풀어내는 세진이의 유쾌함에 기림이는 마음이 말랑말랑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멋지고 예쁜 아이가 나와 친해지다니, 미래폰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래폰이 없었다면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미래폰을 이용해 세진이와 친해질 기회를 잡은 건 아닌지 하는 마음이 죄책감으로 남아 기림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좋아한다고 고백할 용기 또한 기림이에겐 없었다.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지 않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매일 밤 11시에 울리는 진동음 소리에도 설레고, 점심시간 운동장을 걷고 있는 자신의 뒤를 어느새 따라온 그 아이의 그림자에도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에 절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혹시나 이 마음이 세진이에게 전해지는 그 순간들을 기림이는 수 백 번도 더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하나였다. 세진이가 웃는다. 그 웃음 끝에 난처한 표정들이 피어난다. 그다음, 우리는 좋은 친구라는 말을 하겠지. 그리고는 멀어지는 그 아이. 세진이가 얼마나 많은 남학생들을 그렇게 거절해 왔는지 기림이는 잘 알았다. 자신도 그렇게 되기는 정말 싫었다. 그냥 이렇게 친구로라도, 내일폰의 파트너로서 세진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 매번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모든 순간들을 지켜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나를 돌아봐 줄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도 조금은 자라고 있었기에 그런 인내의 시간들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림이의 마음을 잡아준 건 미래폰의 존재였다. 적어도 미래폰이 자신에게 있는 한, 이 핸드폰이 세진이를 자신의 파트너로 정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미래폰의 존재 자체가 지금 세진이와 자신의 거리를 가깝게 해 준 고마운 선물이면서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선을 그은 무서운 저주 같다는 생각도 했다. 기림이는 미래폰에게 고마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거긴 내일이겠지만 여기서 오늘은 니 생일이야. 5월 7일.” 밤 11시의 전화를 받자마자 세진이는 짧게 말하고는 급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멋진 친구 기림이~ 생일 축하합니다.”
기림이는 웃으며 세진이의 다정한 노래를 들었다. 마음속이 행복함으로 가득 차 따뜻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기림이의 답을 듣자마자 세진이는 급하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오늘 우리에게 첫 번째 임무가 주어진 것 같아.”
“첫 번째 임무?”
기림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니 생일 축하 노래한다고 시간이 없어서 간단히 말할게. 지금 벌써 15초나 지났거든.”
“응.”
세진이의 말에 기림이는 얼른 메모지를 꺼냈다.
“오늘 오후 6시 10분쯤, 학교 앞 분식집 건물 옥상에서 벽돌이 하나 떨어져. 근데 그 벽돌에 네 친구가 크게 다쳐. 구조대가 오고 의식이 없는 채 앰뷸런스에 실려 가긴 했는데 아주 위급한 상태라고 들었어.”
세진이의 말에 기림이의 얼굴이 굳어갔다.
“내 친구라고? 누구?”
“윤후, 김윤후래.”
“윤후라고? 진짜야?” 메모를 하던 손이 멈춘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정리한다.
“내일 6시 10분, 분식집 옥상에서 벽돌이 떨어지는 거 맞지?”
“응. 조사 나온 경찰들이 그렇게 얘기했어.”
“더 정확히 말해 봐.”
“나도 그 자리에 있던 게 아니라서 잘 몰라. 윤후가 혼자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고 누군가 옥상에서 벽돌을 던졌는데 그걸 머리에 맞았대. 크게 다쳤다는 것까지만 알아.”
“잠깐? 윤후가 혼자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고? 나는? 재원이는?”
“나도 그건 몰라. 사고가 난 뒤에 알았고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서 알게 된 건 이게 전부야.”
“혹시 누가 그런 건 지는 몰라?”
“몰라. 나도 그것까진...”
기림이가 다급하게 소리치고 세진이는 잘 모르겠다는 소리만 반복하는데 미래폰은 또 속절없이 끊어져 버렸다.
“에이씨”
기림이는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미래 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자신이 써 놓은 메모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5월 7일. 오후 6시 10분. 학교 근처 분식집 앞 김윤후, 옥상, 벽돌”
소리 내어, 그러나 조용히 이 메모를 읽던 기림이가 머리를 잡는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윤후가 그 시간에 혼자?’
이재원, 김윤후. 두 친구와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며 친해졌다. 서로의 집을 오다니며 부모님들끼리도 서로 알고 지내게 된 사이좋은 친구였다. 셋은 서로의 생일에는 꼭 학원을 빠지고 사이좋게 PC방에 가서 저녁 늦게까지 게임을 하며 놀았다. 평소에 성실하게 지내는 세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배려이며 생일선물이었다. 셋은 서로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챙겼다.
‘내일은 내 생일인데 왜?’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셋은 당연히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야자도 빼먹고 바로 항상 다니던 PC방에서 라면을 시켜 먹으며 게임을 하고 있어야 했다.
‘대체 내일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윤후에게 무슨 일이 있나?’
기림이는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화받기 곤란한 상황일 수도 있으니 카톡을 보내자.’
카톡을 클릭해 재원이, 윤후와 함께 하는 단톡방을 열었다.
“윤후야, 너 뭐 해?”
아직 읽지 않았다. 아무런 답이 없다. 기림이는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 초조해 견딜 수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물어뜯는다.
웅
카톡의 알림 진동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 밤에 윤후는 왜 찾아?”
재원이다.
“아니, 그냥 너네 내일 기억하나 싶어서...”
“내일? 우리 내일 뭐 있냐?”
재원이 이 자식. 분명히 알면서 그러는 거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 내일 야자 빼고 PC방 갈 거잖아”
기림이가 열심히 문자판을 찍는다.
“난 네가 내일도 바쁠 거라 생각했지. 여자 친구도 있는 몸이고.”
재원이가 놀리듯 말한다.
“여자 친구 아니라고. 그리고 내일은 너희들하고 보내는 날이잖아.”
기림이가 이렇게 찍어 올리자마자 글 하나가 올라온다.
“그래. 이제 우리는 괜찮으니까 여자 친구랑 생일 파티해.”
기림이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윤후였다.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난 내일 너희랑 PC방 갈 거고.”
뭔가 시원찮은 친구들의 태도에 기림이는 속이 탔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약속을 취소하려 하는 친구들이 답답했다.
“점심시간마다 둘이서만 다정히 운동장을 걷는데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윤후의 카톡이 왠지 날카롭다.
