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기림이는 학교에서 가급적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가다 세진이와 부딪힐 상황이 두려웠다. 세진이를 다 이해한다, 용서한다 말할 자신도 없었고, 다시 싸울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어쩌면 자신을 차갑게 대할 세진이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 모르겠다.”
기림이는 그렇게 한숨 섞인 말을 내뱉고는 책상에 계속 엎드려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윤후와 재원이가 찾아왔다.
“너 어디 아파?”
“아니.”
기림이는 친구들의 물음에 힘없이 대답했다.
“너 세진이랑 싸웠어?”
“뭐?”
재원이의 질문에 기림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 이상하잖아. 세진이도 아까 저기서...”
재원이의 말을 윤후가 눈짓으로 끊어버린다.
“왜? 세진이가 너희한테 뭐라고 그래?”
기림이가 눈을 반짝인다.
“아니, 별 말은 없었지만, 너희 많이 이상해.”
윤후가 말했다. 기림이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일단 조금 차분하게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지금 여기는 곤란하니까 우리 마치고 좀 보자.”
윤후의 말에 기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친구들이 돌아가자 기림이는 고민에 빠졌다. 세진이와의 문제를 친구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친구들은 분명 서운해하거나 화를 낼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학교가 끝나는 대로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기림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해서 친구들을 속일 수는 없어. 말할 수 없다고 차라리 이해해 달라고 부탁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한 머리 속도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림이는 친구들과의 일도, 세진이와의 일도 자신에게는 조금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의 일과가 끝나고 교문 앞으로 나가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세진이는 오늘 조퇴했나 보더라.”
재원이의 말에 기림이가 움찔했다. 원망은 했지만, 세진이 역시 마음 편하게 있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기림이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그래서 배려하는 듯 두 친구는 스터디 카페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덜컹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오늘따라 무겁다. 세 아이는 아무 말없이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기림이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너희는 세진이를 만났어? 세진이가 뭐라고 한 거야?”
“만나기는 했지만 특별한 말은 없었어.”
“그냥 미안하다고 자기한테 시간을 조금 달라는 말을 했어.”
윤후와 재원이가 차례대로 답했다. 기림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야?”
윤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안해. 얘들아, 지금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세진이가 몇 가지 부분에서 우리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나는 우연히 그걸 알게 돼서 세진이랑 크게 다퉜다는 거야.”
“별 것도 아니네.”
기림이의 말에 재원이가 가볍게 대답했다. 기림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를 속였는데 그게 별 게 아니라고?”
재원이는 놀란 눈으로 기림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말했다.
“세진이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했어.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한 건 자신이 가진 비밀의 일부라고. 말 못 한 비밀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우리가 친구가 된 이상 우리를 지킬 거라고. 혹시 세진이가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었어?”
재원이의 말에 기림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된 거 아니야? 세진이의 미래를 보는 능력은 우리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한 거고, 그런 능력을 가진 만큼 나름대로 고충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게다가 세진이는 이미 말하기 힘들거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속였다고 비난하기에 나는 세진이에게 이미 많은 빚을 졌어.”
재원이의 말에 기림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윤후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고,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는지 몰라도 지금 너 역시 우리에게 알게 된 사실을 쉽게 말할 수 없잖아. 사실 지금 이 상황에서 세진이를 가장 이해하고 그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건 너 아니야? 재원이 말 대로 세진이는 충분히 양해를 구했고.”
“그건 너희들한테 말한 거지 나에게는.”
여기까지 말하다 기림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진이는 분명 그 말은 기림이에게도 해당된다며 따로 악수를 청했었고 기림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세진이의 손을 잡았었다.
“맞아, 그 말은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분명히 말했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기림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세진이의 설명도, 말 못 할 이야기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는다며 비난만 한 자신의 옹졸함이 부끄럽고 싫었다.
“하나만 더 물어볼게.”
윤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진이가 속였다는 게 우리를 나쁘게 이용한 거였어?”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기림이가 황급히 대답했다.
“혹 세진이가 속인 게 자신에 관한 거야?”
“응. 따지고 보면...”
기림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후는 기림이의 등을 제법 세게 때렸다.
“아야!”
기림이가 눈물이 글썽한 채 윤후를 쳐다봤다. 당황했지만 윤후에게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세진이는 네가 이렇게 옹졸한 놈인지 미리 다 알았던 거네. 그래서 다짐도 받았던 거고. 그런데 너는, 너는”
윤후의 말을 기림이가 이어 답했다.
“그 애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머리 나쁘고 속이 좁은 놈이었던 거지.”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면서 기림이는 몇 차례나 자신의 핸드폰을 넣었다 꺼냈다 반복했다. 사과를 하고 싶었고, 세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 전화를 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집에 가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세진이와 이야기하자.’
기림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해 씻고, 자리에 앉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핸드폰을 들어 세진이의 번호 끝자리를 누르는데 어디선가 진동소리가 울렸다.
우웅
순간 멈칫해 있던 기림이가 책상서랍을 열었다. 미래폰이 울리는 것을 확인한 기림이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퍼져나갔다.
