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 12장

by 임효진

둘은 그러고도 한참을 방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못다한 이야기들은 차고도 넘쳤다. 그 동안에 서로에게 일어난 일들은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지만, 또 그런 대화들은 서로의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다시 만나던 날, 장희가 울고 있었던 이유가 그의 패물 때문이라는 것을 안 도운은 입술을 꽉 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입었다.

“나가자.”

“어딜?”

“내 신부에게 다시 패물을 돌려 줘야지.”

“신부?, 그런 말 하지 말어.”

장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왜 예전에 내가 어릴 적에 개울가서 놀다가 어떤 남자아이가 던진 돌에 정강이를 맞아서 피까지 흘리면서 집에 간 적이 있잖여.”

“그랬었나?”

“그 때 마침 우리 오라버니랑 오라버니가 같이 있다가 ‘그 자식이 누구냐’고 화를 내며 피를 질질 흘리는 나를 그대로 돌려 세워서 그 아이 집까지 따지러 갔었잖어.”

“아, 기억난다. 그랬었지.”

“나는 그 때 오라버니 둘이서 어찌나 화를 내는지 그 아이 그 날 맞아 죽는지 알았당께.”

“그랬었어?”

“그렇게 화를 내고 가 놓고서는 막상 그 집에 가서는 그 아이헌티 어찌나 친절하게 타이르는지 무슨 부처님 납신 줄 알았네. 내가 그 때 뒤에서 ‘두 등신들’이라고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오라버니들은 모를 것이네.”

“등신이 된 줄은 몰랐지.”

“그래도 나는 좋았어.”

“등신 오라버니가?”

“보호자가 둘이나 되는 것 같고, 어찌나 든든하던지.”

“장희야.”

도운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응, 오라버니.”

“나는 지금도 니 보호자야. 채훈이, 채현이도 이제부터는 내가 보호자가 되는 거야.”

“미안혀...”

“뭐가 미안해? 이제부터 나는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너를, 그리고 니 아이들을 그 집에서 빼 올거야. 그리고 우리 원래 생각했던 그런 가족이 되자. 니가 내 손을 잡았으니 나는 이제 못할 것이 없어.”

“응.”

“우리 그런 의미에서 반지부터 찾으러 가 볼까?”

도운이 장희에게 팔짱을 끼라는 듯 팔을 굽혀 내밀었다.

“못 찾아.”

“왜 못 찾아?”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이 반지 밖에 못 찾았어.”

장희가 목에서 실 사이에 끼워진 반지를 꺼내 보여준다.

“반지가 거기서 나오네. 그 때 손가락에 잘 끼고 있더니...”

“그 때는 진짜 잠시 끼운 거여. 오라버니한테 들켜서 바로 빼 버렸고.”

“그 때 반지 덕분에 나는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데. 어쨌든 나머지 물건도 찾으러 가자. 나 생각보다 돈 많어.”

“오라버니 집도 전쟁 나고 엉망이 됐는디 돈이 어딨대?”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재산은 작은 댁에서 다 챙겨서 관리하셨더라고. 도현이도 함께.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 그리고 나는 그동안 군인이었어. 꼬박꼬박 모아 둔 월급도 있고.”

도운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운은 그대로 장희를 앞세우고 나가서 전당포에서 장희의 패물들을 모두 되찾아 주었다. 장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오빠들의 보호를 받는 귀한 여동생이 된 기분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오라버니가 돈이 많으니 나는 좋네 그려. 흐흐”

“뭐 갖고 싶은 것은 없어? 옷 사줄까? 아니면 구두?”

도운이 치는 큰 소리에 장희는 깔깔 소리내서 웃었다.

“근디 오라버니는? 오라버니도 그 때 같이 반지 했었잖여.”

“내 반지는 여기있지.”

도운도 장희와 마찬가지로 목에 걸어놓은 반지를 꺼내 보여줬다.

“어떻게 둘이 한 쌍이 아니랄까 봐 나란히 주인 목에 걸려 있는지... 우리가 인연이긴 한가보다.”

“치! 오라버니는 왜 반지를 목에 걸고 다녔디야? 손가락에 끼라고 준 것을.”

괜히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장희를 도운이 웃으며 바라본다. 그의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장희는 오늘만큼은 아무 걱정하지 않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 간의 고단했던 마음을 쉬고 싶었다. 둘은 다정한 연인처럼 거리를 걸었다. 옷 가게에 들러 도운의 옷도 사고, 아이들의 조끼도 하나씩 샀다. 만두 가게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장희는 따뜻한 오늘이 꿈일까싶어, 또 원치 않게 빼앗길까 싶어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으로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을 망쳐버릴 수는 없었다.