“에이. 김윤후, 우리 이해하기로 해 놓고 왜 급발진이야?”
재원이가 중재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아마도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있었던 것 같다. 미래폰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이 자신에게 충분히 서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윤후가 조금은 야속했다.
“저 자식이 요새 영 기분 나쁘게 하잖아. 요새 야자 마치고도 맨날 거짓말하고 오늘도 우리 피해서 일찍 들어가고. 여자 친구 생겼다 그럼 우리가 뭐 어쩔까 봐? 아니라고 살살 속여가면서 사람 바보 만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윤후의 말에 기림이도 화가 났다.
“진짜 여자 친구 아니라고! 그리고 사정이 있다고 했잖아. 친구끼리 그냥 믿고 기다리면 안 되는 거야?”
“친구? 웃기고 있네. 야! 너는 뒤로 할 짓 다 하고 다니면서 친구니까 이해하고 기다리라고? 됐어. 나 이제 너랑 할 말 없어.”
윤후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단톡방에서 나가 버렸다.
“저 자식 괜찮다고 하면서도 너랑 세진이가 영 신경 쓰이나 봐. 사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기도 하고.”
재원이다.
“내가 미안해. 너희한테 말 못 할 일들이 생겼는데 나도 참 힘들어.”
기림이가 한숨을 쉬며 문자판을 찍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 말 못 할 일을 한세진한테는 말할 수 있는 거야?”
“나도 참 희한해. 나랑 세진이한테 같은 일이 생겼거든.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그래도 우리가 서로 믿고 지낸 시간들이 있는데 나 좀 믿어 주면 안 될까?”
“그래. 너한테 어떤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어. 상황을 모르니 우리가 납득하기도 쉽지 않겠지. 근데 하나 확실한 건 세진이에 대한 니 마음이야.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그 부분에선 윤후한테 솔직하면 좋겠어. 난 그 부분에선 윤후 마음이 더 이해되니까. 그리고 일단 내일 니 생일은 우리 다음에 하자. 난 윤후랑 잘 이야기해 볼게.”
한참 답이 없던 재원이의 마지막 톡이었다. 기림이는 답답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내일 약속이 취소된 것에 생각이 미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일 윤후가 혼자 분식집 앞을 걷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연락을 한 건데 도로 약속이 취소되도록 만든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너무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참을 책상에 엎드려 머리를 쥐어뜯던 기림이가 고개를 들었다.
‘내일 다시 윤후를 만나자. 만나서 원래대로 PC방에 가는 거야. 오늘은 잠시 화가 나서 그러는 거지, 내일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그동안에 우리가 한 번 두 번 싸운 것도 아니고, 그래. 내일은 정말 괜찮을 거야.’
기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 누웠다.
‘내일 일을 막으려고 한 행동이 도로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도록 만들었어. 일어날 사고가 정해져 있고 내가 아무리 애써도 내 행동들이 도로 그 일을 일어나도록 만드는 거라면 어떡하지?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걸까?’
기림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윤후가 위험한 일인데 손 놓고 있을 순 없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 일을 막을 거야.’
첫 임무에 대한 두려움과 간절함에 기림이는 밤을 꼬박 지새웠다.
다음 날 기림이는 집에서 좀 더 일찍 나서서 윤후네 집 앞으로 갔다. 윤후를 만나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윤후는 나오지 않았다. 윤후에게 전화를 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했다. 재원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기림이의 말투가 다급하다.
“나? 학교 다 와 가는데.”
“혹시 윤후 만났어?”
“윤후 지금 내 옆에 있는데 왜?”
“나 좀 바꿔줘. 그 자식 내 전화 안 받아.”
한참을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재원이가 다시 전화를 받는다.
“윤후 녀석이 너랑은 할 말이 없다고 먼저 가 버렸어. 당장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좀 기다려줘. 원래 안 그러던 녀석이 빡치면 희한하게 변하는 거야. 내가 잘 이야기해 볼게.”
“안 돼. 시간이 없단 말이야.”
기림이의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난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재원이가 놀란 눈치다.
“오늘 윤후가 나랑 안 가면 다쳐.”
기림이가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 안 들려! 너랑 안 가면 뭐?”
“다친다고!”
“뭐라고?” 희한한 일이었다. 윤후가 다친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재원이는 아무 말도 안 들린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다시 되물었다. 미래폰의 비밀이 이런 식으로 알려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기림이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그냥 나는 윤후가 오늘 원래 우리가 하던 대로 나랑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내 생일이잖아. 부탁이야.”
애원하듯 울고 싶은 마음으로 재원이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나도 노력은 해 볼게. 근데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마. 윤후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알았어.”
기림이가 대답했다. 일단 학교로 가자. 점심시간에 시간이 있으니 윤후를 설득해 보자. 그렇게 마음먹는 기림이었다.
“뭐라고? 조퇴?”
재원이와 대화를 하던 기림이가 소리를 지른다. 그 바람에 복도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림이와 재원이를 향한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급식실로 가지 않고 바로 재원이와 윤후의 교실로 달려왔는데 집에 가고 없다고 하니 기림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떨린다.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재원이가 깜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왜? 언제 조퇴한 건데?”
“3교시 끝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담임한테 허락받고 나갔어.”
잠시 휘청하던 기림이 한숨을 내쉰다.
“좀 기다리라니까 그새 윤후랑 풀러 왔어?”
재원이의 눈빛이 한결 부드럽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굳은 표정의 기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재원이가 말을 이었다.
“윤후도 너한테 그러고는 지금 마음이 많이 불편한가 봐. 그래서 머리도 아픈 거겠지. 어쩌면 혼자 풀릴지도 모르니까 조금 기다려 보자.”
재원의 위로에 기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걸까?’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급식을 먹고 나자 재원이는 친구들과 농구를 한다며 농구대 쪽으로 뛰어갔다. 조용히 운동장을 걸으며 세진이를 기다렸다.
“왜 이렇게 오늘은 어깨가 무거워 보여?”
어느새 다가 온 세진이가 활짝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 단순한 인사가 지옥 같은 밤을 보낸 자신에게 보내는 너무나 따뜻한 위로 같아서 기림이는 코 끝이 찡하게 아려왔다.
“사실 나 어제 너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기림이는 세진이에게 어젯밤부터 오늘 점심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했다. 윤후가 세진이에게 마음이 있다는 얘기는 빼놓고. 그 말은 무엇 때문인지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남자 친구들도 똑같네. 여자 친구들처럼 서로 서운하면 삐지고 하하.”
