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만난 친구들과 새롭게 리브랜딩된 대한항공의 브랜드 이미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브랜딩, 리브랜딩에 관한 관심이 확장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얼마전 <디자인>잡지에서도 대한항공 리브랜딩에 관한 기사와 관련한 브랜드 업계 CEO들의 인터뷰를 실은 것을 보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꽤 갈리는 브랜딩인 듯 싶다.
브랜딩은 다수의 항공회사 리브랜딩 경험이 있고, 민간, 공공 영역의 브랜딩 경험이 있는 리핀코트에서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아쉬운 점은 있지만 리핀코트가 공개한 포트폴리오 이미지를 보았을 때, 또 나쁘지 않은 시기적으로 적절한 리브랜딩이다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그다지 엄청 파격적인 변화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아마 이와 같이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한항공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브랜드가 정말 정체성을 이미지든,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대한민국 대표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또한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무언가 역사화된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조선, 혹은 그 이전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어떤 기호를 차용하여 현대적 언어로 구축하는 것이 대개 쓰이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표현방싱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기능적, 구조적 디자인 언어, 가령 컬러와 기하학적 도형, 서체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도 국가의 정체성 표현은 가능하다. 그러한 조형적 요소들 역시 국가의 상징성으로 부터 완전히 덜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거움, 가벼움, 납작함, 길쭉함 등의 조형언어를 통해서 국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정체성과 인식을 전달한다. 미국을 떠올려보면, 예를 들어 코카콜라와 맥도널드가 가지고 있는 낙관주의와 화려함을 미국 자체의 정체성을 그것을 역사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국내에서는 그러나, 근대 이후 현대 이후의 조형언어로서의 정체성이 자리잡은 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기억해보자면 2002년의 붉은 악마? 정체성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치우천왕의 이미지 또한 어떤 역사의 기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무언가 근현대사의 일제치하에서의 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시각적)문화 사이에 생긴 조선의 역사와 현대의 산업 사이의 단절이 대한민국의 시각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아직도 궁궐 이미지가 없으면 한국적인걸 표현할 수 없다.
그나마 추상적 형태로는 태극 무늬가 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체적으로 협의화되어 있긴 하지만, 이 조차 그 기원에서, 그리고 의미에서 정말 한국적인 것을 반영하는 지는 의심스럽다.
대한항공은 기존에 붉은색 조류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로고를 변형하면서 사용해오다가 1984년 부터 우리한테 익숙한 태극무늬를 도입한다. 디자인 주체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대한항공 내부 디자인 팀과 공공에서 협업했다고 알려져 있다. '1000로고'에서는 본 로고가 '펩시 콜라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는데, 생각해보니 일리가 아주 없진 않은 것 같다.
일반적인 태극에서 붉은 색과 푸른 색 사이에 흰 백색의 공간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상징적으로도 태극은 음양이라는 이분법에 의한 의미를 전달해야하는데, 제3의 색 혹은 공백이 침투한다는 건 의미전달에 있어서 이상하다. 아마 기능적인 이유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이라는 고채도의 두 컬러가 겹쳐있을 때 시각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흰색을 완충재로 적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전통적인 태극무늬와 많이 다른 길이고 펩시콜라의 디자인과 많이 닮아 있다.
기존 붉은 대한항공의 로고의 새 날개가 형성하는 라인을 형상화 하면서, 표현되는 선을 화이트로 비워버린게 아닐까 추측된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리브랜딩된 대한항공 로고에서도 이런 기존로고의 흐릿한 정체성에 관해서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을 것 같다. 아마 한 편으로는 심볼 디자인을 서체와 같이 무게감을 덜어내는 용도로서 밀도를 맞추고, 또 한편으로는 음과 양 두가지의 기운을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오히려 하나의 선을 사용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새롭게 디자인된 심볼은 오히려 기존의 한국적인 것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것...
ps. 글 쓰고나서 알게 되었는데 심볼을 라인형으로 바꾼건, 한진그룹 심볼과의 연계성 때문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