‘세진이다. 이렇게 전화한 것을 보면 우린 내일 무사히 화해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기림이는 안심하며 서둘러 미래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세진아!”
“흐흐흑”
이상하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훌쩍이는 소리만 불안하게 귓가에 멈춰 닿는다.
“여보세요? 세진아! 무슨 일이야?”
“흑흑. 기림아. 너 맞아?”
울음에 젖어 명확하지 않은 발음의 세진이가 겨우 기림이를 부른다.
“응. 나 기림이야.”
기림이의 대답에 저 편에서는 더 큰 울음이 터졌다. 기림이는 영문을 모른 체 한동안 그 울음을 듣고 있었다.
“세진아! 왜? 무슨 일 있어?”
기림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나는, 나는 흑흑. 혹시 니가 전화를 안 받으면 흑흑 어쩌나 흑흑.”
세진이의 말이 우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아 기림이는 핸드폰을 다시 귀에 고쳐 댔다.
“내가 왜 니 전화를 안 받아? 울지 마.”
이렇게 말하는 기림이의 귀에 세진이의 말이 들어와 꽂힌다.
“너 오늘 죽었거든. 흑흑 나는 그래서 네가..”
기림이의 모든 생각이 멈춘다.
“내가 왜?”
기림이의 질문에 전화기 저 쪽 편에서 울음을 진정시키고 목을 가다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차분하지만 아직도 울먹이며 조금은 떨리는 세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림아. 일단 니 목소리 들었으니까 됐어. 상황을 잘 설명하고 너한테 이 일을 해결하라고 하기엔 네가 엮인 일이라 너무 불안해. 시간이 없으니까 결론만 말할게.”
“응. 얘기해.”
대답은 했지만 기림이의 목소리는 불안한 듯 떨렸다. 세진이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내일 가급적이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학교에 나오지 마. 그게 가장 최선이고, 그게 아니라도 나를 만나러 나오게 될지도 몰라. 이게 너의 운명이라면,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근처에 오지 마.”
“니 근처에 가지 말라고?”
기림이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핸드폰이 곧 꺼질 듯 알람 소리가 울렸다.
“응 너는 나를 보게 되더라도 피해야 해. 나는 무조건 괜찮을 거니까 나를 구하려 들지 마. 너 나를 구하려다 학교에서 죽었어.”
“너를 구하다 내가 죽었다고?”
“응. 그러니까 절대 너는 내 근처에 오지 마. 제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피해”
세진이의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겨 버렸다. 그 사람을 피하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기림이는 한동안 멍하게 핸드폰을 든 채 서 있었다. 내일 자신에게, 또 세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지 너무나 궁금하고 두려웠다. 자신이 세진이를 구하려다 죽는다는 내일의 일이 너무나 궁금하고 두려웠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내일 나는 세진이를 구한다고 했어. 그 말은 내일 세진이가 위험해진다는 얘긴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기림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와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세진이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속에서 울리는 통화 연결음이 오늘따라 퉁명스럽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반대편에서 약간은 쌀쌀맞은 세진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림이는 핸드폰을 더 똑바로 귀 가까이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세진이니?”
“응.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반가운 듯하면서도 퉁명스러운 말투의 세진이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고 기림이는 생각했다.
“내가 너한테 너무 심하게 군 것 같아서...”
기림이는 아까부터 생각했던 사과의 말부터 꺼냈다. 당황한 건지 화가 난 건지 모를 핸드폰 너머의 세진이는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세진아?”
기림이가 다시 묻자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세진이 너 울어?”
“...”
“미안해.”
“... 나는... 네가 나한테...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울먹이는 세진이의 목소리에 기림이는 더 많이 미안해졌다.
“네가 나한테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재원이나 윤후한테 그런 것처럼. 그런데 돌콩의 이야기만 듣고 너를 오해하고 원망했어.”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나도 니 오해를 풀고 싶어서 이리저리 애쓰고 싶었어. 그런데 내 상황을 전부 이야기하려면 나도 허가가 필요해서.”
“허가?”
세진이의 말을 듣던 기림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아직까진 너에게 다 말할 수 없지만 조금 기다려 봐.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기다려도 끝끝내 말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게.”
기림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답했다. 많이 궁금하긴 했지만 세진이 역시 자신의 비밀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큰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여태까지의 일이 더 미안하게 느껴졌다.
“고마워. 그리고 이렇게 먼저 전화 줘서 진짜...”
세진이가 여기까지 말하고 머뭇거리는데 기림이가 말을 끊었다.
“사실 먼저 전화한 건 너야.”
“내가 먼저 전화했다고?”
“응.”
기림이의 대답에 세진이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반가운 듯 외쳤다.
“미래폰이구나.”
“응.”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 대신 너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니,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기림이 네가 아니라 나 자신이네.”
이제 맘이 좀 풀린 건지 세진이가 해맑게 대답한다. 기림이는 이렇게 밝은 세진이의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용건을 말해야 할 때다.
“세진아! 실은, 내일 어떤 사고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네가 나한테 전화한 거고.”
“사고? 무슨? 아는 사람이야?”
세진이의 목소리가 다시 급박해진다.
