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 13장

by 임효진

그 날 이후 도운은 장성 본가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그는 그렇게 떠났다.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다. 장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장례가 치러지는 3일 내내 임현택의 집을 방문했다.

‘그래도 아이들 할머니니께.’

많이 원망했었지만, 자식들에게만은 그 미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상을 치르는 내내 임현택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을 뿐 장희에게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발인을 하고도 한참동안 임현택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장희는 불안했다. 도운에게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장희는 그렇게 열흘을 불안한 채 보내야 했다, 열흘만에 함평댁이 찾아왔다. 진작에 오려고 했으나 정리할 일이 많았다고 했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한숨만 폭폭 쉬는 것이 아무래도 임현택에게서 대강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듯 했다. 궁금해하는 연희에게 아이들 과자라도 사 주라고 돈을 쥐어 내 보냈다.

“참, 함부로 말을 하기가 그런디...”

함평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예, 성님.”

예상보다 빠른 대답에 함평댁은 흠칫 놀라며 장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성님, 오해는 하지마시오,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었던 정혼자여라.”

“오메, 이게 뭔일인가? 그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고?”

“예, 성님, 살아왔으라.”

“아이고, 잘되었네. 잘되었어. 참말로 잘되었어.”

장희의 손을 잡은 함평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뭔일인가 했어. 자네같은 사람이 애들이랑 동생도 있는 집에 아무나 들일 리가 없는디... 암만, 그러면 그렇지. 금숙 아버지가 자네한테 남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는데 내가 안 믿었단 말이시, 그 말을. 자네가 어떤 사람인디... 아이고 잘됐구만, 잘되었어.”

“성님, 그리 말씀해 주셔서 참말로 고맙당께요.”

“그려, 이제 어쩔 생각이여?”

“...”

장희는 차마 말을 못꺼내고 고개를 숙였다. 함평댁이 장희의 손을 가만히 들어서 잡고 도닥거린다.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인데 그리 돌아왔으면 그 사람한테 가야지, 자네가 이리 살 이유가 없지. 암만. 금숙 아버지도 그 날, 갑작스레 그리 만나 놀란 것이제, 누구인지도 몰랐고... 여기 떠나 잘 살라고 보내줄 것이네. 틀림없네.”

진심으로 기뻐하는 함평댁을 보며 장희는 힘을 얻었다.

“근데, 성님. 제가 아그들을 데려가도 괜찮겠소?”

아차 싶은 표정으로 함평댁이 장희를 바라본다. 장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함평댁은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숨을 포옥 내 쉬고는 입을 열었다.

“애들은 어메가 키워야제, 백번 천번 생각해도 그게 맞지. 내가 자네 입장이래도 애들 두고는 못가제. 그런데 말이여...”

뒤에 올 함평댁의 말이 무서워 장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자네가 내 동생같아서, 진심으로 아껴서 하는 말이니 너무 서운타 생각지말랑께. 세상에 어떤 남자가 남의 자식을 받아주겠느냐는 말이시.”

“아니여라, 오라버니가 그런다고...”

말을 다 끝맺지도 못했는데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눈물부터 흐른다. 함평댁이 그런 장희의 손을 다시 힘주어 잡는다.

“자네는 이제 훌훌 다 털어버리고 새 사람이랑 새 인생 시작하게. 내가 채훈이, 채현이는 내 자식같이 키워 줄텐께. 아직 어리니 크면서 다 잊을 것이제. 나를 믿고 가게.”

“형님, 안되어라. 나는 절대로 그리 못하요.”

“내가 금숙이 아버지 입장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 절대로 아니랑께. 다 자네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여. 다 잊고 가서 잘 살아. 이 사람아.”

말을 하는 함평댁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성님, 도와주시오.”

장희가 무릎을 꿇었다. 손까지 모으고 빈다.

“나는 아이들 없이는 못사요. 형님이 이러시면 나는 아무데도 못가고 여기서 죽는 수 밖에 없소. 제발...”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른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를 모질다 생각지 말어. 자네를 위해서 이게 맞다고 생각해 그러는 것이니.”

“성님. 그러지 마시오. 네? 성님도 아시잖소. 이러시면 나는 못가요. 그 사람이, 오라버니가 다 괜찮다고 혔소. 오라버니라면 좋은 아버지가 되어준다 했소.”

