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저런 일로 많은 글을 작성하지만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진 않는다. 일기도 쓰는 걸 그만둔지 오래되었고 블로그도 방치되어있다.
이제야 글을 쓰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기해보는데, 2024년 한 해동안 일어난 일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굉장한 일들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건 아무래도 전세사기일것이다. 이건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가 될 이야기다. 최근에 법원, 친구, 부모님 등 다양한 대상에게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는 있는데 바쁜 업무와 부족한 시간때문에 언제나 충분히 나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면서 나에게 그동안 어떤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기록해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전세사기피해자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1억원을 들고 있는 집주인은 현재 도피한 상태이다.
전세 피해를 당한 세입자라면 위 문장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돈을 돌려받고 있지 못하는데 사기가 아니라니,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써도 돌려받을 순 없고 변호사는 신용불량자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알바를 2개 더하란다. 왜 나에게 이러한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통스러워 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해결해나갈 방법을 찾고자 한다.
2022년 4월 경, 나는 서울 관악 봉천의 한 작원 원룸에 반전세로 계약했다. 매우 작은 집이었지만 신축이기도 했고 서울에서 이만한 가격으로 집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세가는 1억이었고 8000만원은 중소기업청년대출로 받고 2000만원은 자비로 납부하였다. 추가로 관리비 포함 35만원의 월세를 매달 내야 했다.
처음 계약할 때 이 건물은 신협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근저당개념에 관해 무지한 상태였고 부동산은 이게 결코 위험한 수치가 아니라고만 전달해주었다. 또한 이 때문에 전세 보험을 들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엔 전세사기라는 개념이 대두되지 않았던 시기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까지는 큰 이상없이 거주하였다. 건물은 모두 집주인의 소유였고 집주인 또한 건물 가장 윗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계약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1월 경, 집주인은 만기가 곧 도래하는 세입자들을 카페로 불러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전세사기 대란으로 중소기업청년대출의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부동산에 전세를 찾는 이가 없어서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입자들에게 계약이 만료가 되더라도 연장을 하기를 종용하였다. 특이하게도 그 자리엔 근저당권을 설정한 신협의 직원도 함께 참석해있었다.
신협 직원은 약간의 협박조처럼 들리는 말로 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 우리 모두 원금을 받지 못한다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임차권 등기를 하지말라고 말했다. 세입자가 임차권 등기를 걸 경우 건물 등기부 등본에 기록이 남아 다른 세입자들이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그냥 직원으로서 경매를 넘겨버리면 그만인데, 세입자들이 모여서 해결책을 도모하니 도움을 주는 목적으로 이자리에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3월 즘, 두번째 모임이 있었다. 이미 화가 많이 난 어떤 세입자가 임차권 등기를 설정했고, 이제는 경매에 넘어가지 않게 하지위해 신협직원이 주도하여 이 건물을 매입할만한 다른 사람들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그때쯤, 계속 밀려드는 건물의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자기가 밤낮으로 알바로 일하고 있고 새벽에 누군가 초인종을 울리기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 이집에서 살 수 없다고 나간다고 말하였다. 나는 신협직원이 왜 이렇게 친절하게 돕겠다고 나서는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길일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집앞 분리수거장이 쓰레기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집주인에게 이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건물 윗층 집주인 거주지로 가보자 약간 열린 창틈 사이로 빈 집이 보였다. 그 뒤로 집주인은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았고 연락할만한 방법도 없었다. 저번 모임이후로 전세 세입자들끼리의 카톡방은 있었지만, 그 방안에서도 집주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부터 나는 전세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것이라는 통지문이 붙었다. 그리고 경매에 넘어갈시 내가 점유한 부분이 내것임을 증명하는 '배당요구 신청서'를 작성하여 전달하였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인 세입자들은 서로 쓰는 방법을 공유해주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전기가 끊길 것이라는 경고장이 붙었다. 다행히 전기와 수도는 어떤 세입자의 주도 아래 공동으로 돈을 걷어 해결하고 있다. 얼마전 꿈에서 수도가 끊겨서 손을 못씻었다. 내가 알게모르게 이번 일로 스트레스 받고 있었구나 싶었다. 공용 와이파이는 끊겨 핫스팟으로 연결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임대차반환소송을 걸었고 얼마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에 참석했다. 가장 늦은 시간의 재판(17:30)이었는데 20분 정도가 딜레이되어 거의 밤이었다. 공간엔 판사와 두명의 법원 공무원, 원고석의 나, 그리고 뒤 좌석에 엄마가 있었다. 피고석은 공석이었기에 조용하게 판사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차분하게 재판이 끝났고 1월 중순에 판결이 날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재판이 끝나고 엄마와 근처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소송을 세 건이나 하고 있고, 만나는 변호사들의 시니컬한 태도는 내가 가진 희망의 끈을 건드린다. 지금까지 이룬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붙잡고자 연락하는 전문가들은 나의 무지를 탓했다. 어쩌면 내가 모든걸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차분하게 소송과 내가 할 일들을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