“응. 아는 사람.”
“누구?”
“나래.”
기림이의 대답을 들은 세진이는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세진아?”
기림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한 세진이의 단호한 말투가 전화기를 통해 넘어온다.
“몇 시에? 왜? 어쩌다?”
“네가 너무 울면서 말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시간이 없었어. 중요한 건 네가 내일 큰 위험에 빠지고 나도 거기에 휘말리는 것 같았어. 내일의 너는 나에게 등교하지 말라고 했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등교를 하지 않더라도 너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건 똑같잖아.”
“그래. 그건 그렇겠지.”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위험에 빠지는 것이 분명한 네가 학교를 가지 않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응. 분명 내일의 너는 위험에 빠지고 나는 널 구하다가 죽는다고 했거든.”
“네가 죽는다고?”
세진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커져 울린다.
“응. 그렇대.”
“날 구하다가?”
“응.”
“그런데 너 아무렇지도 않아? 왜 차분한 거야?”
세진이가 당황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당사자인 내가 미리 알고 있으니까.”
“미리 알아서 괜찮다는 말이야?”
“세진아, 나는 그동안 아는 사람들의 사고를 미리 알고 준비하면서 많이 불안했었어. 하지만 그 일들을 해결하면서 많이 단단해졌고.”
“그랬지.”
“이번 사고는 나의 일이잖아. 미리 알고 있으니 내가 조심하는 게 다른 사람을 컨트롤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져.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만약 이 사고가 우연에 의한 그냥 사고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오늘 일어나지 않은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일 거고.”
“그게 무슨 말이야? 우연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고? ”
세진이의 물음에 기림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을 피하라고 했어. 그건 누군가 너를 노린다는 말이야.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서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불안한 일을 막아야겠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내일 내가 학교를 가지 않으면 누가 날 노리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세진이의 말에 기림이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이 옳다, 세진이가 등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세진이를 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일은 세진이가 등교하는 모레에 일어날 수도, 그 다음날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전화기 저 편의 세진이가 입을 열었다.
“그냥 있잖아.”
“응.”
서둘러 대답하며 기림이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세진이의 생각만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일 내가 학교를 갈게.”
“학교를 나온다고?”
기림이가 놀라 외친다.
“응. 나 학교를 나가볼까 해. 분명 내일의 나는 너에게만 학교를 나오지 말라고 했지? 그렇다면 너의 죽음이 위험한 거지, 내일의 나는 스스로를 구할 무슨 방법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한 가지 더는 그 위험한 사람 때문에 계속 불안한 내일을 살 순 없어. 지금 정확한 건 내일 나에게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거고, 그게 내일이라는 걸 분명히 아는 나는 다른 날보다 더 준비할 수 있을 거고 말이야. 그러니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라면 내가 알 수 있는 내일이 훨씬 낫지 않을까?”
기림이는 세진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내일이 불안했다. 그 불안 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세진이가 대단하다 생각하면서도 무모하다 싶었다.
“일단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는 존재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그러려면 내일 나는 반듯이 학교에 가야 해.”
“그럼 나도 갈 거야.”
세진이의 단호한 결정에 기림이도 마음을 굳게 먹고 대답했다.
“너는 그냥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내일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너를 돕고 싶어. 그리고 나 역시 내 생명이 위험한 걸 아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테니 나를 좀 믿어주면 안 될까?”
기림이의 말에 세진이는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기림이는 그런 세진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래. 그러자.”
드디어 세진이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림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진이는 단호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전에 너에게 꼭 약속받을 일이 있어.”
“응. 뭐든지 말해.”
“내일, 절대로 내 근처에 오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
“그건...”
“내 말을 들어야 해. 너 내일 죽을지도 몰라.”
머뭇거리는 기림이의 대답에 세진이가 다그쳤다.
“일단 알았어. 최대한 니 근처에 안 갈게.”
“최대한이 아니라 무조건이야.”
“그래. 멀리서 지켜만 볼게.”
기림이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리고 하나 더는 수업 시간 말고는 가능하면 재원이 윤후와 같이 다녀. 절대 혼자 다니지 마.”
“그 녀석들이랑?”
“그래. 간단하게 상황설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 아이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널 혼자 두진 않을 거니까.”
“알았어.”
기림이의 대답에 힘이 실린다. 세진이의 말이 맞았다. 재원이, 윤후라면 절대 죽을지 모르는 자신을 혼자 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어깨 쪽이 든든해져 온다.
“너는? 너는 혼자 있어도 괜찮아?”
기림이의 말에 세진이가 대답했다.
“난 혼자가 아니야. 괜찮아.”
내일의 전쟁을 무사히, 잘 치르기 위해 불안하고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누운 기림이의 귀에 세진이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았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무서운 사고들을 해결하는 세진이의 뒤에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고, 또 오늘 통화에서도 누군가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래폰을 줍게 되면서 알았고, 세진이를 알게 되면서는 두려워졌다.
‘세진이가 더 갖고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내일 일어날 일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알고 있는 돌콩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고민하던 기림이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세진이의 존재를 밝힐 수 없었고, 돌콩 또한 내일의 용의자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