“아이고 이 사람아. 누가 뭐래도 임채훈이고 임채현이여.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자식들 성을 바꾸게 놔 둘 애비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채훈, 아니 금숙 아버지가 그랬으라? 나가 지금 갈라요, 가서 만나 볼라요. 사람 인생 하나 이리 망쳐놓고 아이고... 이제 자식까지 뺏아간다니 그게 말이오? 지금 내가 가서 따져볼랑게.”

기다시피 문 밖으로 나서려는 장희를 함평댁이 잡았다.

“지금 따지러 가 봤자, 자네한테 이로울 거 하나도 없으니 참으시게. 잉? 여기서 더 분란을 일으키면 당장 아이들 데려가려 하지 않겠나? 자네도 생각 좀 해 보소.”

“채현 아버지한테는 금숙이도 있고, 채욱이도 있잖소. 나는 아이들 없으면 죽소. 그러니 성님 제발...”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것이고, 나중에 아이들 크면 내가 다 만나게 해 줄 것인께, 자네는 아무 꺽정 말고 가시게.”

“형님, 그것이 나더러 가라는 말씀이오? 죽으라는 말씀이요? 어찌 나한테 그러시오?”

“생각 잘 해보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할 것인께.”

“나는 아이들 놔 두고는 안 갈 것이오. 못 가지라. 어찌 애미보고 자식들을 놔두고 가라고 하는 것이오?”

“가서 또 아이 낳고 살다 보면 다 잊어질 거여. 생각 많이 해보고 준비가 되면 연통을 하시게. 그럼 내가 아이들 데리러 오겠네.”

울다가 안 되니 죽겠다 협박을 하는 장희 앞에서도 함평댁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서는 함평댁의 뒷모습을 보며 장희는 마당 중간에 그대로 엎어져 울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서던 연희가 그런 언니를 보고 달려와 등을 토닥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한 듯 했다.

“언니 괜찮은가?”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들자 장희를 일으켜 세운다.

“연희야, 언니 어쩐다냐?”

“안 보내준다그려?”

“아이들.”

“언니.”

부르는 소리가 제법 단단하다. 장희가 고개를 들어 연희를 본다.

“이럴 것을 모르고 시작했는가? 나는 다 알았는디.”

“...”

“그래서 도운 형부랑 같이 힘내서 어떻게든 해 보자고 약속한 것 아니여?”

장희가 아래로 고개를 떨군다.

“당연히 이럴 것을 알았고, 생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여. 근디 이런 일 한번으로 포기할랑가? 울 언니 못쓰겄네.”

장희의 눈에서 눈물이 똑 떨어진다.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함평댁만은, 성님만은 자신의 편이 되어 힘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다. 믿고 의지하던 이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이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적진 중간에 쓰러진 군인 같았다.

“성님이, 성님은 도와줄거라 생각했제.”

동생에게 안겨 우는 장희의 모습이 마치 언니, 동생이 바뀐 듯 하다.

“괜찮어, 괜찮을 것이여.”

언니를 토닥거리는 연희의 모습이 제법 어른 티가 난다.

“내가 내일 금숙이도 만나 볼 것이여. 여럿이서 힘을 합치면 뭐가 나아도 더 낫겄지. 이런 일 한번에 털썩 엎어져서 포기하지 말란 말이시. 우리가 누군가? 그 전쟁에 부모 형제 다 잃고도 이리 잘 사는 자매 아닌가? 언니는 나한테 엄니고, 아버지고, 오빠여. 우리 언니 괴롭히는 것들은 내가 다 아작을 내줄랑께, 나만 믿고.”

“금숙이를 만나볼라고?”

“생각보다 금숙이 힘이 쎄당게. 금숙 엄니는 금숙이 말이면 꼼짝도 못하고, 금숙이 고 것은 내 말이면 죽는 시늉이라도 한당게. 워쩌겄어? 언니 선에서 안되면 더 위에서 움직여야제. 나가 그런 사람이여, 나가. 이제 나만 믿으소.”

큰 소리를 치는 동생에게 픽 눈을 흘기면서도 그 말이라도 믿고 싶다.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키는 장희만큼 크다.

“그려. 니가 그리 말하니 힘이 되네. 동생이 이리 크니 좋네 그려.”

“나가 이제는 언니보다야 크지.”