‘잘 될 것이여. 참말로 이제는 잘 될 것이여.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니께.’

옆에서 다정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장희를 보며 미소 짓는 도운을 보며 장희는 혼자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도운의 청을 오늘은 거절하지 않았다. 예전까지는 주변 누군가가 보면 동네에 소문이 날까 신경쓰였고, 그리하여 임현택이 알면, 당장에라도 아이들을 뺏길까 두려워 도운을 집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서 아이들을 뺏을 수 없을 것이다. 도운, 그가 반드시 그리 만들어 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만간에 함평댁을 만나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어떤 식으로든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봐야겠다 마음먹는 장희였다.

겨울의 해는 짧았다. 돌아오는 길, 눈 앞에는 한 폭의 주황색 수채화가 펼쳐졌다. 도운과 장희는 벼 밑둥만 남아 앙상한 논 사이에 난 길을 나란히 걸었다. 동네 저편에서는 저녁 준비를 하는지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들어가면 연희도 보고 식사도 혀고 가.”

“나 드디어 니가 차려준 밥을 먹는거야?”

항상 차분했던 도운이 오늘은 들떠서 개구쟁이 같이 구는 모습이 우스웠다. 집에 도착하자 연희가 반겼다.

“형부, 오랜만이요.”

“처제, 반가워.”

‘형부’, ‘처제’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두 사람이 조금은 어색했다.

“채훈아, 채현아!”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을 부르는 도운을 연희가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장희는 팔을 걷고 부엌으로 돌아 들어갔다. 새로 밥도 짓고 참기름을 듬뿍 넣어 버섯으로 나물도 무치고, 땅에 묻어둔 호박을 꺼내 된장찌개도 자작하게 끓였다. 아끼던 조기를 세 마리나 꺼내 굽는데 연희가 부엌에 따라 들어왔다.

“준비 할 것이 많당가?”

그러더니 반찬들을 보고는

“오메, 진수성찬이네.”

호들갑을 떨며 괜시리 장희 등을 살짝 민다.

“이것이 무슨 진수성찬이여? 내가 언제는 이리 안 해줬는가?”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네.”

연희의 투덜거림을 가볍게 웃어넘기며 장희는 연희가 빤히 바라본다.

“어찌 된 것이여?”

“뭣이?”

괜히 부끄러워 시치미를 떼는 장희였다.

“형부한테 가기로 한 것이여.”

“글씨다.”

“이렇게 집까지 데려와 놓고?”

“아이들이 있으니께... 쉽지 않네. 그려도 오라버니가 믿으라고 하니 믿어보려고.”

“언니, 참말이여? 참말이제? 오메, 이제 뭔가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겠구먼. 언니. 참말로 잘혔소. 잘했어. 하늘에서 아버지랑 어머니가 아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아직 완전히 정한 것은 아니랑께.”

부끄러운 마음인지, 불안한 마음인지 모를 표정을 하는 장희의 손을 연희가 꼭 잡는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언니, 형부를 믿어 보장께. 어떻게든 해 보실 거여. 그리고 금숙이 아버지한티도. 우리 같이 어떻게든 해 보자. 안돼면 아그들 데리고 형부랑 야반도주라도 하장께. 이제 언니 마음이 정해졌으니 나도 어떻게든 해 볼테니께.”

심각하게 말하는 동생이 귀여우면서도 든든한 마음이 들어 고맙다. 장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희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빼어 연희의 양 볼을 잡고 꼬집는다.

“아가씨, 아가씨가 안 나서도 어른들끼리 잘 해결해 볼테니, 아가씨는 공부만 열심히 하시랑께요.”

자매는 부엌에서 한참을 도란도란 음식 준비를 했다.

“우와, 손 하나 까딱 안하던 아가씨가 이런 상을 차렸다고?”

상을 받은 도운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커진다.

“형부가 몰라서 그라제, 울 언니 솜씨가 제법 좋소. 종가집 맏며느리로 들어가도 손색이 없다니께요.”

“내 이런 밥상을 얼마나 오랜만에 받는 건지 모르겠군. 왕이라도 된 것 같은데.”

“울 언니는 수랏간 궁녀고. 그지라우? 전하”

“에헴. 궁녀치고는 너무 성질이 고약한 걸.”