세진이는 기림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불안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기림이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듯 세진이가 웃는 눈으로 기림이의 눈을 빤히 본다.
“일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은데?”
상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대답에 기림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세진이를 쳐다봤다.
“일이 해결됐다고?”
“응. 6시 10분에 분식집 앞에서 일어날 사고였잖아. 근데 윤후는 아파서 집에 간 거고. 그랬으니 다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올 확률은 아주 작아.”
“아!”
자신의 말에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기림이의 등을 세진이가 제법 세게 한 번 쳤다.
“정신 바짝 차려. 그래도 끝난 건 아니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마치는 시간이 5시 50분쯤이고, 나는 마치자마자 문방구 근처에서 윤후를 찾아볼게. 너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옥상으로 올라가서 벽돌을 던질 사람을 막으라는 거지?”
기림이 밝은 목소리로 세진의 말을 받아 이었다.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나 보네. 만의 하나, 윤후 그 아이가 무슨 일로 그 앞을 지나갈지도 모르고, 어쨌든 옥상에서 벽돌이 떨어진다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세진이의 말에 기림이는 이제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밝게 미소 지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말했잖아. 너는 아가고 나는 생각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세진이의 눈 끝이 살짝은 반짝이는 것 같다고 오늘도 기림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이야.”
세진이는 진짜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듯 기림이의 팔을 살짝 잡더니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가 만약 그 벽돌을 떨어지기 전에 찾게 된다면.” “응. 꼭 찾을 거야.”
“그럼 그 돌을 떨어뜨려 깨 줄래?”
“벽돌을 떨어뜨리라고? 그건 무슨 말이야?”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묻는 기림이에게 세진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그 벽돌이 언젠가는 떨어져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 그러니까 꼭.”
“알았어.”
세진이의 말을 듣다 보니 위험한 벽돌은 없애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기림이는 가방을 들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너무 서둘러 교실을 나가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긴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에 배가 아프다는 거짓말을 해 교실 안에서 웃는 친구들의 소리를 뒤로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너무 급하게 나온 탓인지 교문 밖에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분식집 앞에는 세진이가 있겠다고 했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기림이는 분식집 건물을 돌아 옥상으로 가는 입구를 찾았다. 3층 건물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는 없는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갔다. 미친 듯이 뛰어올랐더니 심장 뛰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도 들리는 것 같았다.
“어! 왜 이래?”
옥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단단하고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이상하다. 이렇게 잠겨 있는데 누가 들어가 벽돌을 던진다는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기림이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5시 58분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기림이는 다시 빠른 속도로 1층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이모! 여기 옥상 열쇠 있어요?”
분식집에 가 냅다 열쇠부터 찾았다.
“옥상 열쇠는 왜?”
분식집 사장님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니 저기 옥상에 아이 하나가 보이는 것 같아서요.”
어느새 달려와 뒤에 선 세진이가 난처해하는 기림이 대신 입을 열었다.
“옥상에 아이가 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분식집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서랍에서 두꺼운 열쇠 하나를 꺼냈다.
“영아! 나 옥상에 금방 다녀올게.”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누나에게 소리를 빽 지른 분식집 사장님을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기림이는 세진이에게 고개를 까닥하고는 분식집 사장님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이렇게 문이 단단히 잠겨있는데 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분식집 이모는 투덜거리며 자물쇠를 열었다.
끼익
무겁고 듣기 싫은 쇳소리가 크게 울리며 문이 열린다. 기림이는 기다렸다는 듯 분식집 사장님보다 먼저 옥상으로 달려 나갔다.
“어!”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봐! 아무도 없구만 괜히 잘 못 본 걸 가지고 사람을 그냥 아주 똥개 훈련을 시키네.”
분식집 사장님이 귀찮다는 말투로 살짝 기림이를 흘겨보았다. 기림이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옥상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벽돌 같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세진이가 잘못 안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옆 건물을 보는데 계단 쪽 3층 창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빨간 벽돌 하나가 보인다.
‘저거였구나’
시계를 봤다. 6시 5분이다. 기림이는 투덜대는 분식집 사장님을 뒤로한 채 냅다 건물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밖으로 나가 분식집 앞으로 돌아가니 윤후가 보인다. 그리고 윤후의 팔을 잡아끌며 학교 쪽으로 걸어가는 세진이의 모습도. 놀란 윤후의 눈을 뒤로한 채,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옆 건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 계단 창문 앞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서 장난을 치며 창문에 몸을 부딪혀 가며 놀고 있다.
“어! 얘들아 거기서 놀면 위험해.”
소리치며 창가로 달려간 기림이는 창문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놓여 있는 벽돌을 집어 든다. 아이들은 벽돌을 보고 놀란 듯 멈칫한 채 서 있었다. 기림이는 그 벽돌을 화장실 안에 들어가 강하게 패대기쳤다. 오래된 낡은 벽돌은 원래 금이 가 있었던 것처럼 다행히도 쉽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기림이는 조용히 화장실에서 나왔다.
“저 벽돌. 복도 문이 시끄러워서 거기 받쳐 놓은 건데 왜 창문에 올라가 있는 거지?”
초등 아이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너희들 여기 3층 학원 다니니?”
“네. 방금 마치고 나왔어요.”
기림이의 질문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복도 문은 다른 걸 받쳐 놓으시라고. 벽돌은 위험하다고.”
방금까지도 창문틀 위에 올려져 있던 벽돌을 본 뒤라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림이는 휴 한숨을 내쉬고는 옷소매로 땀을 닦고 천천히 건물에서 내려왔다. 학교 쪽을 쳐다보니 천천히 걷고 있는 세진이와 윤후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들 옆에 어느샌가 재원이까지 서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네.’
윤후와 재원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림이는 그들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친구들과 가까워질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세진이가 윤후와 재원이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이 친구 녀석들은 잔뜩 긴장한 채 무언가 많이 어색한 듯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었다.
“아! 왔어?”
기림이를 먼저 발견한 세진이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윤후와 재원이는 얼굴이 빨개진 채 헛기침을 하며 기림이를 향해 손을 살짝 들어 인사했다.
“벽돌은 잘 처리했어?”
“벽돌?”
세진이의 말에 놀란 기림이가 세진이와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내가 대충 얘기했어. 나머지는 어디 들어가서 설명할게.”