“글씨다. 아직은 내가 조금 더 큰 것 같은디.”

“아닌디, 내가 더 큰디”

장희는 옆에서 까치발을 하며 발을 구르는 동생에게 위로받고 웃는다. 그렇게라도 웃지 않으면 절망만을 생각할 것 같아 억지로 웃어보았다.


그러고도 일주일이 더 지났다. 현택도 함평댁도, 장성으로 간 도운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장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연희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읍내에 다시 떡을 팔러 나가면서 차라리 이대로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운과 함께 떠나 산다고만 하지 않으면 현택도 함평댁도 굳이 자신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아 갈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읍내에 나와 가끔씩 도운의 얼굴을 보며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으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도운에게 할 짓이 못되었다.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저렇게 홀로 지낼 도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보내줘야 한다. 이제 내가 결정을 해야 한다.’ 수차례 다짐했으나, 또한 그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을 해야 하는 자신의 고통이 너무 싫어서 읍내에 나갈 때마다 돌아올 그를 혹시나 마주칠 수 있을까하는 그리움과 함께 두렵기까지 한 장희였다.

날씨가 따뜻해 지고 있었다. 한껏 단장한 봄이 자신을 봐 달라는 듯 노란색, 분홍색 꽃가지들을 그리 흔들어대도 장희에게는 그 봄을 만끽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미처 알아채지도 못한 사이 가지 가득 흐드러지게 폈던 꽃들은 봄비에 그 생을 다하고 슬프게도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지난 밤 내린 비로 제법 거세진 강물 위에 놓인 나무다리를 자전거를 끌고 건너 오늘도 장희는 읍내 시장으로 나갔다. 마침 주말이라 집에 온 연희가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내릴 때 즈음, 떡을 다 팔고, 아이들 삶아 줄 고구마를 조금 샀다.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읍내를 빠져 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와 같이 발 맞추어 걷는다. 고개를 들어보니 웃고 있는 도운이다. 거진 한달만이다. 그 얼굴을 보자 그 간의 그리움과 슬픔, 알 수 없는 여러 마음이 한데 섞여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상한 표정이 된다. 너무나 행복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난다. 엉망인 얼굴은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도운의 얼굴을 보고 싶어 고개를 숙일 수 없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거야?”

도운이 웃으며 장희의 눈물을 닦는다. 장희는 도운을 보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말을 잊어버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냥 그렇게 말하고는 도운의 품에 안겨 펑펑 울어버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조금만 더.’

그렇게 생각하는 장희였다.

“우리 집으로 가자. 할 얘기가 많아.”

둘은 다시 돌아서 도운의 집으로 향했다.


“장성 집을 정리했어. 땅도. 마침 살 사람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와서 말이지.”

물을 한잔 마시고는 도운이 담담히 말했다.

“난 또 너무 안 와서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제.”

장희가 하는 담담한 농담에 도운이 멈칫한다.

“장희야.”

“응?”

“혼자서 힘들었지?”

“...”

“생각보다 할 일이 많더라고, 신고해야 할 것들도 많고... 오래 기다리게 했네.”

“오라버니.”

“응?”

“성님이 왔었어. 성님하고 얘기했는데...”

말은 시작도 안했는데 눈물부터 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더 슬프다. 도운이 가만히 와 어깨를 끌어안는다.

“괜찮아. 다 알고 있어.”

장희의 등을 토닥거리며 도운이 말한다.

“다 알고 있어? 어떻게?”

“그 집에 다녀오는 길이야.”

“그 집? 성님네?”

놀란 토끼 눈을 하는 장희에게 도운은 여태까지의 일을 이야기 했다.

장성의 본가는 동생 앞으로 명의를 옮겼다고 했다. 작은 댁 어른들과 의논해 집 안 땅 중 자신의 몫만 처분해서 팔았다고 했다.

“광주에 우리 가족이 살 집을 사야하니까.”

도운의 말에 장희는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로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우리 가족’이라는 말은 여전히 장희에게 달콤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벽부터 서둘러 나주에 내려온 도운은 바로 현택의 집을 찾았다고 했다. 현택은 놀라는 눈치였으나, 지난 번처럼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마 함평댁에게 도운의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도로 미안한 눈치를 보이는 현택에게 도운은 부탁을 했다고 했다. 아주 정중한 부탁을. 장희와 함께 아이들도 데려가겠다는 도운의 설득을 현택은 처음에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하고 잘 키우겠다고, 끈질기게 설득하자 끝내는 받아들였다고 도운은 담담하게 얘기했다

“정말이여?”