도운과 연희가 능글능글하게 주고 받는 말에 괜히 장희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오늘따라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 것이 평소 모습과는 다른 도운을 보면서 장희는 괜히 마음이 아프다. 다시 도운의 손을 잡기는 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마 도운도 그런 장희의 불안한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따라 저리 가볍게 장난을 치는 것이고.

밥을 다 먹고 상을 치우는 장희를 도운이 거든다. 설거지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우리 집에 온 손님한테 설거지를 시킬수는 없지라. 채훈아 이모랑 설거지 할래? 곶감 줄건디.”

연희가 도운을 말리더니 곶감에 혹한 채훈을 데리고 나간다.

“두 분은 차라도 한잔 하고 계시랑께요.”

나가면서 괜시리 눈을 찡긋 신호를 보내는 연희에게 같이 찡긋거리는 도운을 보고 장희는 ‘픽’ 소리내어 웃는다.

“그럼 오늘은 좀 쉬어볼까?”

선반 위에 올려 둔 쟁반을 내려 배를 깎는다. 사각사각 배 깎는 소리 속에 둘은 한참 아무 말이 없다. 배 한 조각을 집어 도운에게 주고, 또 한 조각은 도운의 품에 안겨 있는 채현에게 준다. 배를 받아든 채현이 사과를 졸졸 빠는 소리가 온 방에 꽉 찬다.

“내가 임현택 그 사람을 만나봐야겠어.”

도운이 받아든 배를 먹지 않고 가만히 내려두며 장희에게 말한다. 장희는 칼을 쟁반에 내려놓는다.

“우짤라고 그라요?”

“일단은 이런 관계를 정리해야지. 아니, 정리할 것도 없어. 너는 그 사람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단지 채훈이, 채현이가 문제인데. 나는 임현택 그 사람만 허락한다면 너와 결혼하고 아이들을 정식으로 입양해서 키울까 해.”

“그 사람이, 또 그 사람 어머니가 그러라고 할 리가 없지라.”

“내가 그랬잖아. 설득도 해 보고 안 되면...”

“안되면?”

“안되면 다른 방법을 쓸 거야. 그러니 장희 너는 아무 생각도, 걱정도 하지마.”

필히 돈을 쓸 생각인 것 같았다. 돈이 없어 더 이상 노름을 하지 못해 안달 난 임현택이 한 재산 떼어 받으면 자신과 아이들을 놓아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꽤 많은 돈이 거라는 생각에 도운에게 차마 아는 척을 할 수도 없다. 물론 그것은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다는 장희만의 생각이고 임현택이 어떻게 나올지는 장희도 모른다. 그래서 두렵다.

“오라버니, 조금만”

“응”

장희의 다급한 말에 채현을 어르던 도운이 고개를 들어 장희를 바라본다.

“내가 먼저 성님을 만나볼텐게.”

“성님?”

“응. 함평댁. 금숙이 엄마.”

“그 사람이 너를 도와줄까?”

“좋은 사람이여. 이렇게 나가 그 집서 나온 것도 성님이 도와주신거여. 꼭 도와주실거여. 그러니 성님부터 만나볼 것이여.”

“괜찮을까? 너 말할 수 있겠어?”

“참말로 꺽정 말랑게. 성님이 얼매나 좋은 사람인디. 꼭 도와주실 거여.”

“그래. 일단은 너 마음 편한대로 하자.”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하지마. 니가 이렇게 와 줘서 더 고마운 건 나니까.”

“그려도...”

“아이들 문제만 해결되고 나면 우리 가족 모두 광주로 이사하자. 연희 처제 학교도 가깝고, 내 직장도 거기 있으니... 큰 집을 구해서 우리 다섯 가족 이제부터 행복하게 살아보자.”

‘우리 다섯 가족’

도운의 ‘우리 가족’이라는 말은 장희에게는 달콤한 사탕 같았다. 그 달달함이 녹아 다 없어지고 마지막엔 단기가 다 해 씁쓸함만 남는다 하더라도 물고 있는 시간의 달콤함이 좋아 입에 계속 물고 있고픈. 도운이 뱉는 ‘우리 가족’이라는 말은 그렇게 장희에게 강한 쐐기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이 사람 안에서 우리는 모두 행복할 것이다. 연희도 마음껏 날개를 펴고 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편안하게 잘 자라날 것이다.’

그 간의 걱정이 다 해결될 것이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강한 믿음이 마음 속에서 자라난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는 행복할 것이고, 잘 살 것이다. 장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로 그럴 것이다.’