세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기림이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무슨 얘기를 어디까지 한 건지 알 수 없는 기림이는 놀란 눈으로 ‘응’하는 바보 같은 대답만 할 수 있었다.
넷은 그대로 걸어가 학교 근처의 작은 스터디 카페로 들어갔다.
“여기 4인실 있죠?”
세진이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안내했다. 남자 아이 셋은 뭔가에 홀린 듯 세진이를 따라 그 방으로 들어갔다. 기림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진이가 무슨 말을 친구들에게 했는지 몰랐고, 윤후와 재원이의 표정이 너무나 놀란 채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미래폰 얘기를 다 한 건가? 어떻게? 그건 아무에게도 알려질 수 없는 비밀이라고 한건데...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런데 왜 저 자식들은 귀신이라도 본 냥 저렇게 멍청하게 굳어있는 걸까? 미래폰 이야기가 아니라면 왜?’
수 십 가지 경우의 이야기가 기림이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렇다 확정 지을 수 없었기에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기림이는 친구들처럼 그저 멍하니 무언가에 홀린 듯한 멍청한 표정으로 세진이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여기 싫지?”
알바 형이 음료수까지 갖다주고 문을 닫고 나가자 세진이가 입을 열었다. 특유의 밝고 쾌활한 목소리에 남자아이 셋이 동시에 움찔한다.
“아니야.”
“응, 나도 괜찮아.”
윤후와 재원이가 반듯하게 각자의 의자에 앉아 반말이지만 너무나도 공손히 얘기한다. 기림이는 순간 픽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 여자아이하고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 앉아 대화하는 것이 너무 긴장돼서 저러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군인 같은 자세로 앉아 세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친구 놈이 너무 귀엽고 우습다. 세진이는 픽 웃는 기림이를 한번 째려보고는 조용히 하라는 듯 입에 손을 갖다 대더니 다시 윤후와 재원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만큼 비밀보장이 잘 되는 곳이 없어서 여기로 들어왔어. 아까도 말했지만, 나의 비밀 때문에 기림이가 많이 곤란한 상태라고 들었고, 또 너희들이 그만큼 믿을만한 친구라고 기림이가 말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도 내 비밀을 털어놓는 거야.”
‘비밀? 무슨 소리야?’
친구들 뒤 쪽에 앉아 세진이의 말을 듣던 기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진이에게 입모양으로 물었지만 세진이는 알 듯 말듯한 미소를 짓고 자신을 믿으라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말을 계속했다.
“아까 말한 대로 나는 신기가 있어. 흔히들 말하는 무당. 따지자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무당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아.”
윤후와 재원이는 떼를 쓰다 사고를 치고 벌을 받는 아이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세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무당?’
기림이가 또 기가 찬 듯 입 모양으로 물었지만 세진이는 가볍게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나는 가끔 내 주위에서 일어날 사고를 꿈에서 보곤 해. 그러다 우연찮게 기림이의 내일을 보고 친구가 됐어. 그 과정에서 기림이는 내 비밀에 대해 알게 된 거고. 뭐 가끔 오늘처럼 도와주는 날도 있었고.”
“그럼 오늘 사고가 날 예정이었고 너희가 그걸 막은 거란 말이야?”
재원이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응. 오늘 윤후 네가 크게 다칠 뻔했어.”
“아! 그래서 어젯밤부터 기림이가 계속 윤후를 찾은 거구나!”
재원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무슨 사고?”
윤후가 미안한 눈빛으로 기림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세진이에게 물었다.
“너는 오늘 조퇴해서 집에 갔다가 기림이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해서 학교가 끝날 시간쯤 다시 돌아왔어. 기림이에게 깜짝 파티를 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분식집 근처에 숨어있다 재원이가 기림이를 데리고 나오면 놀라게 해 준 다음 원래대로 PC방에서 너희들만의 생일 의례를 할 계획이었지.”
세진이의 말을 윤후와 재원이, 아니 기림이까지 놀란 눈으로 듣고 있었다.
“너 정말! 맞구나!”
재원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경이롭다는 듯 세진이에게 다가가 세진이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는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세진이는 살짝 웃으며 재원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 끝이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림에게로 향한다. 기림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세진이가 신기가 있다는 둥, 무당 이야기를 꺼낸 것까진 이해가 되고, 세진이가 생각해 낸 해결책이 저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윤후와 재원이가 준비한 자신도 몰랐던 생일 파티까지 어떻게 알 게 된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암튼, 그렇게 돌아와 분식집 건물 뒤에 숨어 친구들을 기다리는 윤후 머리 위로 벽돌이 떨어질 예정이었어.”
“벽돌이라고? 머리에?”
세진이의 말에 재원이가 놀란 듯 소리 지른다. 윤후도 깜짝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래서 많이 다쳐. 나는 어제 꿈에서 그걸 보고 기림이에게 말한 거고, 그래서 기림이는 하루 종일 윤후 뒤만 쫓은 거고. 뭐 그렇다고.”
거기까지 말한 세진이는 자리에 앉았다. 윤후와 재원이는 약간은 흥분되고, 또 약간은 알아서는 안 될 다른 이의 비밀을 알 게 된 것이 미안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앉았다. 네 아이는 각자의 음료를 마시며 숨을 골랐다. 책상이 네 개 놓인 작은 공부방 안에 잠시 떨리는 침묵이 맴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한참을 망설이던 윤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응.”
세진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제부터 그런 거야?”
“나?”
세진이가 되묻자 윤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세진이가 잠시 고민하는 듯 옅은 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내가 이 능력을 알아채기 전부터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 같아.”
거짓말 치고는 그런 능력을 가진 자의 고뇌를 너무도 잘 드러낸 듯한 연기력에 기림이는 놀랐다. 저런 연기력이면 친구들이 백 프로 믿을 거라 확신이 드는 한편, 세진이가 친구들을 속이는 것이 어쩔 수 없다 생각되면서도 죄책감이 마음을 콕콕 쑤셔댔다.
“힘들지 않았어?”
윤후가 다시 묻는다. 세진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눈이 살짝 촉촉해지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찾고는 살짝 웃었다.
“신선한 질문이네. 보통은 미래를 알아내려 한다던지 내 능력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은데.”
“물론 그런 것도 궁금해. 하지만 내가 니 입장이라면 남들과 다른 스스로가 분명 힘들 것 같아서.”