“응. 정말이지.”

“참말로 정말이냐고?”

“응. 정말로 정말이지.”

“성님은 뭐라고 안 하셨고?”

“별 말씀 안 하시던데.”

장희는 너무 기쁘고 놀라서 숨조차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단호할 것 같았던 현택이 이리 쉽게 아이들을 보내 줄거라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라버니, 참말로. 뭐라고 했당가? 뭐라고 했기에 아이들은 보내준다고 한 것이여?”

“정말 진심으로 부탁했어. 아이들을 보내주면 내 자식처럼 소중하게 키우겠다고.”

도운의 말은 진짜인 듯 했다. 아니, 아니라해도 상관없었다. 무언가 다른 일이 있었다 해도 지금 장희는 아이들과 함께 도운을 따라 떠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도운과 현택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던, 어떤 거래가 있었던 그것은 이제 끝난 일이고 장희는 이제 도운의 손을 잡고 그렇게도 그리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 연희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연희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에고, 애들 깨겄네.”

장희가 웃으며 그런 연희를 말렸지만 연희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장희를 끌어안고 뛰었다. 장희도 그런 연희와 함께 깔깔 웃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낮잠을 깬 채훈과 채현이 엄마와 이모를 이상하단 듯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워서도 장희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평화롭게 물든 미래가 정말 자신에게 올지 믿기지 않으면서도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이제 시장에 떡은 팔러 나가지 않기로 도운과 얘기했고, 함평댁을 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정리를 해야 했다. 이사준비도 바빴다. 광주로 떠나기 전에 이모부 송하일을 만나 서로 가진 마음의 앙금을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복잡한 생각들과 설레는 마음이 엉켜 장희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첫 차로 연희는 다시 광주 학교로 갔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막 설거지를 끝내는 차에 함평댁이 찾아왔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이 제법 수척해져 있었다. 장희는 치맛자락에 얼른 손을 닦고 나가 그녀를 반겼다.

“성님, 오셨으라우?”

“내가 이리 오면 안 되는 것인데...”

말 끝을 흐리는 함평댁의 표정에 곤란함이 가득하다.

“무슨 말씀이시오? 여기도 성님 집인디 못 올 것이 뭐가 있소?”

쭈뼛거리는 함평댁의 손을 잡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성님 손이 차갑소.”

채훈이 채현이가 어질러 놓은 물건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깔아둔 이불 속으로 함평댁의 손을 넣는다. 함평댁이 ‘흑’하고 참았던 눈물을 떨어뜨린다.

“내가 참말로 자네 볼 낯이 없네. 미안허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성님, 무슨 일 있소?”

“얘기 못들었는가?”

함평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도운이 찾아온 그 날의 이야기를.

하필 그 날 임현택의 집에 난리가 났다고 했다. 그 동안 도박으로 진 빚이 얼마인지 문방구는 벌써 빚쟁이들 손에 넘어가고 집도 저당이 잡혀 쫓겨날 판이 되었다고 했다.

“나도 안 지 며칠 안 되었제. 알았다면 애들 키워준다고 자네 혼자 나가라는 가슴 아픈 말 못했지 내가...”

“아니여라. 성님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저도 안당께요. 하나도 원망 안 하요.”

“하필 금숙이도 쉬는 날이라 집에 와 있는디 그렇게 빚쟁이들이 집을 뒤집어 엎고 간 것이여. 세간이니 가구니 멀쩡한 것이 없이 다 부수고 갔당께. 우리들이 울고 불며 치우고 있는디 그 사람이 온 것이제. 돈을 가방에 한가득 넣어 가지고. 와서는 무릎을 꿇더라고. 그것이 자기가 가진 돈 전부고, 이것을 다 줄 것이니 자네랑 아이들 보내달라고.”

“그랬으라?”

대강 짐작은 했으나 그래도 마음 아팠다. 함평댁과 금숙이 겪은 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존심 강한 도운이 무릎을 꿇고 빌다니... 그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고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다.