밤이 제법 어두워졌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컹컹’ 울린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형부 너무 늦었으니 주무시고 가시랑께요.”

나서려는 도운을 연희가 붙잡았다. 장희가 흠칫 놀라며 눈빛으로 연희를 말린다.

“언니랑 나랑 아그들 데리고 안방서 자면 되제. 형부는 저 짝 건넌방에서 자고.”

장희의 눈빛을 놀리듯 묵살한 연희가 도운의 팔을 잡는다.

“아직은. 다음에 그럴게. 혹시라도 누가 보면 언니가 곤란해져.”

다정한 도운의 말에 연희는 알겠다는 듯 한발 물러선다.

“담번에는 미리 말하고 오시랑께요. 이 처제도 음식 솜씨가 제법 좋당게요. 오늘은 재료가 없어서 암것도 못했는디, 담번에는 우리 형부 수라상 차려 드릴랑께.”

연희의 넉살에 장희와 도운이 함께 웃는다.

품에 안겨 잠이 들었던 채현을 자리에 가만히 눕히고, 따라가겠다고 떼쓰는 채훈을 연희가 꼭 안아 붙든 다음에야 도운은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어두운 디 조심해서 가.”

대청마루에 앉아 신을 신는 도운을 따라나온 장희가 가만히 말한다. 도운이 그런 장희를 가만히 돌아보고 웃는다. 나란히 마당으로 나간 두 연인은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서로를 마주보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한다.

“잘 가.”

장희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도운이 사립문을 조용히 여는데 어두운 문 밖에서 미처 몰랐던 그림자 하나가 움직인다. 유심히 살펴보던 장희의 입에서 ‘헉’하는 탄성이 새어나온다.

“형부! 이거 두고 갔으라우.”

큰 소리로 도운을 부르며 쫓아나오던 연희가 문 앞의 그림자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자신의 입을 막는다,

“뭔 일로 왔소?”

생각보다 차분하고 차가운 장희의 목소리가 어둠을 깨듯 마당을 가로질러 울린다. 그림자의 주인이 장희 집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얼마나 퍼 부은 것인지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취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흐릿한 눈에서는 분노가 느껴진다. 임현택이다.

“뭐하는 놈이간디 남의 여자 집에서 나와?”

임현택은 비틀거리며 도운에게로 다가선다. 도운의 멱살을 잡는다.

“그 쪽의 여자가 아닙니다.”

도운이 또박또박 말한다.

“뭣이?”

임현택이 비틀거리며 도운의 옷깃을 돌려더 단단히 멱살을 잡는다.

“놓으시오.”

장희가 버럭 소리지르며 달려 든다. 임현택의 팔을 잡지만 임현택은 그런 장희를 세차게 뿌리친다. 장희가 나 뒹군다. 얼마나 세게 뿌리친 것인지 당사자인 임현택도 넘어질 듯 비틀거린다.

“언니!”

놀란 연희가 장희에게 달려간다.

“이 자식이!”

이번에는 도운이 임현택의 멱살을 잡았다. 임현택이 그 손을 뿌리치려고 하지만 키도 힘도 부족하다.

“여기는 내 집이여.”

자신의 멱살을 쥔 도운의 소매자락을 붙잡고 임현택이 소리 지른다.

“저 것은 내 여자고.”

참지 못한 도운이 주먹을 날린다. 임현택이 넘어진다.

“아부지, 아부지”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마루에 서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본 채훈이 울음을 터뜨린다.

“사람 인생을 그렇게 망쳐 놓고도.”

분노한 도운의 목소리가 장희의 가슴 속에 파고 든다. 도운이 성큼 성큼 임현택에게로 걸어간다. 장희가 달려가 넘어지면서 도운의 다리를 끌어 안았다. 도운이 멈칫한다.

“오라버니. 제발. 그만. 채훈이. 채훈이가 보고 있당께.”

장희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도운은 채훈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 집은 당신의 것이 맞소. 하지만 이 여자는 아니오.”

도운이 다시 날카롭게 말한다.

“허허. 허허”

임현택이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참말로 우스운 것들이네. 이 썩을 잡놈아! 이 여자가 내 여편네가 아니면, 저그 저 울고 있는 아그는 누구당가? 저 아그도 니 새끼라고 말할 거냐?”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임현택에게 장희가 다가간다.

“채훈 아버지 무슨 일 있소?”