윤후의 말에 세진이의 눈빛이 따뜻해진다. 기림이는 그 눈빛에 왠지 맘에 걸렸다. 아니, 질투라는 감정이 분명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힘들다 생각한 적도 분명 있었어. 이게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시간도 걸렸고. 근데 이제 괜찮아. 적응된 것도 있고, 또 좋은 친구도 사귀었으니까.”
세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기림이를 봤다. 기림이는 세진이의 눈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럼 너는 매일 꿈을 꾸는 거야?”
재원이가 물었다.
“매일 꿈은 꾸는 것 같아. 하지만 그 꿈들을 모두 기억하진 못해. 내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사건이라면 잠에서 깨서도 그 장면들을 기억하는 거고. 간혹 내 주변, 혹은 아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은 막으려 애쓰고 있고, 그러다 기림이를 만났고, 기림이도 날 돕고 있는 거고.”
여기까지 말한 세진이는 의자를 밀어 윤후와 재원이에게 다가와 앉았다. 두 아이가 긴장해서 허리가 꼿꼿해지는 것을 뒤에 앉은 기림이는 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처음에 기림이에게 했던 부탁을 너희들에게도 해야 할 것 같아.”
윤후와 재원이는 무슨 말인지 듣기도 전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많이 곤란해질 것 같아.”
“응. 그럴게.” “당연하지.”
윤후와 재원이가 차례로 답한다.
“그 대답만으로는 너희를 믿을 수 없어.”
세진이의 말에 두 아이가 당황한다.
“그럼 어떡할까? 각서라도 써야 해?” 재원이의 말에 세진이가 빙긋 웃었다.
‘저 웃음이다. 저렇게 웃는데 남자아이들이 많이 반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기림이는 멍하니 세진이를 보고 있었다. 세진이의 웃음에서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상쾌하고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 윤후와 재원이도 뭔가에 홀린 듯 세진이를 보며 따라 웃고 있다.
“각서까지는 아니고 너희의 약속을 믿게 만드는 건 너희의 말이 아니라 너희의 신분이 될 거란 말이야.”
“신분?”
“응. 신분.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의 관계.”
여기까지 말한 세진이는 친구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 분명히 내 비밀의 일부를 너희에게 이야기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밝힐 수 없는 사실도 있지만 언젠가 너희에게 다 말할 거라고 약속할게.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진짜 친구가 되어 내 비밀을 함께 지켜줬으면 좋겠어. 이제 우리 친구 하자.”
“친구? 좋네.”
재원이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뻗은 세진이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윤후도 약간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세진이의 손을 잡아 가볍게 흔든다. 두 아이와 악수를 하고 난 세진은 기림이 앞에도 와서 악수를 청한다.
“나도?”
“응. 너도. 이 아이들한테 하는 말은 너한테도 해당이야. 게다가 우리 정식으로 이렇게 약속한 적은 없잖아.”
“아!”
기림이는 세진이의 손을 잡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친구들에게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미안했지만 밝힐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보다는 스스로를 신기가 있는 사람이라 말한 세진이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눈으로 물었다. 괜찮겠냐고. 세진이는 기림이가 눈으로 한 그 말을 읽은 것처럼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돌아서 세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그만 가 볼게. 너희는 원래 하던 대로 PC방에 가서 놀아.”
기림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진이를 이대로 보내기는 뭔가 아쉽고 싫었다.
그런데 재원이가 한 발 앞으로 가 세진이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그러고는 두 친구에게 뭔가 눈빛을 보낸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기림이와 윤후는 그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재원의 의견에 지지의 뜻을 보냈다.
“이제 우리 친구라며?”
재원의 말에 세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럼 너도 같이 가야지. 내 생일.”
기림이가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나 컴퓨터 게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세진이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가르쳐 줄게.”
윤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좋아!”
세진이는 3초도 고민하지 않고 밝게 답했다.
“혹시 편 먹고 하는 게임이면 나랑 편 먹는 사람 내 원망하기 없기다,”
세진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세진이는 재원이랑 편 먹으면 되겠다.”
“내가 왜?”
윤후의 말에 재원이가 투덜거린다.
“네가 우리 중에 게임을 제일 잘하잖아. 그러니 폭탄도 안고 가.”
기림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폭탄이라고?”
세진이가 눈을 흘긴다. 기림, 윤후, 재원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 나 생각보다 빨리 배우고 뭐든지 잘하거든!”
세진이가 기가 찬 듯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찰랑이게 툭 치며 말한다.
“눼, 눼 그러시겠죠.”
윤후가 약 올리듯 웃으며 대답했다. 오랫동안 세진이를 좋아한 것 치고는 너무나 편안한 윤후의 모습에 놀란 기림이와 재원이가 놀란 듯 서로를 마주 보고는 어깨를 으쓱한다.
“우와! 너 사람 킹 받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세진이가 발끈하고 분한 듯 발을 동동 구른다. 기림이는 처음 보는 세진이와 윤후의 모습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윤후와 재원이 몰래 세진이와 내일을 이야기할 때에는 뭔가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에 때론 막막함과 두려움도 있었는데 왠지 두 친구에게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천군만마를 얻는 기분이었다. 완전한 진실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윤후와 재원이에게 오해를 받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스터디카페에서 나와 PC방을 가는 길에 기림이는 세진이에게 살짝 물었다.
“윤후가 나 때문에 다시 돌아와 분식집 옆에 숨어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그거? 학교 마치고 나오다 재원이가 윤후랑 통화하는 거 들은 거야.”
“우와! 우리 진짜 운 좋았다. 그것 때문에 윤후랑 재원이가 우리말을 믿은 거잖아.”
기림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거 아니라도 믿었을 걸.”
세진이가 웃으며 말했다.
“설마! 이런 얘기가 쉽게 믿을 얘기는 아닌데.”
“내가 아까 말했지? 사람은 이야기를 믿는 게 아니라 신분, 관계를 믿는 거라고. 아무리 믿을 수 없는 말을 해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면 믿게 되는 거야. 너는 여태까지 니 친구들에게 그만큼의 신뢰를 쌓아온 거고.”
세진이는 웃으며 기림이의 어깨를 대견하다는 듯 툭 쳤다.
“윤후는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나를 못 믿고 피했는데?”
기림이가 씁쓸한 듯 말했다.
“결국 돌아왔잖아. 너도 좋은 아이지만 네 친구들도 참 좋은 아이야.”
“맞아. 윤후, 재원이 다 좋은 친구들이지.”