“금숙이 아버지도 처음에는 가방을 던지고 가라고 야단이었제. 그런데 그 사람이 꿈쩍도 안 하고 그렇게 무릎을 꿇은 채 몇 시간을 있었단 말이시. 막판에는 내가 금숙 아버지한테 빌었으야. 저 돈 받고 보내주자고. 지금 저 돈 안받으면 우리 집도 망하고 자식새끼들이랑 다 길에 나 앉는다고말여. 지금 채훈이 채현이 억지로 뺏어와서 굶어 죽일 작정이냐고. 나까지 앉아 같이 싹싹 비니 금숙아버지도 별 도리가 있나? ‘아이들 부탁한다’ 한마디하고는 방에 들어가 누워서 여태 꿈쩍도 안 하고 있네.”

“성님은 이제 괜찮소?”

“나야 이제 괜찮지. 아니 사실 자네 덕분에 살었제. 내가 참말로 자네한테 미안허네.”

“아니여라. 어찌 그것이 성님 잘못이겄소?”

“잘못이제, 왜 잘못이 아니겄는가?”

함평댁은 품 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장희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그 날 그 사람에게 받은 돈이여. 절반이나 되지 싶어. 당장 급해서 그 돈으로 문방구랑 집 넘어간 건 막아서 그 것 밖에 안남았시야.”

“성님, 그 것은 오라버니가 준 돈잉께...”

“금숙 아버지가 그러더란 말이시. 자식을 돈 받고 판 사람은 될 수 없다고. 당장 새끼들 문 밖으로 가 나 앉게 생겼으니 그 돈을 받기는 했지만 그 돈을 쓰는 이상 자기는 짐승하고 다를 것이 없다고. 일단 이거 먼저 받소. 이번에 정신을 단단히 차렸는 갑소. 남은 돈도 어떻게들 벌어 갚을 것이여.”

“성님, 그러면은...”

“애들 걱정은 마시게. 부끄러운 애비라고... 자격도 없다고. 자네한테 보내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야.”

“성님, 참말로 고맙고 미안허요.”

“아니여, 내가 자네 볼 낯이 없네. 그리고 애들 아버지 너무 미워하지 말어.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멈출 수가 없다고라?”

“자기가 하는 노름, 빚 지는 거, 술 마시는 거, 몽땅 나쁜 것도 알고 있고, 이대로 가면 모두가 죽는다는 생각도 했다네. 근데 하루만, 하루만 더 하면서 여태껏 그리 산 것이제. 나쁜 짓은 시작하는 것보다 멈추기가 더 어려운 법이거든. 근데 자네랑 그 사람 덕분에 마음을 달리 먹은 것 같아. 그러니 이제 다 용서하고, 잊고 가서 행복하시게.”

현택의 멈출 수가 없었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장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건강하셔요.”

두 여인은 그렇게 서로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함평댁을 그렇게 보내고 장희는 심경이 복잡했다.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 임현택의 마음이 얼마나 아릴 것인지 같이 자식을 둔 입장으로 편치만은 않았다. 도운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전 재산을 현택에게 넘긴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죄책감도 들었다.

“내가 가서 잘 할껴. 아이들한테도 잘하고 오라버니하고도 잘 살면 되는 것인께.”

혼자서 중얼거리며 몇 번을 다짐하는 장희였다.

오후에는 도운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희는 함평댁이 두고 간 돈 봉투를 도운에게 돌려주었다.

“너도 알게 됐구나.”

“부모님 유산을 이렇게 써 버리면 어쩐대? 아버님, 어머님이 하늘에서 아시면 깜짝 놀라 나 혼내러 내려오시지 싶네.”

“아닐 걸. 너를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너 며느리 삼으시려고 아마 이것보다 더 한 것도 하셨을거야.”

괜히 눈을 흘기는 장희의 손을 잡으며 도운은 웃었다.

장희는 불안했다. 현택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리 이 곳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도운도 장희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다. 광주에 집을 구하면 바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연희의 학교와 도운의 학교는 멀지 않았다. 도운은 출근하는 날 말고도 광주에 가는 날이 많았다. 함께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이 때문에 같이 다닐 수 없는 장희에게 도운은 보고 온 집들을 간단히 그려 보여주곤 했다. 예전에 서울에 집을 구했을 때처럼 곧 결혼할 예비 신랑 신부의 마음은 설레임에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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