임현택이 갑자기 바닥에 머리를 쳐 박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소리내어 운다. 울음에 섞여 임현택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안 좋으시당께. 돌아가실 것 같어. 자네를 찾으니 가 봐야 쓰겄네.”

바람이 차갑다. 임현택은 몇 발 앞서 걷고 있고 장희는 그 뒤를 아무 말없이 따른다. 빠르게 걷는 둘을 세찬 바람이 사정없이 때려댄다. 도착해보니 온 집이 환하다.

“엄니, 채훈엄니 왔으라.”

금숙이가 밖에서 동동거리고 있다가 안채를 향해 소리친다.

함평댁이 돌아온 뒤로 금숙은 장희를 채훈엄니라고 불렀다. ‘작은엄니’라고 부르라며 할머니가 호통을 쳐도 금숙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함평댁이 없을 때에는 할머니 말에 벌벌 떨던 아이가 엄마가 돌아온 뒤로는 단단해졌다. 혹여나 할머니가 엄마를 야단이라도 칠 때면 소리를 치며 대들었다. 현택의 어머니는 그런 금숙을 보고 버릇없다며 혀를 찼지만, 장희는 그런 금숙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작은엄니라고 불리는 것보다 채훈엄니라 불리는 쪽이 몇 배는 듣기 좋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현택의 어머니가 누워있고 그 곁을 함평댁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키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이게 어찌 된 일이요?”

“며칠 전에 빙판 길에서 심하게 넘어지셨당께. 병원에 가니 엉덩이 뼈가 부러졌다고.”

장희의 물음에 함평댁이 한 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러면 어찌되는 것이오?”

“나이 드신 분들은 뼈가 잘 안붙는다더랑께. 이렇게 집에 누워 며칠을 계시더만 어제부터는 숨도 잘 못쉬고...”

“의원은 부르셨소?”

“아까 낮에 다녀갔제. 가망이 없다고. 준비를 하라더군. 내내 의식이 오락가락 하시던 양반이 갑자기 자네를 찾으시더라고. 그래서 금숙 아버지가 달려갔제.”

장희는 현택의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가늘게 뜬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손이 보였지만 잡고 싶지는 않았다.

“저 부르셨으라우?”

장희의 물음에도 병상에 누운 노인은 꺽꺽 소리만 내며 한참을 아무 말도 못했다.

“어머니, 채훈 애미 왔으라. 찾으셨잖소.”

함평댁이 손을 잡고 말해도 반응이 없다. 한참을 앉아있던 장희가 이제 돌아가려고 함평댁을 향해 몸을 트는 순간 쪼글쪼글한 손이 장희의 팔을 꼭 움켜쥔다. 곧 돌아가실 이 치고는 너무 강하게 잡은 손아귀 힘에 장희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채훈이는...”

“네?”

손의 힘과는 상반된 가느다란 목소리다. 잘 안들려서 장희는 귀를 노인의 입 가까이 댔다.

“우리 손이여. 채훈이는... 그러니까 두고 너는 가라.”

“네?”

목소리도 잘 안들리지만 말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계속 되묻는 장희였다.

“너는 가서 잘 살어... 나가... 나가 미안허다.”

“그런 말씀 마시오, 저는 채훈이 냅두고는 아무대도 안가요.”

말을 하는데 노인의 숨이 끊어져 축 쳐진다. 함평댁이 울부짖으며 달려든다. 밖에 서 있던 임편택도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집으로 돌아왔다. 제법 늦은 시간인데도 도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가라니까 여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여?”

“너 오는 걸 봐야 집에 가서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아까의 화난 사람은 어디 간 것인지 다시 장희를 보며 웃는 도운에게 장희가 안긴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장희를 품에 꼭 안은 채 도운이 물었다.

“채훈이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나보고 미안허다고.”

도운이 장희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마주본다.

“그 말을 하려고 부르신 거야?”

“나보고 채훈이 두고 가라고 하셨어.”

둘은 한참을 마주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도운이 장희의 등을 툭툭 쳤다.

“나 이제 갈게.”

“너무 늦었는디 자고 갈껴? 연희를 이 방으로 부르면 되는디.”

“아니야.”

사립문을 열고 나가는 도운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여 장희는 가슴이 아프다. 멀어지는 도운을 보며 다시 부른다.

“오라버니!”

도운이 돌아본다. 웃는 얼굴이다.

“잘 가라고.”

서로 말은 안 해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높은지, 험할지.

두려웠지만, 겨우 잡은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을 보며 웃는 저 얼굴을 믿기로, 자신을 믿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장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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