“좋겠다. 저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세진이의 한숨에 기림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너도 있잖아. 좋은 친구. 예영인가? 그 아이랑 친해 보이던데...”
“아! 예영이. 예영이도 진짜 좋은 친구 맞지.”
세진이는 피식 웃었다. 기림이는 세진이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있잖아, 미래폰의 비밀. 우린 아무에게도 그 비밀을 말할 수 없잖아.”
“그렇지.” 기림이가 맞장구쳤다.
“그래서 오늘 나는 신기가 있다고 윤후와 재원이를 속인 거고. 많이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 근데 내가 만약 윤후와 재원이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예영이에게 내 비밀을 납득시키려고 하잖아. 신기가 있다던지, 무당의 능력이라던지.”
“응.”
“그럼 예영이는 머리가 엄청 아플 거야. 그리고는 나와의 관계를 끊을 거라고 확신해.”
“왜? 좋은 친구라며?” 기림이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자 세진이는 픽 웃더니 대답했다.
“예영이 교회 다녀. 독실한 크리스천이야. 모태신앙.”
세진이의 답에 기림이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은 종교가 없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불교? 양가 할머니들께서 열심히 절에 다니시니까. 그런데 이게 종교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기림이는 어쩌면 세진이의 쾌활함 속 외로워 보이는 눈빛이 스스로 만든 굴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지금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조심스러워 입을 다물지만 언젠가는 세진이에게 잘 얘기해주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기림이가 잠시 고민하던 사이에 넷은 어느새 PC방에 도착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열한 시에, 기림이는 내일의 세진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즐거웠지 오늘?”
“응. 정말로.”
“난 좀 아쉬워.”
세진이가 한숨을 폭 내쉰다.
“뭐가?”
“신나는 마음에 전화를 해도 그건 어제의 너니까 오늘 일어난 일을 모르잖아. 그때그때 전하고 싶은 내 기분이나 감정이 있는 건데 네가 이해하려면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 거니 좀 답답해.”
“그렇겠구나.”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기림이는 세진이의 말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가 어제의 만남으로 정리한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세진이의 목소리가 다시 밝아진다.
“우리 둘이 고민할 일을 함께 의논할 조력자들이 생겨서 정말 기뻐.”
“조력자들?”
“응. 조력자.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둘이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해야 하나 생각하고 많이 답답했는데 이렇게 조력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줄은 나도 몰랐어. 진작에 좀 그럴걸.”
“그 아이들이 그걸 원할까?”
“아! 아직이겠구나.”
“뭐가?”
“조금 기다려 봐. 오늘은 별 일이 없으니까 나는 이만 보고를 끝낼게.”
“벌써?”
아쉬운 마음에 기림이는 자신도 모르게 세진이를 잡았다. 세진이가 웃는 느낌이 전화기 반대편에서 전해진다.
“걱정 마. 우리 금방 만날 거니까.”
거기까지 말하고 세진이는 전화를 끊었다.
‘금방 만난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가만히 생각하는데 기림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재원이다.
“모두들 잘 들어갔어? ”
재원이가 세진이까지 함께 하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윤후도, 세진이도 잘 들어갔다는 뜻의 이모티콘을 올렸다. 기림이도 ‘응’하고 짧게 답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기림이는 재원이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재원이의 톡을 기다렸다. 아마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마 윤후 너도 그럴 거 같아서 말인데...”
재원이는 빠른 속도로 연이어 톡을 올렸다.
“일단 아무것도 모른 체 기림이를 오해하고, 세진이를 난처하게 한 건 정말 미안해.”
“응. 많이 곤란했어. ㅎㅎ”
세진이가 대답한다. 약간은 뼈도 있고 장난스러운 대답에 역시 세진이구나 기림이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간혹 너희 힘에 벅찬,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이야기해 줄래? 우리가 열심히 도울게.”
늘 가벼운 듯 보이는 장난스러운 재원이가 오늘은 꽤 진지하다.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윤후의 글도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그래 이런 녀석들이었다.’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온다. 이런 친구들을 속이는 게 마음 편하지만은 않다. 그런 기림이의 마음이라도 읽은 양 세진이의 톡이 올라왔다.
“얘들아, 너희들의 말은 정말 고마워. 나도 너희들이 함께 한다면 정말 든든할 것 같아. 근데 나한테는 너희 모두에게 말 못 한 비밀이 더 있어. 언젠가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영원히 말 못 할지도 몰라.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이런데도 날 믿고 함께 할 수 있을까?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비록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 못한 무언가 더 있다 해도 그게 절대로 너희를 다치게 하거나 위험하게 할 일은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너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낼 거고.”
세진이의 말은 기림이의 마음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기림이는 세진이가 고마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면 됐어. 오늘 세진이 너에 대해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억지를 쓴 거 같아 많이 미안했어.”
윤후가 답했다.
“뜻밖의 수확,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점에서 그 억지가 꼭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재원이도 거든다.
“나는 말이야...”
기림이가 톡을 올리기 시작했다.
“너희한테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참 많이 미안했어. 그런데 너희가 이렇게 이해해 주고 먼저 함께 해 주겠다고 말하니 너무 고마워.”
진심이었다. 아직 못다 한 말들은 세진이가 대신해줬고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덮어준다는 친구들의 뜻을 안 이상 기림이는 더 이상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떠안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해 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나도 너희에게 힘든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할게.”
기림이는 그렇게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너무나도 짧은 여름방학을 맞이할 때까지 그들의 주변에도 문현시에도 커다란 사건은 생기지 않았다. 세진이는 종종 11시의 보고 전화를 거르기도 했다.
“우리도 우리의 일상이 있고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위해 성실한 오늘의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기림이가 조금 서운한 기색을 내 비치면 세진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윤후과 재원이는 처음에는 자신들에게 어떤 미션이 주어지길 무척이나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상태로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당연해졌고 세진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밤 열한 시, 미래폰이 울렸다. 기림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편안하게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기림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세진이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기림이는 그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이 생겼구나!’
본능적으로 직감하며 노트를 꺼내 메모할 준비를 했다.
“내일 오후 5시 43분경 명현병원 큰길 앞에서 사망 사고가 있어. 사망자가 두 명인데 그중 한 명은 임산부야. 나머지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건널목에 서 있던 장애인이고.”
“교통사고?”
“응. 교통사고. 음주운전은 아니고 마약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대.”
“뭐? 마약?”
