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명령, 내적명령으로서의 디자인 규율

타이포그래피 논쟁

by 아욱

20세기 서구 그래픽디자인이 산업중심의 합리주의와 시각적, 인식론적 변화를 겪게 되며 마주한 갈등은, 개인주의적 예술 이후에 합리성의 근거가 되는 명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관한 질문이다. 디자인 실무의방법론의 대립은 정치적 변증법의 양상을 띄게 되는데, 러시아에선 순수한 시각적 본질에 집중한 “비실용적 인식수단으로서의” 이미지 이론을 다루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와 적극적인 실천과 참여를 추동하는, 로드첸코로 대표되는 구성주의 간의 갈등이 존재했으며, 약 30년 뒤 러시아 구성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실용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체계를 형성한 서유럽에선 얀 치홀트와 막스 빌 간의 타이포그래피 논쟁이 벌어졌다. 이는 서체의 사용 방식(가라몬드 vs 그로테스크), 행의 정렬과 문단 구분(들여쓰기 vs 한 줄 띄기)등 러시아의 구성주의와 절대주의 간 논쟁보다 외면적으로는 조금 더 실무적인 부분에 관한 논쟁으로 보이지만 얀 치홀트가 막스 빌의 뉴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독일의 성향과 합치(1)”한다고 언급하는 등 간접적으로 이미지로 발현되는 정치적 이념을 의식한 갈등이었다.


근대적 정치 혁명이 새로운 시민사회에 관한 정의를 호출하며 시작된 것과 같이, 분명 시각 이미지의 합리주의로의 이행은 보편타당한 명령을 요구한다. 이미지는 텍스트와 사상에 앞서 한 발 서서 이러한 정의에 응답하기에 새로운 시각을 위한 텍스트적 합의는 미묘한 어긋남을 불러오곤 한다. 사실 ‘문단 정렬을 왼쪽 맞춤 하든, 가운데 정렬 하든 무슨상관인가?’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지만 근대 시각디자인의 문법이 기능주의라는 이념에 합당한 규칙이라는 일종의 정당화, 서브텍스트와 함께했기 때문에 분열도 데칼코마니 형태와 같은 정치적 양상을 띈다. (적어도 20세기 초 이후에 그래픽 디자인은 하나의 이념이 되었고 이론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식체계를 띄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쟁의 근원은 그래픽 디자인의 방법론을 정의하는 ‘명령’이 디자이너와 디자인의 흐르는 사회라는 주체의 내부에 속해있느냐 혹은 외부적인 명령으로 침투해 오느냐 하는 방향성의 문제에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화한다는 점에 있다. 디자인이 순수예술과 구분되는 지점은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보편타당하게 교류될 수 있는 시각적 소통언어를 구현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보편성의 추구는 한편으로 지역 정체성, 역사성, 개별성이라는 특수하지만 개별적으로 선존재하는 시각적, 이념적 이미지들과의 충돌을 발생시킨다. 하나의 시각적 법칙이 넓은 공동체 안에서 합의가능한 언어로 설정된다는 점이, 설령 그것이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하나의 목적을 지니더라도 ‘맹목적인 발전’을 항햔 진보의 역사로 설정 되어선 안될 것이다. 역사 안에서 하나의 규칙이 내적인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성공할 때, 규칙 바깥으로 남겨진 여러 시각적 언어는 틀린 것처럼 왜곡된다. 이러한 시선은 객관적인 디자인 비평을 위해 극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각언어와 내적인 규율이 명확히 어떤 방향성을 향하고 있다면 그러한 흐름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후기 얀치홀트의 고전 그래픽언어로의 회귀를 모던디자인에서의 실패처럼 여길 필요도 없다. 얀치홀트는 전통적인 도서의 조판배열로 부터 시각적 구성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시각적 배열의 근거를 마련하는 점은 단발적인 관찰 이상으로 대상을 파고들어가는 집요한 과정이 있다. 또한 근거라는 논리가 단발적인 관찰의 기능성, 가령 가독성, 명시성, 심미성에 반사적으로 영향을 끼치기에 디자인이란 역사와 기능으로서의 텍스트와 행위와 실천으로서의 이미지를 오고가는 창작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법칙의 설정 과정과 그것의 외재적, 내재적 성격을 바탕으로 한 시선으로 국내 디자인사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스위스를 중심으로 뉴 타이포그래피 운동이 태동한 이후의 시기, 1930~60년대 국내엔 한홍택, 이완석과 같은 디자이너들이 패키지와 지면광고를 중심으로 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남겼다. 다만 전문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성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타이포그래피적 실험보단 일러스트 회화가 중심이 된 광고물이 주가 되었기에 근대 한국디자인사에서 자주 배제되곤 한다. 그러나 명확한 디자의 명령이 산업에 내제화되기 이전 미술계의 관계 안에서 생산된 시각 이미지들은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재료로 평가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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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처드 홀리스,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 박효신(역). 세미콜론,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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