기림이는 마약이라는 말에 소름이 끼친다. TV에서 종종 마약과 관련된 연예인이나 사건 뉴스를 보기는 했지만 마약에 취한 한 운전자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 것이고 자신들이 그것을 막아야 한다니 뭔가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약이 이렇게나 가까이 자신들 주변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임산부와 장애인이라니 꼭 구해야겠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어 쉬고 기림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그 임산부 재원이 어머니의 동생, 그러니까 재원이 이모야.”
세진이의 목소리는 차라리 아까보다 차분해진다.
“뭐라고?”
기림이의 목소리가 깜짝 놀라 커진다.
“그래서 말인데, 이거 재원이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세진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알려야 할 것 같아. 모르는 우리보다야 조카인 재원이가 가야 자연스럽게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겠어?”
“그건 그래,”
기림이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아는 사람을 위험에서 구조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것은 너무나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었다. 지난번 윤후의 사고 때도 그랬지만 기림이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내가 걱정인 건 재원이가 미리 알고 너무 놀라서 긴장을 한다던가 아니면 너무 과한 행동으로 도로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거야.”
세진이의 말애 기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 걱정이 뭔지 잘 알겠어. 근데 생각보다 재원이가 그렇게 가벼운 녀석은 아니야. 내일 우리가 잘 설명해 보자.”
“그래. 내일의 나를 잘 부탁해.”
세진이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기림이는 미래폰을 서랍에 넣어두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다시 세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림아!”
세진이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세진아, 통화 괜찮아?”
“응. 너 방금 나랑 통화한 거야?”
세진이가 묻는다.
“응. 그래서 마저 의논하려고.”
세진이의 긴 한숨이 핸드폰을 통해 전해진다.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구나.”
“응. 내일 우리 동네 명현 병원 앞 큰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난대.”
“그래? 피해자가 누군데?”
“한 명은 건널목에 서 있던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래.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재원이 이모구, 지금 임신 중이신 것 같아.”
“뭐라고?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지.”
“응.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하기 전에 너한테 먼저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걔들은 이런 사실을 네가 모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니까.”
“그래. 맞아. 그럼 내가 윤후랑 재원이에게 말해야 하겠네. 사고 시간과 장소 다시 한번 정확하게 말해줄래?”
기림이는 세진이에게 내일의 세진이가 말한 모든 것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세진이는 몇 번이나 확인하며 정보를 확인했다.
“근데 기림아.”
“응. 얘기해.”
“내 생각엔 일단 윤후랑 재원이, 특히 재원이한테는 내일 오후에 만날 약속만 해 두고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미리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재원이가 먼저 알아야 되는 일 같은데...”
“너 윤후 사건 때 그 밤을 기억하니?” 세진이의 질문에 기림이는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그 밤 기림이는 한순간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옥 같은 그 밤을 재원이도 겪게 할 순 없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일단 아이들하고 내일 오후 네 시쯤 약속을 잡아놓자.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만 말해주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세진이의 말에 대답하며 기림이는 다시 한번 세진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겪은 일까지 저렇게 짐작해 다 품어내는 세진이가 정말로 어른 같고, 자신은 어쩌면 세진이 말대로 한참 어린 아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좀 더 세진이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존재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딩동
카톡이 울린다. 세진이가 단톡에 내일 오후 네 시에 만나자는 글을 올렸다. 재원이는 빼먹기 힘든 학원 수업이 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혹시 우리의 첫 번째 미션이 생긴 거냐고 물었는다.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그런 재원이의 모습을 보며 기림이는 사고를 미리 알거나 막을 능력을 가진 TV나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 역시도 사고를 겪는다는 건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인 것만큼 몸서리치게 싫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저리 설레는 꿈을 꾸는 재원이도 자신의 이모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이 상황이 지옥으로 변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기림이는 그렇게 재원이 대신, 재원이의 몫까지 번뇌로 가득한 하룻밤을 보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에 재원이가 받을 충격이 그대로 더해져 마음이 불편했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세진이가 무언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하는 자신의 무능함이 힘들었다. 그렇게 기림이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네 시까지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여기야!”
기림이가 패스트푸드 가게에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재원이가 손을 흔든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이야. 우리가 빨리 온 거야.”
재원이의 대답에 기림이는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봤다. 3시 45분이었다.
“너는 언제부터 와서 기다린 거야?”
“나? 궁금해서 견딜 수 있어야지. 난 3시쯤 집에서 나와서 여기 오니까 3시 20분쯤 된 거 같아.”
“그랬구나.”
잔뜩 흥분한 얼굴로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재원이의 표정을 보자 기림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하염없이 바깥쪽만 보고 있는데 세진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이어 윤후의 모습도 보인다.
“어이, 무슨 일이야. 다들 빨리 왔네.”
재원이가 웃으며 친구들을 반긴다. 윤후가 살짝 웃으며 자리에 앉고 세진이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 앉았다.
음료를 하나씩 골라 시킨 다음, 세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들 놀라지 말고 들어. 오늘 우리가 구할 사람은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
윤후가 놀라 물었다.
“응. 오늘 5시 43분경 명현 병원 앞에서 사고가 나.”
“명현 병원?”
무언가 안다는 듯한 재원이의 목소리가 낮고 어두워진다.
“진정해. 우린 그 사고를 알고 있고 막을 수 있어.”
세진이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재원이는 한숨을 쉬더니 입술을 꼭 깨물었다.
“무슨 사고가 난다는 거야? 누구한테?”
둘의 눈치를 살피던 윤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 사고 우리 이모 같아. 명현 병원 산부인과에 다니거든. 오늘 병원 예약 잡혀있다고 엄마랑 통화하는 거 들었어.”
재원이의 말에 윤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어떻게 막으면 좋을 것 같아? 너는 무슨 계획이 있어?”
기림이가 세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나도 별 계획은 없어. 그냥 그 앞에서 기다리다가 재원이 이모님을 만나면 병원 안 쪽으로 모시고 들어가는 거지.”
세진이가 조심히 말한다.
“그때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윤후가 물었다.
“그럼 너는 어제 이 약속을 잡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갑자기 재원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아마 이모 일거라 다들 생각했다.
“소용없어. 아마 안 받으시거나, 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실 거야.”
세진이의 말에 멈칫하면서도 재원이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이모가 전화를 받기를 계속 기다렸다.
“그런 것도 미리 아는 거야?”
윤후가 물었다.
“아니, 내 경험에 의하면 사고를 겪을 사람은 어떻게든 그 장소에 다시 나타나더라고. 그때 윤후 너도 그랬잖아.”
“맞아. 나도 그랬어.”
세진이의 말에 윤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재원이는 그제야 통화를 종료하고 핸드폰을 넣었다.
“미안해. 나는 미리 나에게 왜 알려주지 않았는지, 그랬다면 이모가 아예 오늘 병원에 오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생각하며 잠시 널 원망했어.”
재원이의 말에 세진이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쁜 사고는 아예 보지도 않고 피해자가 이 근처에 오지도 않은 채 내가 잘 막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뭐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로 액땜이라고 해도 되고, 운명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사고를 겪을 사람은 어쨌든 그 자리에 꼭 나타나게 되더란 말이지. 그래서 너에게 미리 알려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가 여기서 막으면 되니까.”
“그래, 뭔가 이유가 있겠지.”
기림이는 그렇게 말하며 재원이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자신 역시 세진이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항상 자신보다 멀리 내다보고 넓게 생각하는 세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윤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 명현 병원 앞 사거리에서 사고가 난다고 했으니까 재원이 너는 윤후랑 함께 병원 앞에 서 있다가 자연스럽게 이모님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서 도로 가까이에 나오시지 않도록 시간을 끌어. 사고 시간이 5시 43분이라고 했으니까 넉넉잡아 45분까지만 버티면 될 거 같은데.”
세진이의 말에 윤후와 재원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는?”
“너는 나랑 같이 가자. 이왕 나온 거 그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구해야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지도 모르고.”
“다른 피해자도 생길 수 있다고?”
기림이가 세진이에게 물었다.
“아니, 꼭 생긴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정신없이 돌진하는 차라면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막아보자는 말인 거고.”
“돌진하는 차 근처에 있는 일이라면 세진이 너보다야 힘도 세고 운동신경도 좋은 내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나 배려해 주는 건 정말 고마워. 근데 순간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것 같아. 잘못하면 마음에 엄청난 짐이 생길 수도 있거든.”
세진이의 말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처음 겪는 일이기도 했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항상 답을 찾아내는 건 세진이었기 때문이다. 기림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4시 45분이었다.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네. 5 시 20분쯤 나갈까?”
기림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결의에 찬 표정이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함을 떨쳐 낼 수는 없었다. 넷은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우린 여기쯤 서서 기다리자.”
윤후, 재원이와 명현병원 앞에서 간단하게 서로 할 일을 다시 확인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10m쯤 더 지난 건널목 앞에서 세진이는 걸음을 멈췄다.
“그래, 아무래도 여기가 사람들이 많이 서 있는 곳이긴 하니까.”
건널목에 서서 맞은편 건물에 걸려 있는 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6분이다.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기림이는 세진이처럼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호가 바뀌면 길을 건널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안전하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기림이의 눈이 잠시 멈춘다. 아까 자신이 지나온 명현 명원 쪽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여자 한 명이 이 쪽 건널목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세진이를 바라보니 세진이 역시 전동 휠체어를 발견한 듯 눈이 기림이를 향해 있다.
“기림아! 우리 저 사람.”
세진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기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동 휠체어 쪽을 향해 세진이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죄송한데요.”
세진이는 전동 휠체어에 앉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나이에 차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무슨 일이죠? 제가 약속이 있어서 좀 바빠서요.”
여자는 살짝 놀라면서도 건널목 쪽으로 휠체어가 진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기림이와 세진이는 불안해하면서도 여자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제가 아까부터 봤는데 휠체어 바퀴에 뭐가 끼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요? 난 못 느끼겠던데.”
세진이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가족 중에 전동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있어서요. 이 상태로 오래 가면 나중에 아예 안 움직일 수도 있더라고요.”
“아! 그래요?”
가족 중 자신과 같은 처지가 있다는 말에 여자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여자는 자리에 앉은 채 자신의 휠체어 바퀴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뒤 쪽에 있어요.”
기림이가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 저를 붙들고 일어서 주시겠어요? 그럼 제 친구가 휠체어를 들어 바퀴 안에 딸려 들어간 걸 빼 드릴 텐데.”
세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기림이에게 눈을 찡긋 한다.
“네. 네. 제가 빼 드릴게요.”
기림이는 얼른 전동 휠체어 뒤쪽으로 다가선다.
“제가 서 있는 것도 잘 못해서요.”
난처한 여자의 말에 세진이는 휠체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등을 내밀었다.
“이렇게까지.”
“괜찮아요. 저도 제 가족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빙긋 웃는 세진이의 말에 여자가 한숨을 한 번 내 쉬더니 세진이의 등에 업혔다.
“무겁죠?”
“아뇨. 하나도 무거워요.”
세진이의 답이 끝나기도 전에 도로 저쪽 편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기림이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림아! 휠체어의 운명!”
잠시 멍하게 서 있던 기림이는 세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휠체어는 오늘 자동차에 부딪힐 운명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기림이는 휠체어를 밀어 건널목 바로 앞까지 나아갔다. 세진이는 당황해하는 여자를 업은 채 편의점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젠 내가 해야 해.’
기림이는 휠체어 손잡이를 꼭 잡은 채 건널목을 향해 달려오는 까만 승용차를 보았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휠체어의 레버를 전진 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승용차를 향해 휠체어를 던지듯 밀어버렸다.
끼익
승용차는 휠체어와 부딪힌 뒤 왼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제법 무게가 있던 휠체어는 폭주하는 차와 강하게 부딪힌 뒤 고철 덩어리가 되어 도로 한 구석에 날아가 꽂혔다.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리며 자동차가 반대편 가드레일을 박아 연기가 가득한 채 멈춘 모습을 보며 기림이는 이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세진이가 옆에 와 서서 자신의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너는 정말 잘했어. 이건 니 책임이 아니야.”
세진이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세진이가 잡은 손의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주변은 꿈결처럼 멍하게 느껴졌지만 도로 반대편, 사고 차량이 서 있는 저쪽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와 비명 소리는 너무도 생생히 들렸다.
“이 사람 죽은 거 아니야?”
“이 차가 갑자기 들어와서 사람을 치었어.”
“119 불러요. 누구라도!”
맞은편에서 웅성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기림이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윤후, 재원이까지 기림의 옆에 와 있었다. 바로 앞 앰뷸런스 소리가 꿈결같이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